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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파인가 좌파인가?

편집부  |  2011-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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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천포쿵(陳破空 시사평론가)

 

[SOH] 1957년 마오쩌둥은 백화제방 백가쟁명이란 옛말을 인용해 민중들에게 `공산당에 대한 의견을 말하라‘고 독려하면서 `말하는 사람은 죄가 없고 듣는 사람은 새겨들어야 한다’고 보장했습니다.

 

중국의 지식인들은 매우 환영했고 국제사회도 중공이 민주화된다는 환상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불과 몇 달 뒤 중공은 갑자기 태도를 바꿔 반격에 나섰습니다. 공산당을 위해 의견을 낸 55만여 명의 지식인들은 전부 우파로 몰렸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박해를 받아 사망했고 일부 사람들은 감옥에  갇혔으며 대다수는 노동 수용소에 갇혔습니다. 마오는 이것이 공공연한 음모라는 뜻의 양모(陽謀)임을 인정했는데 그의 목적은  굴에서 뱀을 끌어내기 위한 것 이었습니다.


중공이 반우파 운동에 나선 배경은 이렇습니다.

 

1956년 소련에서는 후루시초프가 등장해 스탈린을 비판하며 개인숭배를 없앴습니다. 마오에게 있어 자신과 유사한 처지에 있던 스탈린의 말로는 슬픔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에 반우파 운동으로 중국내의 이의를 가진 사람들을 제거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그리하여 대다수 사회주의 국가의 독재가 상대적으로 완화되어 정치적 통제가 느슨해지고 국민들의 고통이 감소되었을 때 중국은 반대로 발전했습니다.

 

반우파는 중국 역사상 20년간 공포와 피비린내 나는 분위기를 만들었습니다. 중화 민족은 이중의 재난과 이중의 비극을 당했습니다. 바로 공산당 통치에 공산주의 진영에서 중공의 극단적인 폭정까지 겹친 것입니다.


사실상 이때 우파로 몰린 사람들은 우파라기보다는 모두 진정한 좌파들이었습니다.

 

그들 중 대다수는 모두 당시 상하이와 같은 국민당 통치 지역에서 연안과 같은 공산당 해방지역으로 달려간 좌익 친공 지식인들입니다. 인류 해방의 이상을 가득 품었던 이들은 오히려 극단적인 독재를 전제로 철창 속으로 뛰어든 것입니다.


1980년 중공은 반우파 운동을 재평가해 당시 반우파 운동은 마오가 기획하고 덩샤오핑이 주관했습니다.


덩샤오핑은 사심으로 우파의 누명을 벗겨주지 않고 단지 시정하기만 했습니다. 그때 반우파는 필수적인 것이었으며 단지 조금 큰 잘못만 저질렀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약 100명가량의 유명인사와 각 지역 지식인 1만여 명은 여전히 우파로 남겨 시정하지 않았는데 이것은 덩샤오핑이 직접 결재한 것입니다.

 

[ⓒ SOH 희망지성 국제방송 soundofhope.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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