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때로는 어떻게 해도 해결할 수 없는 난관에 봉착한다. 끊임없는 궁리에 밤을 지새워도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옛사람들은 이럴 때 한 발짝 물러나라고 조언한다.
대표적인 구절이 “못에 가서 물고기를 탐내는 것보다, 물러나 그물을 뜨는 것이 더 낫다(臨淵羨魚, 不如退而結網).”이다.
좁은 개울에 모여 있는 물고기를 잡는 것과는 달리 연못에서 물고기를 맨손으로 잡는 것은 쉽지 않다. 물고기는 이리저리 도망가기 마련이고, 우리는 뒤로 넘어져 물에서 허우적거리기 일쑤다.
이때 잠시 물 밖으로 나가보자. 연못 속에 있을 때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물고기가 어디에 있는지, 지형은 어떠한지 비로소 눈에 들어온다. 이제 그물을 던져보자.
옛날에는 어떤 일을 하거나 배우기에 앞서, 먼저 바른 자세(가부좌)로 앉아 마음을 조용히 했다고 한다. 서둘러 하나라도 더 일하는 것보다, 차분한 마음에서 우러나는 지혜로서 전체를 바라보고 목표에 대한 의지를 순정하게 다지는 일종의 의식이자 습관이라 할 수 있겠다.
비로소 내려놓다
관념이 형성한 간격을 돌파해야만 비로소 예전에 생각하지 못했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우리는 이를 영감(靈感)이라 한다. 평소 빠른 속도의 업무 속에서는 이미 더는 ‘물러남’의 지혜를 펼칠 수 없고 일률적으로 ‘전진(進)’을 추구하지만 도리어 방향을 잃는다. 한 걸음 물러나서 ‘전진’에 대한 마음을 내려놓을 때야 비로소 진정으로 탁 트인 공간이 열린다.
공자는 “서른에 뜻을 세우고, 마흔에 미혹이 없어졌으며, 쉰에 천명(天命)을 알았고, 예순에 귀가 순해졌으며, 칠순에 마음이 가는 대로 해도 법도를 어기지 않을 수 있었다.”라고 했다. 이것은 물러남의 지혜를 설명한 것이다.
현대인들은 보편적으로 청장년 시기야말로 사람의 일생 중에서 가장 발전적이고 가장 활력이 넘치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노년기는 그저 여생을 보내는 것이라 여긴다.
그러나 공자가 남긴 이 구절은 오히려 정반대로, 오직 세월의 연화를 거치고 점차 집착을 벗어버린 후에야 비로소 서서히 내려놓고 발걸음을 늦출 수 있음을 알려준다.
어떻게 ‘물러나는가’를 알고 명리정(名利情) 등 외물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을 때야, 생명의 진정한 지혜가 비로소 펼쳐져 나올 수 있고 비로소 마음 가는 대로 할 수 있게 된다.
잘못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물러나 잘못을 보완할 것을 생각하고, 모순 앞에서 시비를 다투지 않고 한 걸음 물러나면 그야말로 넓고 큰 세상이다. 성과 앞에서 명리를 다투지 않고 공을 이루고 물러날 수 있다.
그러므로 물러남이란 일종의 소탈함이자 일종의 지혜이자 더욱이 일종의 경계(境界)다. 한 사람이 본성을 지킬 수 있고, 겸손과 물러남을 알아 세속에 구애되지 않고 초연할 수 있다면 반드시 주변의 작은 산들을 둘러보는 우뚝 선 태산처럼 될 것이다. 그때면 당신을 곤혹하게 하거나 또는 돌파할 수 없는 무슨 어려운 문제가 또 있을 수 있겠는가?
우리 걱정하지 말자. 청산이 있는데 땔나무를 걱정하랴. / 週報明慧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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