글/천포쿵(陳破空 시사평론가)
[SOH] 의심할 바 없이 공산당의 중국 통치는 이미 후기로 진입했고 오늘날의 중국은 후기 중공 시대로 불릴 만합니다.
청조(淸朝)말기와 후기 중공을 비교해 보면 100년의 시차를 둔 봉건전제왕조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나 형식에 이르기까지 모두 놀라운 유사점들이 존재합니다.
경제적 측면에서 200여년 동안 쇄국정책을 펼치던 청조는 19세기에 접어들어 해외 무역의 충격을 받았습니다.
한편 20세기 중반 약 30년간 쇄국정책을 펼쳤던 중화인민공화국 역시 똑같이 세계경제의 신속한 발전과 글로벌한 도전에 직면했습니다.
정치적으로 보자면 청조는 국내외의 혹은 공화의 압력과 마주했고 중공 역시 국내외에서 민주개혁의 호소를 받았습니다.
청조말기와 후기 중공 양자는 구호, 사건, 심지어 인물에서도 완전히 유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청나라 조정이 주도했던 양무운동(洋務運動)은 중공이 실시한 개혁개방과 같고, 청나라가 주장한 '조정의 법은 변할 수 없다'는 논리는 중공의 '4가지 기본 원칙을 견지한다'는 것과 같습니다.
또 청나라가 주장했던 부국강병(富國强兵)과 군사력 증강은 중공이 외치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과 군사 현대화와 같으며 청나라조정이 주장한 '오랑캐의 장점을 이용해 오랑캐를 제압한다'는 논리는 중공이 주장하는 소위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와 같습니다.
외교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청나라가 강온 양면책으로 시모노세키조약, 신축조약을 체결했고 중공은 중러 변경조약을 체결하고 조어대(釣魚臺)와 남사군도(南沙群島) 등 주권 문제는 뒤로 제쳐 놓았습니다.
89년 천안문 민주화운동의 실패는 무술변법(戊戌變法)이 유산된 것과 같고 6.4탄압을 주도한 태상황 덩샤오핑은 무술변법을 뒤엎은 서태후와 같습니다.
오늘날 온갖 나쁜 짓을 자행하는 중공의 태자당은 청조말기 방탕했던 팔기자제(八旗子弟)에 해당합니다. 마오쩌둥과 중공이 공자와 맹자를 비판하고 마르크스 레닌을 숭배한 점이 바로 가장 좋은 증거입니다.
명성이 자자한 옌푸(嚴復)는 당시 해외유학파로 학문에 성취를 이룬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하지만 그는 중국의 개조를 위해 노력하지 않았고 주안회(籌安會)를 만들어 원세개(袁世凱)를 황제로 세우는데 힘쓰며 중국 국정에 부합한다고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중공이 나라를 해칠 때 해외유학파 미사일의 대부 첸쉐썬(錢學森, 로켓왕이라 불림)은 귀국 후 중공 정권을 옹호 했으며 심지어 '1묘당 생산량이 만근에 달한다'는 것을 과학이라고 위증했습니다.
지금 해외로 유학을 떠난 일부 유학생들은 공산당에 대한 미신을 갖고 있습니다.
이중 일부 사람들은 돌아와서 인터넷 봉쇄에 공헌하고 독재자와 함께 음모를 꾸미며 중국 민중들이 알아야 할 진실들, 그 권리를 박탈하고 있습니다.
[ⓒ SOH 희망지성 국제방송 soundofhope.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