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미국의 노숙자 수가 지난해보다 11% 증가한 57만 7천명으로 집계됐다. 지난 2007년 이후에 가장 높은 증가율이며, 2019년 2.7%인 것과 비교한다면 매우 가파른 추세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주요 대도시인 샌프란시스코가 주목받고 있다. 이곳은 한때 ‘낭만의 도시’, ‘혁신의 땅’으로 불렸지만 노숙자와 범죄 증가로 위험한 도시로 전락하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2022년 샌프란시스코의 노숙자 수는 약 7800명으로 전체 인구의 1%에 해당한다. 또 작년과 비교했을 때 1년 사이 살인사건이 25%나 증가했고 강도 사건 역시 15% 증가했다.
이런 가운데 ‘고객과 직원들의 안전’을 이유로 많은 매장들이 운영을 중단하고 있다.
지난 8월 미국의 유명 백화점 체인점인 ‘노드스트롬’이 27일을 끝으로 ‘샌프란시스코의 랜드마크’인 유니언스퀘어점 영업을 중단했다.
1980년대 후반 빈민가 지역에 재개발 물결을 일으키며 ‘샌프란시스코의 지주’라고 불리던 이곳이 35년 만에 문을 닫은 것이다.
노드스트롬 측은 철수 결정과 관련해 해당 지역의 시장 역학이 지난 몇 년간 극적으로 변했다고 밝혔다.
이밖에도 지난 2년 동안 샌프란시스코의 최대 번화가인 ‘유니언스퀘어’에서는 약 40개의 매장이 폐점했으며, 기타 지역에서도 많은 매장들이 문을 닫고 있는 상황이다.
■ 스타트업의 성지
샌프란시스코는 X(트위터), 세일즈포스, 레딧과 같은 IT 소프트웨어 기업들의 본사가 몰려있어 ‘빅테크기업의 메카’로 불린다.
이로 인해 2020년까지만 해도 미국의 많은 도시 가운데 경제성장률이 가장 높은 도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샌프란시스코는 실리콘밸리로 향하는 관문으로 여겨진다. 이렇게 된 데에는 지리적 요건과 기후의 영향이 크다.
전자기기의 고장을 유발하는 가장 큰 원인은 습기와 열이다. 샌프란시스코만 일대는 지중해성 기후로 인해 1년 내내 한국의 봄 날씨와 비슷해서 전자기기등은 연구·개발하고 활용하는데 용이한 환경이었다.
스탠포드 대학을 비롯해 캘리포니아주 전역에 명문대가 자리해 있다는 것도 이점으로 작용했다.
주정부 역시 기업에 세제 혜택을 부여하는 등 기업 친화적이고 시장 맞춤형 정책을 시행하면서 경제 번영을 뒷받침했다.
이로써 실리콘밸리는 2000년대 들어서면서 눈부신 성장을 이뤘고 그 관문인 샌프란시스코는 혁신도시로 탈바꿈할 수 있었다.
많은 스타트업 기업들이 샌프란시스코를 거점으로 성장하기 시작했고 미국 전체 밴처 투자금의 25~30%는 실리콘밸리가 차지하게 됐다.
현재 실리콩밸리에는 구글, 애플, 넷플릭스롸 같은 빅테크 기업들은 물론 자동차 회사, 소프트웨어 연구소를 비롯해서 수천 개의 벤처 기업들이 몰려있는 상황이다.
■ 팬데믹의 타격
하지만 현재 샌프란시스코의 명성은 크게 흔들리고 있다.
IT 기업이 즐겨했던 거리에는 쓰레기와 배설물들이 뒤엉켜 악취를 풍기고 있고 관광객들의 자리는 노숙자와 마약에 취한 이들이 채우고 있다.
시민들과 상인들은 매일같이 발생하는 강도, 약탈 등으로 두려움과 불안에 떨고 있다.
특히 지난 4월 실리콘밸리 유명 스타트업 캐시앱 창업자인 보브 리가 샌프란시스코 시내 한복판에서 피살되면서 안전에 대한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샌프란시스코가 이렇게 변한 원인으로 코로나19 팬데믹을 꼽고 있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샌프란시스코는 IT 기업이 밀집된 도시다. 자연스레 자본과 인재들이 이곳으로 몰리면서 집값과 생활비도 함께 치솟았다.
2020년에는 전년 대비 12% 올라 평균 월세가 3930달러(약 475만원)에 달해 미국에서 가장 높은 월세를 기록할 정도였다.
하지만 팬데믹으로 재택근무가 보편화되면서 큰 변화가 일어났다. IT 기업은 상대적으로 재택근무가 가능한 업무가 많기 때문에 다른 기업들보다 원격근무 비율이 높다.
그러다보니 많은 기업들이 팬데믹이 완화된 이후에도 재택근무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 인구통계국에 따르면 재택근무 비율은 2021년 기준 46%에 달했고 2023년에도 35%를 유지하고 있다.
재택근무 보편화로 비싼 월세를 감수하며 도시에 머물 필요성이 줄었고,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는 이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또한 경제 침체로 IT 기업들의 대량 정리해고가 이어지면서 도시 이주 현상이 한층 두드러졌다. 실제 샌프란시스코 인구는 2020년 이후 지난해까지 무려 7.5%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재택근무 보편화와 대량 정리해고 등으로 기업들이 회사 규모를 줄이거나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자 샌프란시스코 도심의 사무실은 점점 비어가기 시작했다.
그 결과 6월 말 기준 지역 내에서 상업용 오피스의 공실 비율은 무려 31.6%를 보였다. 이는 지난 2008년 금융위기 당시(15%)의 2배 수준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것이다.
이처럼 공실이 증가하자 자연스럽게 인근 상권도 침체되면서 폐업하는 곳들이 늘어났다. 이런 상황은 도심의 상주인구가 감소하는 이른바 ‘공동화 현상’으로 이어졌고 결국 치안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텅빈 도심을 노숙자들이 채우게 되고 마약문제 역시 심각해지고 있다.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약 640명이 마약으로 인해 사망했고 올해는 이미 47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 범죄도시로 추락
도시민 감소로 인해 황폐화 과정인 이른바 ‘도시 종말의 고리’ 의 단계를 밟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일각에서는 샌프란시스코가 이런 상황에 놓인 원인으로 2014년부터 시행된 ‘발의안 47’을 지목하기도 한다.
이 발의안은 피해액 950달러(약 120만원)이하, 절도 등 비폭력 사범과 단순 마약사범을 중범이 아닌 경범으로 다스린다는 내용이었다.
3차례 이상 범죄를 저지르면 장기 구금하도록 하는 일명 ‘삼진아웃제’로 교도소 과밀현상이 벌어지는 것을 줄이고 이에 따른 비용을 절감하자는 게 골자였다.
하지만 취지와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액절도로 기소되면 주 교도소에 퇴대 6개월 감금될 수도 있지만 고발로 이어지는 경우가 적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샌프란시스코를 “좀도둑들의 천국이 됐다”면서 950달러 미만 절도는 경범죄로 취급돼 대부분 기소되지 않으며 용의자들은 경찰에 체포되도 금방 풀려난다“고 전했다.
실제 샌프란시스코 내 가장 큰 슈퍼마켓 중 하나였던 ‘홀푸드(Whole Foods)’ 역시 급증한 범죄율로 인해 ‘직원들의 안전’을 이유로 지난 4월 개업 1년 만에 문을 닫았다.
보도에 따르면 이 매장 직원들은 13개월 동안 경찰에 560건 이상 ‘비상전화’를 걸었다. 시민들 사이에서는 도시 치안에 대한 불만과 두려움이 커지고 있다.
이에 대해 런던 브리드 샌프란시스코 시장은 경찰예산을 증액했고 노숙자를 줄이기 위해 6억 달러(약 7600억)를 들여 저소득자 주택을 건설하겠다고 밝혔지만 여론은 좋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 5월 한 조사 결과, 샌프란시스코 유권자의 76%는 “현재 샌프란시스코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서 강한 공권력에 대한 요구가 강해지고 있다.
전문가들도 '고물가와 높은 임대료 문제를 위한 정책과 사회안정망 그리고 공권력의 강화 등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디지털뉴스팀
(ⓒ SOH 희망지성 국제방송 soundofhop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