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한국이나 중국의 사극(史劇)을 보면 고대 제왕들은 자신을 ‘짐(朕)’이라고 칭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짐’은 원래 황제만의 전용 용어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든 쓸 수 있는 일반적인 명사였다. 즉, 나를 가리키는 1인칭 대명사였다.
중국 후한의 학자 蔡邕(132~192)이 쓴 《독단(獨斷)》에는 “짐은 나다. 고대에는 존귀하건 비천하건 함께 사용했으며 귀천을 가리지 않고 같이 쓰던 호칭이다”라고 했다.
전국시대 초나라 정치가였던 굴원(屈原)의 시가 《초사(楚辭)》에는 “짐의 선친은 백용이라 한다(朕皇考曰伯庸)”는 기록이 있는데 여기서 짐은 굴원 자신을 가리킨다.
하지만 진시황(秦始皇)이 천하를 통일한 후 천자(天子)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황제만이 사용할 수 있는 몇 가지 용어를 정했는데, ‘짐’도 여기에 포함됐다.
때문에 ‘짐’이란 용어는 진시황 이후 황제만이 쓸 수 있었고 청나라 말기에 이르기까지 이런 전통이 유지됐다.
그렇다면 역사적으로 황제가 어려 정사를 돌보지 못할 경우 황태후가 섭정(攝政)한 경우가 있었는데, 이때 황태후는 자신을 어떻게 불렀을까?
황태후가 섭정할 경우 조령(詔令)을 내릴 때는 황태후 역시 ‘짐’이라 칭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특수한 경우였다.
예를 들면 《한서(漢書) 郊祀志下(교사지하)》에는 황태후가 부서 책임자에게 “황손(皇孫)을 보지 못하니 음식의 단맛을 모르겠고 잠을 자도 편안치 않으니 ‘짐’이 심히 슬프도다”라는 기록이 있다.
사실 선진(先秦)시대에는 군왕과 제후가 자신을 칭할 때 모두 ‘고(孤)’ ‘과(寡)’ ‘불곡(不穀)’이라고 했다. 여기서 ‘고’란 외롭다는 뜻이고 ‘과’는 부족하다는 뜻이며 ‘불곡’은 곡식이 열매를 맺지 못하듯이 후손이 없다는 뜻으로 불선(不善)과도 통한다.
이 세 단어는 모두 자신의 덕행이 부족함을 스스로 경계하는 겸양어(謙讓語)에 해당한다.
예를 들면 《老子(노자)》 제39장에 “그러므로 귀한 것은 반드시 천한 것을 근본으로 하며 높은 것은 반드시 낮은 것을 기초로 한다. 때문에 제후왕이 (자신을 부를 때) '고', '과', '불곡'이라 칭한다(故貴必以賤爲本,高必以下爲基. 是以侯王自稱孤寡不穀)”고 했다.
이를 보면 역사적으로 왕권이 강화됨과 아울러 군왕의 사심(私心)이 점차 커졌고, 급기야 자신을 지칭하는 호칭조차도 변화가 발생했음을 알 수 있다.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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