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나는 과학이다. 현대인들은 나에 대해서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 매우 많다.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언제 어떻게 생겼는가? 나는 어떤 한계가 있고 또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도대체 과학 정신이란 무엇인가? 대중들은 이를 모두 홀시하거나 무시하는 것 같다.
■ 과학의 정의
과학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줄곧 정확한 정의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과학 자체도 끊임없이 변화하며 발전해 왔다.
과학기술계는 나(과학)에게 수많은 정의를 내렸지만 정확하게 표현할 수는 없었다. 특히 중국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기존 고대 그리스에서 처음 유래한 ‘과학’ 개념의 내포를 대부분 상실했다.
현재 중국 학계가 경악하는 사실은, 중국의 학술용어 중 60% 이상이 일본어 번역에서 온 한자라는 점이다.
무슨 뜻인가? 바로 철학, 경제, 사회, 법률, 과학 등등 많은 학술적인 전문용어는 일본어에서 직접 따온 것이다.
일본어 한자에서 가져온 것이라고는 하지만, 문제는 일본어 한자가 고대 중국 한자의 뜻과 다르다는 것을 감안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과학(科學)’이란 용어는 잘못된 번역이다. ‘과학’은 일본어에서는 ‘분과(分科)의 학문’을 뜻하는데, 이게 무슨 내(과학)가 처음 생겼을 때의 그 본래 의미인가?
그에 비해 고대 그리스의 ‘과학’이라는 말의 의미에 좀 더 가까운 해석은 ‘과학은 일종의 지식’이라는 말이다. 즉 과학은 자연과 사회, 사유에 대한 지식 체계이다.
‘과학’에 대해 아직은 국제적으로 공인받은 통일된 정의가 없다. ‘과학’에 대한 이해와 해석은 나라마다, 학자마다 다르다.
서구 언어에서 ‘과학(Science)’은 세상을 끊임없이 인식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지식이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다양한 도구와 제품을 만들어 생활에 활용할 뿐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생명과 우주를 탐구하기도 한다.
■ 과학의 발전 과정
과학은 고대 그리스에서 기원했다. 삶의 질을 높여야 한다는 필요성과 인체, 생명, 우주탐사에 대한 호기심 충족이 최초의 발전 동력이었다.
학계에서는 5천 년 전 중국 황제 시대에 최초로 수학 지식과 수학 도구를 발명한 것으로 본다.
2천5백 년 전 거의 동시에 등장했던 불교와 도교는 생명과 우주를 인식하는 새로운 과학 체계를 가져다주었다.
‘서양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그리스인 탈레스(Thales of Miletus, 기원전 약 624~546)는 자연법칙을 해석하는 수학 언어를 창조했다.
아랍인들은 전통적인 서양 과학을 새로운 번영의 시대로 이끌어 연금술, 대수, 천문학 등에서 독특한 공헌을 했지만, 12세기까지만 이어졌다.
동양에서는 중국의 과학기술의 발전이 17세기까지 이어졌다. 7세기 당나라에서 17세기 명조 말까지 1천여 년 동안 발전하면서 천인합일(天人合一)에 기초한 신앙과 과학이 체계적으로 발전했다.
이런 체계 속에서 농(農)· 의(醫)· 천(天)· 산(算) 4대 학과는 물론 도자기, 견직, 건축 등 3대 기술은 옛 중국인들의 지혜의 결정체가 되었다.
11세기 이후 유럽의 십자군은 아랍인들로부터 중국의 4대 발명품과 그리스 학문을 도입했다.
유럽의 르네상스는 그리스의 자연철학적 인식을 전반적으로 더욱 발전시켰다. 이후 코페르니쿠스, 뉴턴 등 저명한 과학자들이 등장했다.
17세기부터 18세기를 거쳐 과학의 세기로 불리는 19세기까지 이어졌다. 사람들은 전기, 자기, 광학 등을 알게 됐고 천문학 등의 발전으로 끝없는 우주를 향해 눈을 돌렸다.
이는 인류 역사 발전 속에서의 짧은 과학 발전 과정이다. 실증과학이 시작된 이후로 지금의 과학 시대에 이르기까지는 불과 몇백 년에 불과하다
■ 과학의 한계
과학발전의 맥락에서 볼 때 과학은 20세기에 절정에 이르렀다. 분자생물학이 출현했고, 인체와 생명을 이해하는 차원에서 전 세계적으로 다양하게 발전했다. 동시에 고도로 발전한 과학기술과 함께 인간은 물질적인 향유와 소유를 끊임없이 추구하게 되었다.
물질적으로 삶이 풍요로워지고 시간과 공간이 점점 가까워지지만, 사람들의 정신적인 삶은 더욱 피폐해졌다. 시간과 공간이 단축됐지만, 오히려 이것이 사람들 서로의 마음을 점점 멀어지게 했다.
과학의 무절제한 발전은 결국 핵 위협, 생태 위기, 에너지 위기, 문화적인 위기에까지 이르게 되어 각국 정부의 중대한 문제로 떠오르게 됐다.
많은 사람의 눈에는 내(과학)가 보물 창고의 문을 여는 열쇠이며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존재로 보인다.
그러나 과학의 성공적인 이면에는 잠재적인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무분별한 대규모 자연 개발로 더 많은 에너지를 확보함에 따라 점차 인간생존의 근간을 흔드는 위험이 드러나고 있다.
지구에 매장되었던 자원들은 석탄, 석유의 과도한 채굴로 이미 바닥날 지경에 이르렀다. 만약 지구에서 에너지가 완전히 고갈된다면 모든 생존 기반이 무너질 것이다.
■ 과학의 정신
아인슈타인은 과학에 대해서 진정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문제의 해결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오랜 과학 문제에 대한 재구성이나 참신한 묘사를 포함해, 문제 제기야말로 진정으로 세계에 공헌하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과학적인 정신은 무엇보다도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실을 찾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과학을 이용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류에게 알려줘야 한다. 과학이 절대 전능하지 않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인정해야만 한다!
우주와 인간세계에는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과학자들도 과학으로 모든 답을 찾을 수는 없다. 현대에 가장 영향력 있는
서양 철학자 칼 포퍼가 제시한 ‘반증 가능성’ 원칙에 따르면, 과학이 대답할 수 있는 한계는 반증할 수 있는 질문, 간단히 말해서 관찰할 수 있는 반증의 가설을 들 수 있다.
예를 들어 모든 백조가 흰색이라는 가설에서 한 마리의 흑조가 발견됨에 따라 가설이 반증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가장 중요한 과학 정신의 또 다른 한 가지는 비판적 사고인데, 다시 말해서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이야말로 내가 과학의 이름을 바로 잡으려는 이유이기도 하다!
즉 나는 과학이 전능하다고 말하지 않으며, 질문을 던지는 것이 과학의 본질이라는 것과 과학의 한계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나를 전능한 자로 만든 것은 인간의 욕심과 억제하지 못하는 끊임없는 추구였다. 이익에 의해 움직이는 단체는 나를 몽둥이로 삼아 그들의 뜻에 부합하지 않는 모든 일과 현상에 대해 나를 휘두르며 “당신은 과학적이지 않다”고 비난한다.
특히 분명한 것은 내가 현재는 ‘실증과학’의 개념으로 뒤덮여 있다는 사실이다.
실증과학 연구라는 것은 정의를 내리고 엄밀한 수학 논리에 기초해 추론하는 한편, 동시에 ‘현대과학의 아버지’ 뉴턴이 정리한 과학 패러다임에 근거해 다시 거듭해서 실증할 수 있어야만 한다.
이는 실증과학을 넘어선 것들에 대해서는, 즉 그것들을 정의할 수 없고 실험을 반복할 수 없으면 이른바 ‘과학’의 반열에 올려놓을 수 없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인체, 생명, 우주를 설명하거나 합리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어떤 학문이든, 그것이 학문의 범주에 속하든 종교의 범주에 속하든 간에, 그것은 과학이며, 어쩌면 실증과학보다 훨씬 더 높은 과학일지도 모른다.
객관적으로 자신을 인식하고, 다른 분야의 지식에도 자신의 부족함을 겸손하게 반성하며 끊임없이 학문적 포용성을 넓히면서 사실을 추구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과학의 태도이고 과학의 본성인 것이다. / 明慧網
편집부
(ⓒ SOH 희망지성 국제방송 soundofhop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