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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차이나] 中 굴기의 일등공신 만찬 외교 ②

디지털뉴스팀  |  2020-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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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편집]


[SOH] 1980~1990년대 중국 정치인들이 보여준 반국에도 참고할 부분이 많다. 중국은 1978년 덩샤오핑의 개혁 개방 선언과 이듬해인 1979년 미중 수교 이후 서방세계와 적극적인 교류를 펼치며 1980년대 중반까지 베이징에서 모두 30차례의 정상회담을 가졌다.


중국의 만찬 외교


당시 중국 외교의 특징은 만찬 외교였다. 초청 국빈의 숙소를 황제 행궁이었던 조어대로 정하고 여기서 최고 요리로 만찬을 열거나 인민대회당에서 황제가 먹었다는 요리로 오찬을 마련하는 식이었다.


황제에 준하는 예우로 손님을 대접했던 것인데, 1984년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리셴녠 중국 국가주석의 조어대 만찬, 같은 해 캄보디아 시아누크 국왕과 자오쯔양 총리의 오찬, 1986년 덩샤오핑이 함께한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 만찬의 메뉴는 모두 불도장이었다.


주요 정상들과의 만찬에 불도장을 준비한 이유는 무엇일까? 불도장의 유래와 내력에서 중국의 속내를 엿볼 수 있다. 불도장은 맛있는 냄새에 식욕을 참지 못한 스님이 담장을 뛰어넘어 음식을 먹고는 파계했다는 요리다.


또 청나라 황제가 여름 보양식으로 즐겨 먹은 요리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 전부 마케팅 차원에서 만들어진 이야기다.


청나라 황제는 불도장을 구경도 못 했다. 요리가 생긴 역사도 짧거니와 황제가 살던 자금성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 특산 요리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불도장은 푸젠성에서 만들어진 요리다.


청나라 말 푸젠성 금융기관인 관은국 책임자가 상급 관청 감독관을 대접하려고 만든 음식이 불도장의 시초다. 속된 말로 감독관을 구워삶으려고 산해진미를 동원해 한 번 맛보면 반하고 감동할 수밖에 없는 요리를 만들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은 왜 1980년대 중반, 불조장으로 국빈을 대접했을까?


불조장이 유명해진 것은 레이건 대통령과의 만찬에 등장하면서부터다. 중국 정부는 베이징의 유명 요리사를 제쳐놓고 푸젠성 푸저우의 불도장 전문 음식점 요리사를 직접 베이징으로 불러 만찬을 준비시켰다.


정확한 배경이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불도장이 황제도 먹어보지 못한 요리, 그동안 서방 세계는 물론 중국에도 알려지지 않은 최고의 보양식, 스님조차 파계시켰다는 깜짝 놀랄 만한 요리라는 이야기를 내세워, 손님을 대접하겠다는 중국의 의지가 강하게 반영되어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지금은 경제 대국, 군사 강국이 되어 큰소리치는 중국이지만 1980년대 중반만 해도 개혁 개방을 선언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고 외자 유치에 혈안이 돼 있던 시기였다.


일부 화교 자본을 제외한 외국 자본은 관심만 보일 뿐 멀리서 지켜만 보고 있을 때였다. 중국은 열과 성을 다해 손님을 대접해야 했고 불도장을 처음 만들었다는 푸젠성 관은국 책임자처럼 정성과 감동으로 외국 투자자를 유치해야 했다.


지금은 기억조차 희미해졌지만 1980~1990년대 중국은 외자 유치를 위해 처절할 정도로 노력했다. 그 흔적이 바로 식탁 위의 불도장이다.


중국 외교 만찬의 변화 추이를 봐도 중국의 밥 먹는 자리, 빈국의 의미를 엿볼 수 있다. 만찬 외교를 펼쳤던 만큼 중요 국빈의 경우 황제에 준하는 예우로 대접했고, 차리는 요리도 ‘4채 1탕’, 즉 국 하나에 네 가지 요리가 원칙이었다.


메인 요리가 그렇다는 뜻이고 전체 요리와 후식까지 포함하면 키신저를 대접할 때처럼 12가지를 훌쩍 넘어섰다. 1980~1990년대 중국의 손님맞아 식사에는 이처럼 대단한 열과 성이 담겨 있었다.


지금도 중국 정부가 국빈 초청 외교에서 정상 만찬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에는 변함없지만 특히 2008년의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작지 않은 변화가 생겼다.


후진타오 당시 주석이 주최한 올림픽 개막식 오찬에서는 메뉴가 종전과 달리 3채 1탕으로 바뀌었다. 형식적으로는 간소화를 명분으로 요리 가짓수를 줄인 것뿐이지만 과연 그럴까?


2008년은 중국이 대내외적으로 우뚝 솟았다는 굴기를 자신하기 시작한 해다. 하·은·주 시대 이래로 계속된 중국의 밥상에서도 중국의 변화를 읽을 수 있다.



디지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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