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그인
    • 회원가입
    • 사이트맵
    • 05.02(금)
페이스북 바로가기 트위터 바로가기
  • 중국

  • 국제/국내

  • 특집

  • 기획

  • 연재

  • 미디어/방송

  • 션윈예술단

  • 참여마당

  • 전체기사

검색어 입력

[아하! 그렇구나] 최고행정기관, 왜 '내각'일까?

편집부  |  2022-10-25
인쇄하기-새창

[SOH] 근대 이후 많은 나라들이 ‘내각(內閣 · Cabinet)’이란 명칭을 국가의 최고행정기관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의원내각제를 선택한 나라뿐 아니라 심지어 대통령제 국가에서도 마찬가지다. 

가령 각 부(部)의 장관을 처음 임명하는 것을 조각(組閣)이라 하거나 국무총리를 내각총리라고 하는 것도 이런 전통에서 온 것이다. 그렇다면 이 내각이란 단어는 어디에서 유래한 것일까?

‘내각’이란 단어의 유래는 흔히 서양에서 들어온 말로 알려졌지만 사실 중국 고대로부터 전해진 것이다. 그 기원은 멀리 당나라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예술과 문학을 사랑했던 당 현종(玄宗)은 말년에 한림학사(翰林學士)란 관직을 신설해 문장력이 뛰어난 신하들을 주로 임용했다. 이들 한림학사는 따로 조정의 품계가 없었으며 행정계통 밖에서 선발했다. 임무는 궁궐에서 늘 상주하면서 황제의 조서나 초안을 작성하는 것이었다.
 
당시 정식 조칙(詔勅)을 작성하는 임무는 중서성의 중서사인(中書舍人)이 맡고 있었고 한림학사는 단지 비정규적인 특별 조서나 명령만을 맡았다. 이 점에서 보자면 한림학사는 황제의 개인적인 비서에 불과했으며 주로 시나 문장을 짓는 역할을 맡았을 뿐이다.
 
그러다 덕종(德宗)이 즉위한 후부터 한림학사가 점차 중시되기 시작했다. 조정의 재상(外相)에 대응해 ‘내상(內相)’이라 불렸으며 ‘지제고(知制誥)’란 정식 관직까지 생겼다. 

또 과거 중서사인의 직무를 일부 대신했을 뿐만 아니라 황제 신변에 있다 보니 늘 진언할 기회가 많았다. 

이들은 각종 조칙의 초안을 만들고 중요한 정무에 참여한 까닭에 실질적인 재상의 임무도 수행했다. 실제로 당나라 후기의 많은 재상들은 주로 한림학사 중에서 선발됐다.
 
송(宋)은 당나라 제도의 영향을 받아 한림학사원(翰林學士院)을 궐내에 설치했다. 송대 한림학사의 지위는 오히려 당대보다 높아졌으며 황제는 이들을 자신의 싱크탱크(智囊)로 여겼다. 

한림학사는 황제의 고문으로서 높은 예우를 받았기 때문에 그 지위가 실권을 쥐고 있던 중서성이나 추밀원에 필적할 정도로 높았다.

하지만 명(明)나라를 건국한 태조 주원장은 역대로 재상의 권한이 너무 커 황제의 권위에 위협을 준다고 여겨 재상이라는 직책을 없애버렸다. 대신 6부의 상서(尙書, 조선의 판서에 해당)가 직접 모든 정사를 분담하게 했다. 

이들 6부는 각각 동등하고 서로 견제하는 기능이 없는 황제 직속 기관이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모든 권력이 황제 1인에게 집중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러나 황제가 재상의 업무까지 모든 일을 겸임하는 것은 이론은 좋을지 몰라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이에 송나라 제도를 모방해 화개전(華蓋殿), 무영전(武英殿), 문화전(文華殿), 문연각(文淵閣), 동각(東閣) 등 전각대학사(殿閣大學士)를 설치했다. 

이 전각들은 모두 궁궐 내에 있었기 때문에 늘 황제 곁에서 보좌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재상이란 명칭을 붙일 수는 없었기 때문에 편의상 ‘내각(內閣)’이라 불렀다.
 
하지만 당이나 송과 달리 명나라 때 전각대학사의 직위는 겨우 5품에 불과했다. 그 임무도 황제를 측근에서 보좌하고 자문하거나 문장을 작성하는 일이었고 정무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그러다 성조(成祖) 영락제(永樂帝)에 이르러 대학사를 정무에 참여하게 했고 정식으로 ‘내각’이란 명칭이 생겨났다. 이후 내각의 지위는 점차 커졌고 대학사가 실질적인 재상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지금 식으로 ‘내각’은 대통령 비서실에 해당하나, 근무처가 일반 신하들과 달리 궁궐 내 전각이었기 때문에 특별히 이름 붙은 것이다. 

당시 전각대학사는 지금의 대통령 비서관에 해당하며 대부분 한림원 출신이 맡았다. 내각이란 명칭과 제도는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청나라 때에도 명목상 내각이 존재하긴 했지만 옹정제가 군기처(軍機處)를 설립한 후 모든 실권이 군기처로 넘어갔다. 

선통제(宣統帝, 1907-1912) 때에 이르러서야 서양의 영향을 받아 군기처를 내각에 포함시켜 내각의 형식이 되살아났다. 이후 내각은 명실상부한 최고의 행정기관을 지칭하는 용어로 쓰이고 있다.


편집부
(ⓒ SOH 희망지성 국제방송 soundofhope.kr)
  목록  
글쓰기
번호
제목 이름 날짜
1413 [SOH 이슈] 시대 반영하는 안방극장... ‘자극’과 ‘도발’....
디지털뉴스팀
22-11-08
1412 [SOH 산책] 眞相
편집부
22-11-07
1411 [아하! 그렇구나] 부부가 되는 것을 ‘머리를 묶는다’고 ....
편집부
22-11-06
1410 [SOH 산책] 眞美
편집부
22-11-04
1409 [SOH 산책] 물러서다(退)
편집부
22-10-28
1408 [아하! 그렇구나] 최고행정기관, 왜 '내각'일까?
편집부
22-10-25
1407 [SOH 이슈] 우리의 식탁을 위협하는 GMO
디지털뉴스팀
22-10-22
1406 [SOH 이슈] 대한민국의 GMO 현주소
디지털뉴스팀
22-10-20
1405 [古中文化] 관(关)
편집부
22-10-17
1404 [古中文化] 임칙서의 사위 고르는 법
디지털뉴스팀
22-10-15
글쓰기

특별보도

더보기

핫이슈

더보기

많이 본 기사

더보기

SOH TV

더보기

포토여행

더보기

포토영상

더보기

END CCP

더보기

이슈 TV

더보기

꿀古典

더보기
445,890,026

9평 공산당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