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천포쿵(陳破空 시사평론가)
[SOH] 중국 인민이 최초로 일어선 것은 1911년 10월10일입니다. 이날 신해혁명이 발발하여 중화민국이 탄생했습니다.
그날부터 지금까지 형식적으로 중국은 수천 년 간 지속되어 온 임금과 관리들이 백성위에 군림하는 낡은 방식을 타파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중화민족 초년에 국회선거, 언론의 자유, 보도의 자유를 실시해 중국 인민은 정신적으로도 일어섰습니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중화민국은 아시아 최초의 민주 공화국으로 세상의 공인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제도가 실행되기도 전에 일부 국민들은 선거와 정치투쟁에 익숙하지 못해 막 태어난 민주화를 탐탁치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이틈을 타 독재 세력들이 훼방을 놓았고 각종 야심가들이 너도나도 나타났습니다.
나중에는 공산당이 해방이란 깃발을 들고 폭력적 수단을 통해 중국에서 독재를 다시 복구했는데 중국은 또 다시 위기를 느끼며 아무 소리도 낼 수 없는 낡은 시대로 되돌아갔습니다.
1949년 중공은 중국인민이 일어섰다고 선포했습니다. 하지만 사실상 중국인민은 무릎을 꿇은 것입니다.
3반, 5반, 반우파, 문화대혁명, 6.4 천안문 학살, 파룬궁 탄압 등에 이르기까지 중공은 여러 차례 반복적으로 피의 학살을 감행했고 중화대지는 공포 분위기에 뒤덮였습니다.
중공의 위세 앞에 중국인들은 정신적으로 무릎을 꿇었을 뿐만 아니라 형식상으로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당시 군벌 혹은 국민당은 정치범을 처벌할 때 정치범에게 서거나 혹은 앉을 수 있도록 허락하고 심지어 구호를 외칠수 있게 했으며 형장에서도 혼례를 치를 수 있게 했습니다.
그러나 중공은 정치범을 처벌할 때 반드시 강제로 무릎을 꿇게 했습니다. 만약 불복하면 무릎 뼈를 잘라버리고 구호를 외치지 못하도록 입에 고무공을 밀어 넣거나 기관을 제거하거나 심지어 산채로 장기를 떼어버렸습니다.
중국인들이 가장 분명하게 무릎을 꿇은 사건은 바로 2005년 말에 발생한 산웨이 참사입니다.
중국 광둥성 산웨이시 훙하이완구 둥저우향에서 중공은 둥저우향에 대형발전소를 건설 하기위해 주민 대부분 생계의 지주로 삼고 있는 산림, 농지, 백사호(白沙湖)를 강제 수용했고 중공은 주민들에게 합리적 보상을 해주지 않았습니다.
먹고 살 삶의 터전을 잃은 주민들은 산웨이 발전소 입구에서 토지수용 보상을 둘러싸고 시위를 벌이던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세계 주요 언론에서는 모두 한 장의 사진을 실었습니다. 사진에는 산웨이 농민 한 명이 실탄을 장착한 중공 무장경찰의 발아래에 꿇어 앉아 있었습니다.
더 비참한 것은 꿇어앉은 이 농민이 '정의를 돌려 달라', '흉수를 처벌하라' 이런 것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중공 무장경찰에게 사살된 가족의 시신을 가져가게 해달라고 애걸한 것이었습니다.
[ⓒ SOH 희망지성 국제방송 soundofhope.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