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천포쿵(陳破空 시사평론가)
[SOH] 중국 역사는 수 천년동안 여러 차례의 이합집산과 흥망성쇠를 거쳤으나 시종 독재와 전제정치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신해혁명은 잠시나마 공화와 민주를 가져다주었지만 아주 빨리 전제로 회귀해 버렸다고 합니다. 마치 자유와 인연이 없는 듯 노역을 동반해야 했습니다.
민중들은 봉기를 일으켰고 여러 차례 야심가를 위한 무대를 만들어 주었고 최고 권력을 위한 투쟁으로 변했지만 매 차례 파동이 잠잠해지면서 전제와 독재가 새로운 얼굴로 다시 복귀했습니다. 한 왕조가 일어나 흥성하고 부패하며 몰락하는 이런 연극은 중국에서 반복적으로 공연 되었습니다. 오늘날 중공의 전제는 이 연극을 극단까지 끌어올린 것입니다.
민권을 핵심으로 하지 않는 혁명은 단지 최고 두목을 중심으로 달려 나갈 뿐이며 제도 개선에 힘을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강산을 바꾸는 데만 열중한다. 극권과 전제는 이렇게 반복된다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중국 역사에서 가장 큰 교훈입니다.
민간이 개인숭배의 정서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강자는 전제의 욕망을 내려놓지 못하고 국가도 인치의 그림자를 떨쳐버릴 수 없다고 합니다. 이에 황제권력 혹은 최고 권력을 에워싸고 각종 세력들이 끝없는 아귀다툼을 하게 됩니다. 사상과 문화의 속박은 역대 왕조에서 서로 비슷했는데 이 때문에 민족 전체의 생명력도 억압당해 중화민족은 날이 갈수록 보수적으로 변했습니다. 유구한 중국 역사상 일찍이 두 차례의 문화적 휘황이 있었습니다.
춘추 전국시기에는 여러 가지 사상이 등장해 자유롭게 식견을 나눴고 중화민국 초기에는 언론 자유와 참신한 기상이 있었습니다. 세계적으로나 역사적으로 큰 영향을 일으켰던 중국의 사상가들은 대부분 이 두 시기에 태어났습니다. 예를 들어 멀리 공자와 맹자가 있었고 최근에는 후스(胡適)와 루쉰(魯迅)이 있습니다. 전자는 국가가 분열 또는 분리된 시기에 나타났고 후자는 공화와 민주가 갓 태어날 무렵에 나타난 것입니다.
공자는 '나라의 질서가 바로잡혀 있을 때에는 돈이나 지위가 없다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된다. 그러나 나라가 어지러울 때는 돈이 있고 지위가 높다는 것이 수치이다. 그리고 법률로써 이끌고 형벌로써 다스리면 백성들은 이 그물만 벗어나려 하여 부끄러움을 모른다. 그러나 덕으로써 인도하고 예의로써 다스리면 그들은 부끄러움을 알고 나아가 올바른 사람이 되려 한다' 라고 말했습니다.
지금의 중국은 중공의 영향으로 이미 도덕이 미진하고 예를 갖추기 어려울 정도로 부패와 이기적인 사회가 만연해 있습니다. 예를 알고 도덕을 중시했던 중국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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