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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H 산책] ‘정결(貞潔)’은 도덕의 초석이자 인류 행복의 근원(3)

편집부  |  2020-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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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SOH 자료실]


[SOH] ‘음란’은 정결의 반대 개념으로, 성적 욕망이 홍수처럼 넘쳐 재앙이 될 지경인데도 통제할 수 없는 상태를 뜻한다. 음란은 독과 같아 일찍이 거의 모든 고대 문명이 파멸한 주요 원인이다. 속담에 “만 가지 악 중에서 음란이 가장 나쁘다”고 했다. 인류가 신이 준 계명을 준수하지 못한다면 신 역시 인간을 포기할 것이고, 그러면 인류 문명은 급속히 쇠락해 훼멸에 이르게 된다.


5. 음란은 인류 문명을 훼멸하는 독약


(1) 중국 역대 왕조의 멸망을 부추긴 음란


중국 역대 왕조의 멸망은 예외 없이 모두 부패, 타락, 음란에서 시작됐다.


《봉신연의(封神演義)》는 한 왕조가 어떻게 음란으로 인해 멸망했는지를 보여주는데, 주왕(纣王)이 자기 민족을 창조한 여와(女娲) 신상(神像)에 음란한 시를 써서 모독죄를 범한 데서부터 시작된다. 이후 달기(妲己)가 나타나 조정에 재앙을 가져오고 나중에 절대다수의 귀족이 음란하고 사치하고 부패했다. 결국 여러 제후가 주나라 무왕(武王)의 인도하에 반란을 일으켜 상(商) 왕조를 무너뜨렸다.


‘봉화로 제후를 희롱하다’는 전고(典故)는 2천 년 넘게 전해오는, 음란이 왕조의 멸망을 야기한 고사다. 《사기》에 따르면 포사(褒姒)가 잘 웃지 않자 주(周)나라 유왕(幽王)이 온갖 방법을 동원해 그녀를 웃기려 한다. 하지만 포사는 시종 웃음을 보이지 않았다. 일찍이 유왕은 적의 침입을 알리기 위해 봉화대와 큰 북을 설치해 놓았는데, 어느 날 유왕이 봉화를 올렸다. 그러자 제후들이 병사들을 이끌고 도성으로 달려왔다. 하지만 그들이 발견한 것은 적군이 아니었다. 포사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제후들의 모습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유왕은 아주 기뻐하면서 이때부터 여러 차례 봉화를 올렸다. 나중에 제후들은 봉화를 믿지 않게 됐다.


주유왕 11년(기원전 771년) 신(申)나라 연합국과 서이(西夷)인 견융(犬戎)이 합세해 유왕을 공격해왔다. 유왕은 봉화를 올렸지만 구원하러 달려온 제후는 없었다. 결국 견융은 유왕을 여산 아래서 죽이고 포사를 포로로 잡아갔다. 서주(西周)는 이렇게 멸망했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서주가 멸망한 주요 원인을 “유왕이 무도하고 음란했기 때문”이라고 했다.[1]


한편 위진남북조시기(220~589년)는 삼국양진남북조라도도 하는데, 중국 역사상 300~400년에 걸친 혼란기였다. 왕조의 교체도 그 어느 때보다 빨랐다. 그 원인을 따져보면 예외 없이 조정이 부패하고 군주가 황음무도했다.


북제(北齊) 4번째 황제(561~565년)인 무성제(武成帝) 고담(高湛)은 몹시 잔인하고 황음무도한 인물이었는데, 한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2]


《북제서(北齊書)·열전》에 따르면 북제의 문선제(文宣帝) 고양이 사망한 후 동생인 고연이 황제가 됐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그도 사망하자 고담이 제위를 이었다. 고담 역시 고양의 친동생이었다. 그는 호씨(胡氏)를 황후로 책립하던 날 밤에 고양의 황후였던 이조아(李祖娥)의 궁에 들어가 음란한 짓을 강요했다. 이 씨가 거부하며 “폐하께선 천자이신데 어찌 시동생과 형수의 도리를 돌보지 않으십니까?”라고 했다. 그러자 고담은 화를 내면서 “내 말을 듣지 않으면 당장 주살하겠다”고 했다. 당시 이 씨에게는 아들 고소덕이 있었다. 그녀는 아들이 화를 입을까 봐 두려워 어쩔 수 없이 고담의 말에 따라야 했다. 이후 고담은 공개적으로 이 씨의 궁에 출입하며 그녀를 후궁 대하듯 했다. 머지않아 이 씨가 임신을 해서 딸을 낳자 몰래 아이를 버렸다.


고담이 이 소식을 듣고 화가 나서 궁궐에 들어가 칼등으로 이 씨를 때리면서 욕을 했다. “네가 내 딸을 죽였는데 내 어찌 네 아들을 죽이지 않으랴!” 곧장 고소덕을 끌고오게 해 이 씨가 보는 앞에서 때려죽였다. 이 씨가 큰 소리로 울부짖자 고담이 더욱더 화가 나서 이 씨의 웃옷을 벗기고 직접 채찍으로 때렸다. 이 씨가 까무러치자 고담은 이 씨를 자루에 담아 도랑에 버리게 했다. 나중에 건져 올렸을 때 이 씨는 이미 숨이 끊어질 지경이었다. 며칠 후 궁녀들이 이 씨를 소수레에 실어 묘승사로 보내 비구니가 되게 했다.


무성제 고담은 간사한 소인배들을 총애했고 자신도 조정에서 음란한 짓을 일삼았으며 멋대로 종실과 대신들을 죽였다. 순식간에 조정이 아수라장이 되고 사회도 혼란에 빠져 국력이 신속히 쇠퇴했다.


(2) 음란은 세계 문명국가의 재난과 훼멸의 원인


3쳔여 년 전에 세워진 바빌로니아는 당시 상당히 문명이 발달한 나라였다. 그러나 성 풍속은 상당히 특이하고 음란했다. 심지어 방탕하기 그지없던 알렉산더 대왕마저 놀랄 정도였다.


성경에서 바빌로니아를 음란의 소굴처럼 묘사한 것은 도덕 파괴의 오욕(汚辱)을 대표하기 때문인데, 이는 이 나라의 특수한 제도에서 비롯됐다.


그리스의 철학자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바빌로니아 여인은 모두 아프로디테 신전에서 ‘신성한 창녀’가 돼 낯선 남자들과 성관계를 가져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신전 안에서는 창녀가 아니라 신성한 대역으로 간주됐다. 즉, 아프로디테 여신을 대신해 신전 내에서 음행을 했다.


바빌로니아는 ‘신성한 창녀’ 외에도 또 정식으로 매춘하는 창녀가 있었고, 보통 부녀자라 해도 성 관념이 아주 개방적이었다. 당시 여인들은 혼전 성관계가 아주 유행했다. 하지만 혼인 후에는 일부일처제를 유지했고 남편에게 충절을 표현해야 했다. 만약 여성이 간통죄를 범했을 때는 가벼우면 나체로 수영하게 하고 무거우면 물에 빠뜨려 죽였다. 심지어 어떤 학자들은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매일 음욕 속에서 살았으며 남자들은 매일 신전에 가서 음행을 했다고 한다.


욕망의 나락으로 떨어졌기 때문에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외부 종족의 침입에 저항할 정신이 없었다. 결국 바빌로니아는 페르시아에 멸망하고 말았다.


고대 이집트가 멸망한 원인 또한 다르지 않다. 고대 이집트의 마지막 여왕은 바로 클레오파트라 7세였다. 그녀는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프톨레마이오스 12세와 클레오파트라 5세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었다. 당시 이집트의 전통에 따라 이복동생과 결혼해 정권을 잡았다. 하지만 근친결혼과 남편의 성 기능 문제로 후사가 없었다. 그러다 로마 집정관 카이사르의 눈에 들어 그의 애인이 됐고 아이까지 낳았다. 카이사르가 사망한 후 그녀는 또 로마 집정관 안토니우스의 정부가 됐다. 하지만 안토니우스가 전투에서 패배한 후 클레오파트라는 아들과 함께 피살당했고, 그로 인해 고대 이집트 왕국은 사라졌다. 근친결혼은 후대로 갈수록 번식능력을 떨어뜨려 결국 자손이 끊어지고 제국이 사라지는 원인이 된다.[3]


고대 문명은 대체로 상당히 긴 시간 유지됐다. 하지만 찬란했던 고대 그리스 문명은 겨우 4백 년간 지속했다. 예일대학에서 출판한 자료에[4] 따르면 고대 그리스 문명은 겨우 177년간 존재했을 뿐이다.


전통적으로, 고대 그리스는 1차 올림픽이 열렸던 기원전 776년에 시작돼 알렉산더 대왕이 세상을 떠난 기원전 323년에 끝난 것으로 본다.


올림픽은 인류의 건강활동으로 인식돼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다.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소위 체육의 ‘체(體)’는 나체를 가리키며 ‘육(育)’은 생육을 의미한다. 따라서 고대 그리스의 경기와 체육활동은 거의 모두 나체로 진행됐다. 가장 원시적인 의미에서 보자면 이는 그리 큰 잘못은 아니었다. 하지만 정결을 버리고 성욕의 만족을 추구하면서 필연적으로 음란을 초래했고 공개적인 나체는 끊임없이 사람의 욕망을 자극했다. 음부를 가리는 천마저 사라지자 정결의 마지막 물리적 방어선이 사라졌고 자연스레 음란을 향한 대문이 크게 열렸다.


음란은 신이 사람을 포기하게끔 하고, 이어서 성병, 돌림병, 출산율 저하를 불러 다른 민족에게 지배당하거나 스스로 파멸하게 한다.


역사책은 ‘스파르타인들은 우수한 후대를 선택하기 위해 건강하지 못한 영아를 전부 죽이는 극단적인 행동을 묘목 솎아내기와 유사한 우성(優性) 육성 행위로 이해했다’고 말한다. 고대 그리스 사회의 성병은 사실 아주 심각했고, 그들이 낳은 아이들의 결함률이 너무 높아서 문제가 있는 영아를 대량으로 죽여야 했다. 이 또한 스파르타 민족이 파멸한 주요 원인이다.


그렇다면 고대 그리스 인들의 성병은 대체 얼마나 심각했을까? 무도한 난륜과 간통으로 절대다수의 그리스인들은 성병에 감염됐다. 특히 그들을 가장 곤혹스럽게 했던 성병은 항문곤지름과 생식기포진이었다. 당시 그리스인들은 특히 남자들 간의 항문성교를 좋아했다. 이는 현대인들이 이해하는 남성 동성애와는 다른데 당시 그리스 사람들은 이런 변태 행위를 통해 남자의 생식능력을 상대의 체내에 주입할 수 있다고 믿었다.


각종 기괴한 변태성욕은 사실 욕망이 방종된 것으로, 인류의 번식은 물론 심지어 동물의 번식활동에도 위배된다. 음란은 인류의 영혼을 병들게 하고 또 본인도 인류 문명에서 축출돼 소멸하게 할 것이다.


지금의 동성애자와 동물성애자들은 종종 고대 그리스인과 이집트인의 행위로 자신들의 방종을 정당화한다. 하지만 이는 아주 천박하고 무지한 관념에서 비롯된, 자신의 타락을 변명하기 위한 궤변에 불과하다. 이러한 초기 문명 속에서 남성들 간의 음란은 종종 배타적이지 않았고 여성과의 관계도 배척하지 않았으며 아주 강한 목적성을 띠었다.


그 목적은 성적인 쾌감 자체가 아니라 변태적이고 착오적인 믿음, 즉 생식능력을 강화하기 위함이었다. 그들은 불임이나 여성공포증 환자가 아니었다. 그들의 항문성교와 동물성교는 강력한 생식능력을 얻은 후 아내와 더 건강한 후대를 낳기 위한 행위였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든 음란은 합리화될 수 없다. 결국 그들이 내세우는 이유 역시 일관되게 음란을 반대해온 종교의 입장에서뿐만 아니라 현대과학의 관점에서도 황당한 억설(臆說)이다.[5]


많은 역사학자가 고대 그리스를 서방 문명의 초석으로 보는데, 고대 그리스 문화는 로마 문명에 아주 큰 영향을 끼쳤고 로마는 그 문명을 활짝 꽃피웠다. 일찍이 로마제국의 문명은 상당히 발달해서 오늘날 서방 문명의 근원으로 불린다.


하지만 바로 음란이 가득한 고대 그리스 문화의 영향을 깊이 받았기 때문에 찬란했던 로마제국도 신속하게 멸망으로 나아갔다. 많은 역사학자는 음란한 사회 풍기가 로마인들의 욕망을 방종시켜 인구가 감소한 것이 로마가 멸망한 중요 원인의 하나로 본다.


영국의 역사학자 에드워드 기번(Edward Gibbon)에 따르면 당시 카라카라 목욕탕은 12만 4400m²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로, 동시에 2300명이 목욕할 수 있었다고 한다. 남녀 혼욕이었고 음란한 일들이 끊임없이 발생했다.


또 수많은 광란의 성축제가 있었는데, 가령 로마꽃축제에서는 창녀 20만 명이 동시에 거리로 쏟아져나왔다. 이 축제에서 가장 이목을 끈 것은 창녀 수백 명이 거대한 꽃다발을 끌었는데 꽃다발 위에 아주 큰 음경이 우뚝 서 있었다. 그들은 이것을 신전 안에 위치한 플로라 여신의 몸속에 내려놓는다. 그것은 거대한 여성 생식기를 모방한 것이다. 거대한 음경과 플로라의 생식기가 결합한 후 원형극장 무대 위에서 공연을 하는데 소녀들이 허리만 겨우 가리는 비단 치마를 마음대로 펄럭이며 서로 미를 뽐낸다. 이 기간에 창녀들은 또 남자들에게 무료로 ‘비너스의 봉사’를 제공한다.[6] 로마에는


이 축제뿐만 아니라 동성애 축제도 있었다. 동성애는 당시 일종의 혼인 형태로 보호받았지만, 아이를 낳거나 기르진 않았다. 음란한 풍속은 고대 로마인들(자유인 이상의 사람을 지칭)의 출산율을 크게 떨어뜨렸다.


기록에 따르면 로마 트로이에서 결혼한 35명의 왕 중에서 절반 이상이 자식을 낳지 못했고, 태어난 아이들도 저능아가 많아서 왕실에 제대로 된 자식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7] (계속) / 에포크타임스


————-


1《姬宮湦》,https://baike.baidu.com/item/姬宫湦/3025338?fromtitle=周幽王&fromid=2173798#ref_[17]_19275511


2  《历史人物简介:北齐武成帝高湛荒淫无度》,https://news.pconline.com.cn/1027/10271789.html


3 《一个淫乱的民族必定走向灭亡》,http://www.360doc.com/content/16/0106/03/3674836_525799114.shtml


4 The “Classical Age” is “the modern designation of the period from about 500 B.C. to the death of Alexander the Great in 323 B.C.” (Thomas R. Martin, Ancient Greece, Yale University Press, 1996, p. 94).


5 《真正的奥运会,竟然是一部淫乱史》,https://m.gelonghui.com/p/84954


6 《罗马帝国社会风气有多放纵?妇女与陌生男性共浴》,http://news.ifeng.com/history/shijieshi/detail_2011_03/10/5069634_0.shtml


7 《淫荡民风使古罗马帝国生育率下降、最终灭亡!》http://bbs.tianya.cn/post-worhttp://bbs.tianya.cn/post-worldlook-674040-1.shtmlldlook-674040-1.s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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