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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인가 인재인가?

편집부  |  2011-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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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천포쿵(陳破空 시사평론가)

 

[SOH] 1950년대 말 중공은 대약진 운동을 시작 했습니다. `영국과 미국을 따라잡자‘란 구호 속에서 중공은 사람의 담이 클수록 토지 생산량이 높다고 선전했습니다.

 

마오쩌둥은 직접 각 지역에 식량생산을 과장하도록 유도하고 곳곳에서 1묘(畝)당 생산량이 만근에 달한다는 거짓 뉴스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순식간에 터무니없이 높은 목표와 마구잡이식 지휘가 전국에 성행했습니다.


공산바람에 허풍바람이 겹쳐 전국을 휩쓸었습니다. 철강 생산을 기간산업으로 한다며 전국에서 철을 마구 채집했고 1,800만 톤 철강 생산을 위해 가마솥을 부수고 숟가락까지 내놓았는데 산림도 마구 채벌해 생태환경에 훼멸적인 파괴를 입혔습니다.

 

가장 치명적이었던 것은 국민경제가 붕괴되어 곧바로 대기근이 시작된 것입니다.


1960년대 초 약 3,800만 명이 산채로 굶어 죽었습니다. 짧은 3년 동안 굶어 죽은 사람의 수는 중국 수천 년 역사에서 굶어 죽은 사람들의 총수보다 더 많았습니다. 이런 인재는 정부 행위로 인한 비극이었고 중공 이전의 역대 왕조에서는 모두 발생한 적이 없었습니다.


이와 동시에 중공은 원자폭탄 제조에는 국고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중공은 첫 번째 원자폭탄을 만드는데 41억 달러를 들였습니다. 만약 이 돈을 백성들에게 썼다면 그 당시 물가로 환산할 때 굶어 죽은 3,800만 명은 한 사람도 죽지 않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대기근에 대해 중공은 3년 자연재해라고 거짓말을 했고 마오쩌둥은 `7할은 천재이고 3할이 인재‘라고 했습니다. 류사오치(제2대 국가주석)는 이를 도저히 지켜볼 수 없어 그 자리에서 `3할은 천재이고 7할이 인재’라고 폭로 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마오쩌둥에게 목숨을 잃게 됩니다.


사실상 중공 통치 하에 발생한 거의 매 차례 재난의 배후에는 인재가 천재를 능가하고 인재에 인재가 겹치는 격이었습니다.

 

1976년 당산 대지진 때 중공은 3년 뒤에야 사망자 숫자를 공개했는데 24만 명이 사망하고 16만 명이 중상을 입었다고 했습니다. 여러 차례의 직권남용과 부정행위를 범한 중공은 중국인들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정계에서 물러나지도 않았습니다.

 

또 수시로 중공 정권을 미화해 나쁜 일을 좋은 일로 꾸몄으며 진실을 은폐하는 수법은 아직도 고치지 못했습니다.

 

사스, 조류독감, 에이즈마을, 탄광사고 등에 대해 중공은 늘 공산당과 정부의 보살핌과 재해 상황 통제 등을 말하지만 재해예방을 의도적으로 느슨히 해 미래의 인재를 감추고 있습니다.


[ⓒ SOH 희망지성 국제방송 soundofhope.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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