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청현
[SOH] 매년 사월초파일(석가탄신일)이 되면 연등을 밝힌다. 등불은 어리석음을 밝혀주는 지혜를 상징한다. 어두운 밤길을 잃고 헤맬 때 등불은 길을 밝혀주는 생명의 불이다.
마음의 등불이 없다면 어떤가? 누군가를 미워하고 증오하면 상대가 괴로운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괴로움을 느끼게 되고, 욕망과 분노에 사로잡히면 사리분별이 어렵고 행복과 불행을 구분하지 못한다. 바로 어둠 속을 헤매는 것처럼 바른 길을 찾기가 어려워진다.
세상 그 무엇보다 본래의 내가 소중한 존재임을 아는 것,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惟我獨尊)임을 실감하는 것이 지혜다. 이웃을 볼 때 남의 재산과 명예, 학벌과 외모가 아니라 그 사람 자체가 소중하게 느껴지면 당신과 이웃의 관계는 극락정토가 된다.
남과 이웃을 이렇게 보는 것이 지혜다. 반대로 당신이 소중한 안목을 잃을 때면 즉시 고뇌하는 중생이 된다. 부처와 중생의 경계선이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가 석가탄신일을 맞이하여 등불을 밝히는 것도 깨달음을 구현하신 부처님을 생각하고 자신도 본래 부처가 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초파일엔 왜 하필 연꽃으로 단장한 등불을 밝힐까, 연꽃은 지저분한 진흙탕에 자라고, 고인 물에서 피어난다. 그러나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면서 주변도 아름답고 화사하게 한다. 진흙탕을 싫어해서 깨끗한 모래땅과 맑은 시냇물이 흐르는 곳으로 간다면 그 연꽃은 생존할 수 없다.
연꽃이 진흙탕을 피하지 않고 깊이 뿌리를 박을 때 중심이 서고, 더러움과 탁함을 외면하지 않을 때 당당하게 떠올라 아름다움을 꽃피울 수 있다. 마치 연꽃처럼 욕망과 분노로 괴로워하는 세상 사람들을 미워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그 괴로움을 끌어안고 함께 괴로움을 해결하고자 서원(誓願)을 세우고 실천할 수 있다면 바로 한 사람 한 사람이 사바세계의 연등이 아니겠는가.
부처님은 불(佛)의 우리말인데 붓다(Buddha)의 한역 음사이고, 붓다란 각자(覺者), 즉 깨달은 사람이란 뜻이다. 불교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자들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최후의 목적은 자신도 붓다(覺者)가 되는데 있다.
그러므로 붓다와 우리 자신 사이에는 먼저 깨닫고 아직 깨닫지 못했다는 시간적 차이만 있을 뿐, 깨달음을 이루어 붓다가 된 뒤에는 양자 간에 아무런 차이도 존재하지 않는다. 불교라는 말에는 붓다에 의한 가르침이라는 뜻 외에도, 붓다가 되는 가르침이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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