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巧言令色(교언영색)‘은 ‘남의 환심을 사려고 아첨하는 교묘한 말과 보기 좋게 꾸미는 얼굴빛‘을 말한다. <논어> ‘학이(學而)’편, ‘교언영색선의인(巧言令色鮮矣仁)’이라고 한 공자의 말에서 유래됐다.
교언영색선의인(巧言令色鮮矣仁)은 ‘공교로운 말과 좋은 얼굴빛을 하는 사람은 어진이가 적다’는 말이다. 말을 그럴 듯하게 잘 꾸며대거나, 남의 비위를 잘 맞추는 사람치고 마음씨가 착하고 진실한 사람이 적다는 뜻이다.
공자는 말만 번지르르한 사람을 싫어했다. 말재주로 다른 사람에게 아첨하는 것은 개인의 이익(私利)를 얻기 위해 자신을 속이는 행위이며, 곧 본심(本心)의 덕(徳)을 해치는 것이기 때문.
말을 잘한다는 것과 교묘하게 한다는 것은 차이가 있다. 교묘하다는 것은 꾸며서 그럴 듯하게 만드는 것으로, 곧 진실 되지 않음을 말한다.
얼굴에 있어서도, 좋은 얼굴과 좋게 보이는 얼굴은 비슷한 것 같지만 다르다. 자신의 인격수양과 선량함에서 오는 얼굴과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보기 좋게 꾸민 얼굴은 같을 수 없다.
결국 겉과 속이 한결같지 않기 때문에 말만 잘하는 사람에 대해서 공자는 ‘말을 좋게 하고 얼굴빛을 곱게 하는 사람은 어진(仁) 이가 적다’고 했다 (巧言令色 鮮矣仁 : 學而편).
이 말과 상대되는 어구로 剛毅木訥(강의목눌)이 있다. 강직, 의연하고 순박하고 어눌한(말수가 적은) 사람은 ‘어진(仁) 사람’에 가깝다는 말이다 (剛毅木訥近仁: 子路편).
강직, 의연하고 순박하고 어눌한 사람은 본심 그대로를 지닌 사람이라, 꾸미거나 남을 속이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인(仁)에 가깝다고 한 것이다.
혹자가 말하기를 “옹(雍:仲弓)은 어질지만 말재주가 없다(仁而不佞)”라고 하니, 공자께서 “말재주를 어디에다 쓰겠는가? 약삭빠른 구변(口辯)으로 남의 말을 막아서 자주 남에게 미움만 받을 뿐이니 그가 어진지는 모르겠으나, 말재주를 어디에다 쓰겠는가? (‘公冶長’편)”
또 “말을 잘하고(巧言) 얼굴빛을 좋게 하고(令色) 공손을 지나치게 함(足恭:주공으로 읽음)을 옛날 좌구명(左丘明)이 부끄럽게 여겼는데, 나 또한 이를 부끄러워하노라. 원망을 감추고 그 사람과 사귐(匿怨而友其人)을 좌구명이 부끄럽게 여겼는데, 나 또한 이를 부끄러워하노라(‘公冶長’편)”라고 했다.
뿐만 아니라 공자는 변명을 길게 하는 것조차 좋게 보지 않았다.
제자 자로(子路)가 나이 어린 자고(子羔)를 정치에 나아가게 하자 공자는 아직 배움이 넉넉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자로를 꾸짖었다. 그때 자로가 "백성을 다스리고 사직을 돌보는 것도 배움이 아니냐"고 변명하자 공자는 "나는 이 때문에 말재주꾼을 싫어한다"고 극언하여 자로를 심하게 책망한 적도 있다 (先進편).
‘교언영색’은 진실보다는 표면을 중시하고 포장된 문화 속에 살아가는 사회, 약삭빠른 구변으로 능력자로 인정받는 변이된 관념의 현대인들에게 경계가 되는 성어라 할 수 있다. 겉보다는 진실이 통용되는 사회를 소망해 본다.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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