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장기는 한때 한국은 물론 중국에서도 인기 있는 게임 중 하나였다. 장기판에는 다양한 배역이 등장한다. 한 편에 왕(王)은 하나이고 사(士), 상(相), 차(車), 마(馬), 포(炮)가 각각 두 개씩 쌍을 이룬다.
그런데, 유독 ‘병(兵)’과 ‘졸(卒)’만은 5개씩인데, 그 이유는 뭘까?
이를 알려면 고대 중국의 전투방식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장기는 일종 모의전투의 형식을 띠기 때문이다.
장기는 고대 전쟁의 양상을 반영해 중국 고대의 전투와 병종(兵種)의 명칭을 남겨 놓은 귀중한 사료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장기의 차와 마는 바로 전차와 기마부대에서 유래한 것으로 주로 기병(騎兵)을 지칭한다. 반면 병과 졸은 주로 보병(步兵)인데 이들을 5명씩 배치한 것은 고대의 군사편제와 관련이 있다.
우선 고대 병제의 전형을 보여주는 주(周)나라의 군사제도를 살펴보자.
당시에는 주나라 천자(天子)가 전국 군대의 최고통수권자로 군림해 강력한 상비군을 설치했다. 이때도 징병제도가 존재했지만 지금과는 달리 계급 차별이 심했다.
또 ‘주례(周禮) 지관(地官)’의 기록에 따르면 당시의 군대편성은 “5명을 오(伍)로 하고 5오(伍)를 양(兩)으로 하며 4양을 졸(卒)로 하고 5졸을 여(旅)라 하며 5여를 사(師)라 하고 5사를 군(軍)이라 한다”고 했는데, 1군당 약 1만 2천5백 명이 편성된다.
주나라 천자는 모두 6군의 병력을 갖췄으며 분봉(分封)원칙에 따라 천자가 직할하는 부대와 제후들이 관장하는 군대의 수량을 정했다.
큰 나라 제후는 3군, 중간 정도 제후는 2군, 작은 나라의 제후는 1군으로 군대를 편성했으며 군사령관은 모두 경(卿)이 맡았다.
또한 2,500명인 사(師)의 대장은 중대부(中大夫)에서 임명했고 500명인 여(旅)의 대장은 하대부(下大夫)에서 임명했다. 100명인 졸(卒)의 장은 상사(上士), 25명인 양(兩)의 장은 중사(中士)에서 임명했다.
여기에는 △능력이 아닌 계급에 따른 편제라는 것 △병력이 주로 5배수로 증가한다는 특징이 있다.
고대 중국은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면서 많은 변화가 발생했다. 각 제후국들이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면서 군대의 최고통수권자는 더 이상 주나라 천자가 아니라 각국 제후가 됐다.
이때에 이르러 보병, 전차병, 수병 외에 기병이 새로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전차병이 각국의 주력부대로 전투방식도 전차를 중심으로 했다. 이때에 이르러 보병, 전차병, 기병을 합해 3군이라 칭하기 시작했고, 이후 삼군은 군대를 두루 칭하는 말이 됐다.
한나라 때는 주요 전투대상이 흉노였는지라 전차병 대신 기병과 보병이 주력이 됐고 이때부터 체계적으로 말을 기르는 제도가 정착됐다.
병역제도는 농민을 대상으로 한 징병제였고 특징적으로 노역과 병역을 합해 요역(搖役)이라 불렀다. 한무제 이후 징병제와 동시에 모병제 및 죄수들로 구성된 군대도 있었다.
수당이후 각 왕조의 군사제도는 대부분 한나라 제도를 답습했다. 또 병력 편제가 어떻게 변화하든 병력의 기본 단위는 대부분 5인을 한 조로 하는 오(伍)로 편성됐다.
장기의 병과 졸이 각각 5개씩인 것은 이런 것들이 반영된 것이다.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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