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먼 옛날 설산(雪山)이라는 산에 한 수행자가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설산동자(雪山童子)라고 불렀다. 설산동자는 “모든 사람이 행복해지는 존귀한 가르침을 알고 싶다.”는 소원을 품고 조용하고 착실하게 수행했다.
어느 날 그가 앉아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미묘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제행무상 시생멸법(諸行無常 是生滅法) ; 모든 것은 무상하여 영원한 것이 없나니 이는 나고 죽는 법칙이라네.”
설산동자는 그 노래에 귀를 기울였지만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소리가 난 곳으로 가보니 매우 허기져 보이는 ‘나찰(羅刹)’ 한 분이 누워 있었다.
설산동자는 그에게 방금 부른 노래의 뒷 구절을 알려 달라고 청했지만 나찰은 배가 너무 고파 말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자 설산동자는 그 구절을 알려주면 자신의 몸을 주겠다고 했고, 나찰은 그제서야 노래의 나머지 구절을 불러주었다.
“생멸멸이 적멸위락(生滅滅已 寂滅爲樂) ; 나고 죽는 일이 함께 사라지면 이를 일러 고요한 즐거움이라 하네.”
이를 들은 설산동자는 깨달음을 이루고 크게 기뻐했다. 그러나 혼자만 알고 목숨을 마치기에는 너무 아깝다고 여겨 나찰이 알려준 내용을 여기 저기 바위벽에다 써 두고나서야 나무 위로 올라가 아래로 몸을 던졌다.
이때 나찰은 제석천(帝釋天)으로 변하여 동자의 몸을 받아 털끝만치도 다치지 않게 했다.
선어(禪語)에 '백척간두(百尺竿頭) 진일보(進一步)'라는 말이 있다. 백 척은 대략 30미터가 되는 높이며, 간두(竿頭)는 빨래 줄을 높이 올리는 긴 막대기나 장대의 끝을 말한다.
‘백 척의 장대 끝에 있다’는 것은 깨달음의 세계에 안주하는 것을 의미하고 거기에서 더 내딛으라는 ‘진일보’는 깨달음마저도 떨쳐버려 무심(無心)해져야 된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거상(巨商) 임상옥은 많은 인삼을 싣고 중국 북경에 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곳 상인들은 임상옥의 인삼을 싸게 사려고 담합(談合)하여 그의 인삼(人蔘)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와 상대도 하지 않았다.
하루하루가 지나도 임상옥의 숙소에는 파리 한 마리 얼씬하지 않았고 귀국할 날짜만 다가오고 있었다. 북경 상인들은 뒷전에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임상옥의 인삼을 헐값에 살 수 있을 것이라며 좋아하고 있었다.
자칫 빈털터리가 될 위기에 처한 임상옥은 때마침 북경에 머물던 추사 김정희를 찾아가 물었다.
“지금 어떤 사람이 백척간두에 올라서 있는데, 오도가도 할 수 없이 죽게 되었소. 어떻게 하면 내려올 수 있겠소?”
그러자 추사는 “내려올 수 없다”고 대답했다. 그리고는 당혹스러워하는 임상옥에게 “백척간두진일보 시방세계현전신(百尺竿頭進一步 十方世界現全身)”이라는 글을 써주며 “죽음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죽음뿐”이라고 말했다.
임상옥은 문득 깨달음을 얻고 가져온 인삼을 모아놓고 불을 질렀다. 몰래 동정을 엿보던 상인들은 급히 달려와 허겁지겁 인삼에 붙은 불을 껐다. 인삼이 잿더미가 된다면 중국에서는 인삼 공황이 일어날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인삼에 붙은 불을 끄고 난 북경의 인삼 상인들은 임상옥의 배짱에 탄복하며 그에게 거듭 사과했고 인삼 값도 부르는 대로 쳐주었다.
이 일화로 임상옥은 더 큰 명성을 떨쳤고 장사도 한층 번창해 재산도 나날이 불어났다.
이 ‘백척간두’는 원래 중국 선종의 큰스님 남전보원(南泉普願)의 제자 장사경잠(長沙景岑)의 게송(偈頌)으로 알려져 있다.
百尺竿頭坐底人(백척간두좌저인)
백척간두에 주저앉은 사람이여,
雖然得入未爲眞(수연득입미위진)
비록 도를 깨쳤지만 참다움에 미치지 못하니,
百尺竿頭進一步(백척간두진일보)
백척간두 그곳에서 한 걸음 더 내 딛어야,
十方世界是全身(시방세계시전신)
시방세계 그대로 부처님의 온몸이다.
우리의 삶은 때로는 막다른 곤경에 처하거나, 극한의 위기에 놓이기도 하지만, 이럴 때 마음을 비우고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 한다면,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의 깨달음은 때로는 자만이나 안주에 빠지기도 한다. 이럴 때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를 한다면, 우리는 그 집착에서 벗어나 더 많은 성장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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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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