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중국어에서 ‘吹牛[취우·chuīniú]’ 또는 ‘吹牛皮[취우피·chuīniúpí]’라 하면 실제 능력보다 과장하거나 허풍을 떠는 것을 말한다. 직역하면 ‘소(가죽)를 분다’는 이 말이 허풍이나 과장을 뜻하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전문가들의 고증에 의하면 이 단어의 기원은 황하 상류 일대에서 유래했다. 중국 고대에는 육상교통이 발달하지 않은 관계로 수운(水運)에 크게 의지했다.
특히 청해(青海), 감숙(甘肅), 영하(寧夏), 섬서(陝西) 등 황하 상류지역은 경사가 급하고 물살이 빨라 일반적인 목선(木船)으로는 운행이 아주 어려웠다. 왜냐하면 나무로 제작한 배는 조종하기가 어렵고 또 바위와 같은 장애물에 부딪히면 파손되기 쉬웠기 때문이다.
황하 상류지역 주민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죽뗏목(皮筏)을 만들어 목조 배를 대신했다. 때문에 이 가죽뗏목은 황하 연안 사람들이 강을 건널 때 사용하는 전통 운송수단이 되었다. 고대에는 이 배를 혁선(革船)이라 부르기도 했다. 왜냐하면 주로 양가죽이나 소가죽으로 제작했기 때문이다.
혁선을 제작하는 방법은 이렇다. 사람들이 소나 양을 잡을 때 먼저 가죽을 통째로 벗기는데 상처가 나지 않게 조심한다. 그런 후 소금물에 담가 가죽에 붙어 있는 털을 제거한 후 구멍이 뚫려 있는 사지와 머리 부분에는 식물성 기름을 바른다. 그런 후 물에 담갔다 햇볕에 말리면 가죽이 점차 부드럽게 변한다.
이때 촘촘한 실로 가죽을 꿰매 자루처럼 만드는데 작은 구멍 하나만을 남겨놓는다. 이 구멍으로 충분한 공기를 주입한 다음 입구를 단단히 조이는데 그런 후 여러 개의 가죽자루를 고정시키고 그 위에 나무를 대면 가죽뗏목이 완성된다. 이 배는 마치 지금의 고무보트처럼 탄력이 있고 부드러우며 물에 잘 뜰뿐만 아니라 암초에 부딪혀도 잘 파손되지 않는다.
물론 고대에는 지금처럼 바람을 넣는 공기펌프를 이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가죽주머니에 바람을 넣으려면 사람이 직접 불어 넣어야 했다. 양가죽은 그나마 부피가 작아서 입으로 직접 불어넣을 수 있었는데 그래도 체격이 좋고 폐활량이 큰 사람만 가능했다.
하지만 소가죽으로 만든 주머니는 부피가 컸기 때문에 직접 바람을 불어넣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래서 폐활량이 아주 큰 성인 남자 여럿이 돌아가면서 바람을 불어넣어야 했다.
입으로 고무보트에 바람을 불어넣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 과정이 얼마나 지난(至難)한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황하 상류 일대에서 만약 어떤 사람이 소가죽 주머니에 바람을 불어넣을 수 있다고 말한다면 현지인들은 모두 허풍을 떤다고 여겼을 것이다.
자신을 과장하고 자랑하기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 현지 주민들은 종종 “당신이 정말 능력이 있다면 황하 강가에 가서 소가죽을 불어보라”라고 말하곤 했다.
이때부터 취우(취우피)는 ‘큰 소리로 허풍을 떤다’는 것의 대명사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점차 널리 전해졌다.
중국에서 가죽으로 만든 배를 사용한 기원은 한(漢)나라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경주(水經注)》 '엽유수편(葉榆水篇)’에는 “한나라 건무(建武) 23년(서기 47년) 왕이 병사들을 파견해 가죽배(革船)를 타고 남하하게 했다”라는 기록이 있다.
또 《구당서(舊唐書)》 '동녀국전(東女國傳)’에는 “소가죽으로 배를 만들어 강을 건넜다”라는 기록이 있다. 또 송사(宋史) 《왕연덕전(王延德傳)》에는 '양가죽을 주머니로 만들어 바람을 불어넣고 물에 띄웠다'라는 기록이 나온다.
그러므로 한당(漢唐)시대 이래 위로는 황하 상류의 칭하이(靑海)에서 아래로는 산둥(山東)과 황하 연안에 이르기까지 가죽배의 사용은 역사가 유구하다고 할 수 있다.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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