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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한국전쟁을 도발했을까?

편집부  |  2011-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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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천포쿵(陳破空 시사평론가)

 

[SOH]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김일성은 38선을 넘어 한국을 공격했고 이로부터 3년에 걸친 한국전쟁을 도발했습니다.

 

인민군은 아주 빨리 서울과 남한 대부분 지역을 점거했고 한국군은 부산을 중심으로 겨우 1만 평방킬로미터에 달하는 좁은 지역으로 밀려났습니다.


 

인민군이 전쟁 초기에 우위를 점할 수 있었던 것은 중공과 구 소련의 강력한 지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중공은 일찍이 1949년 정권을 수립한 직후 인민해방군에서 69,000명에 달하는 조선족 군인들을 차출해 북한 인민군에 편입시켰는데 이는 당시 북한군 총 수의 절반을 차지한다고 합니다.

 

전쟁이 발발한 후 중공은 또 인민해방군에 소속되어 있던 조선족 군인 10만 명을 다시 북한 인민군에 편입시켜 북한군의 주력으로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1950년 9월 15일 유엔군으로 참전했던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면서 한국을 도와 반격에 나서 잃었던 땅을 신속히 되찾았습니다.

 

또 38선을 넘어 평양을 공격하면서 북한, 중국 변경까지 공격해 나갔고 이때 북한에 잠입하여 인민군을 도와주던 중공의 지원군은 연합군과 교전하면서, 항미원조(抗美援朝), 즉, 미국에 대항해 북한을 원조한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2년이 넘게 크고 작은 전투를 치른 후 쌍방은 1953년 휴전협정을 맺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남한과 북한이 혹은 중국과 미국 쌍방이 승부를 가리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남북한으로 나눠져 다시 전쟁 전의 상태로 돌아간 것으로 볼 때 전쟁을 도발한 김일성과 북한의 수치스러운 패배로 볼 수 있습니다.

 

중공 측의 추정에 따르면 전쟁기간에 중공군 14만 명이 사망했고 25만 명이 포로가 되거나 실종되어 총 83만 명이 희생되는 큰 대가를 치렀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한국 측의 요구에 의해 미군은 아직까지 남한에 주둔하고 있습니다. 이는 중공의 전략적인 실패임이 여지없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제 한국은 선진국으로 도약해 전세계에 우뚝 섰고 북한은 기아에 허덕이는 나라로 전락해 도처에 이재민이 가득합니다. 군사, 경제, 도덕, 지정학적 측면 등 각 방면에서 종합해볼 때 남북한과 미국, 중국 중 누가 이기고 졌는지 알 수 있습니다.

 

북한은 지금까지도 자국민들이 쓰러지고 굶어 죽어도 전쟁 준비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바로 뒤에 중공이 버티고 있기 때문입니다.   


[ⓒ SOH 희망지성 국제방송 soundofhope.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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