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유교의 3경(經) 중 하나인 『주역(周易)』에서는 욕심과 성냄을 누르는(窒欲懲忿) 것을 중요하게 여겼고, 공자는 엉뚱한 사람에게 화를 내지 않는 점에서 제자 안연을 높이 평가하였으며, 『대학(大學)』에서도 “마음에 분노가 있으면 마음을 바르게 할 수 없다(心有所忿懥則不得其正).”라고 하였다.
송대 학자 진덕수(陳德秀)는 〈화보(和父);양대동(楊大同)이 보시할 목적으로 간행한 「보문품」에 대한 발문〉에 아래 일화를 수록한다.
이고 선사는 어느날 약산 선사에게 “『법화경』 「보문품(普門品)」에서 ‘거센 폭풍이 배를 몰아 나찰(羅刹) 지옥에 떨어트린다.’라고 했는데, 무엇이 거센 폭풍입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약산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이 멍청한 놈. 그런 건 물어서 무얼 하려고?”라고 하였다.
이고가 발끈해서 크게 화를 내자 약산 선사는 웃으면서 “화내는 마음이 바로 ‘거센 바람이 배를 몰아간다.’라는 경우입니다.”라고 하였다. 이로 미루어 보면 이욕(利慾)이 치성하면 큰 구덩이에 빠지게 되고 탐닉에 빠지면 고해(苦海)에 빠지는 것이 되니, 한 생각이 청정하면 뜨거운 불도 못이 되고, 한 생각이 깨달으면 배는 피안(彼岸)에 도착한다.
이 내용은 조선에까지 전해진다. 조선 중기의 문신 이준(李埈)은 《자경8수(自警八首)》 중 <제분(制忿)편> 시구에서 “약산(藥山)의 경계를 그대는 모르는가? 지옥을 표류하는 게 한 순간이라네”라고 하였다.
구한말 유학자 곽종석(郭鍾錫)은 《인도혹문(人道或問)》이라는 글에서 “인심과 도심을 배에 비유하자면 (생략) 간혹 중간을 지나자마자 태풍이 몰려와 배를 기울이고 삿대를 부러트려 운남(雲南)을 표류하다가 나찰로 떨어지게 되는 경우는 인심(人心)의 기가 이치를 거슬러 악행을 저지르는 경우이다.”라고 하였다.
화는 사람이 외부의 위협에서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내는 원초적인 감정이다. 외부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앞서 언급한 나찰 지옥과 같은 상태를 초래한다. 그렇기에 이를 빨리 밖으로 배출해야 마음이 편안해진다.
하지만 인간은 야생 동물과 달리 사회적 관계에서 유래한 우열과 비교가 화를 촉발하는 요소이기 때문에 함부로 화를 낼 경우 공동체와 자신에게 심각한 타격을 남긴다. 그렇다고 해서 화를 무작정 참는 것도 해결책은 아니다.
화는 압력밥솥 속의 증기와 같아 억누르기만 한다면 언젠가는 터지게 된다. 그래서 인간은 화를 내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이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이 역설하였으며, 유가나 불가에서도 심성 수양의 핵심으로 자리 잡는다.
붓다는 화가 나면 들숨과 날숨을 세는 수식관(數息觀)을 제시하였고, 공자는 화가 나면 이후의 곤란해질 경우를 생각하라[忿思難]고 말하였다. 공통점은 화가 일어나는 틈을 잘 파악해서 잠시 멈추는 순간을 가진다는 것이다.
다른 면에서 보자면 불가에서는 화를 해소하는 데 중점을 둔 반면 유가에서는 우선 당장 올라오는 화를 이성적으로 누르라고 한다. 이는 불가는 속세와 거리를 둔 수행자를 위한 말이고, 유가는 사회적 관계를 염두에 둔 데서 온 차이점일 것이다.
옛날에는 개인의 감정보다 공동체를 우선시하는 사회였다. 그래서 공동체의 행복을 위해 개인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 오늘날은 개개인이 건강해야 공동체도 건강하게 유지된다는 점이 중시되면서 개인의 감정 표현이 훨씬 자연스러워졌다.
하지만 개개인이 감정을 세련되게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무지한 실정이라고 할 수 있다. 우발적 범죄나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각종 민폐로 인한 다툼도 계속 늘고 있다. 화는 또 다른 화를 부르고 재앙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한국고전원
디지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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