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전쟁이나 중대한 재난이 발생했을 때에는 신속한 정보 전달이 특히 중요하다. 지금은 스마트폰, 인터넷 등이 보편화 되어 이에 대한 어려움이 없지만 고대에는 어떤 방식으로 긴급한 서신을 전달했을까? 그것은 바로 ‘닭털문서(雞毛文書)’다.
닭털문서란 고대에 긴급문서를 전송한 것을 지칭하는데 봉투 위에 닭털로 표시해 ‘닭털편지(雞毛信)’라고도 한다. 이 용어의 기원은 진한(秦漢)시대 우격(羽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기서 격(檄)이란 격문(檄文), 격서(檄書)의 뜻으로 고대 관(官)에서 사람을 징소(徵召)하거나 성토(聲討)할 때 사용하던 문서다.
당(唐)나라 때의 저명한 학자 안사고(顏師古)는 《한서주(漢書注》’에서 “격(檄)이란 목간(木簡)으로 책을 만든 것으로 길이는 1자2척인데 징소할 때 썼다. 급박한 일이 있으면 새의 깃털을 끼워 신속함을 표시했다”라고 했다. 편지 위에 새의 깃털을 꽂아 신속한 전달이 필요한 문서임을 나타낸 것이다.
또 《사기(史記)》 ‘노관전(盧綰傳)’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진희(陳豨)가 반란을 일으키니 한단(邯鄲) 북쪽이 모두 그의 수중에 들어갔다. 내가 우격(羽檄)으로 천하의 병사들을 모집하노라” 여기서 우격이란, 격문에 새의 깃털을 꽂아 나는 새처럼 신속히 하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반드시 신속하게 전달해야 할 군사문서를 일러 우격(羽檄)이라고도 했다. 즉 문서가 나는 새처럼 빨리 전달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서는 ‘우수서(羽毛書)’, ‘우서(羽書)’라고도 했다.
청(淸)나라 학자 고장사(顧張思)의 《사풍록(土風錄) 계모문서(雞毛文書)》’에는 “한서(漢書) 광무기(光武紀)의 주(註)에 위무(魏武)의 상서를 인용해 ‘위급한 변고가 있으면 닭털을 목격(木檄)에 꽂았는데 이를 우격(羽檄)이라 한다’고 했으니 바로 지금의 닭털문서의 원조다”라는 말이 나온다.
이를 통해 본다면 닭털문서의 전신이 바로 우격(羽檄)이며 새털 외에도 닭털을 썼기 때문에 雞毛文書라 불린 것이다.
그렇다면 고대에 긴급한 군사서신에 새털 외에 닭털을 쓴 이유는 무엇일까?
고대인들이 닭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가령 서한(西漢)시대의 한영(韓嬰)은 《한시외전(韓詩外傳)》에서 “머리에 관(冠)을 쓴 것은 문(文)이요, 발이 벌어진 것은 무(武)요, 적을 앞에 두고 앞장서는 것은 용(勇)이며, 음식을 보면 무리를 부르는 것이 인(仁)이요 밤에 파수를 서며 시간을 어기지 않는 것은 신(信)이다”라고 했다.
이 글에서는 닭이 문(文), 무(武), 용(勇), 인(仁), 신(信)의 오덕(五德)을 겸비한 것으로 찬미했는데 이 때문에 닭은 오덕을 갖춘 가금(家禽)으로 여겨졌다.
이외에도 중국인들은 닭을 늘 길상의 상징으로 여겨 험한 일도 순조롭게 바꿀 수 있다고 여겼다. 물론 더 구체적인 이유를 들자면 일반적으로 새의 깃털을 구하는 것보다는 닭털을 구하는 것이 더 쉬웠기 때문일 것이다.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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