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예술의 높고 낮음과 바르고 그름(正邪)을 판단하는 관건은 그것이 사람마음을 정화(淨化)시켜 사람이 차분하고 담박하게 만들고 분수에 맞지 않는 욕망을 줄이며 고귀한 것을 보다 많이 추구하게 할 수 있는지 보아야 한다.
하늘이 사람에게 주신 만사만물(萬事萬物)에는 모두 두 가지 작용이 있으니 하나는 사람의 생존을 위한 것이고 또 하나는 사람마음을 교화하는 것이다. 우주 중에는 부처가 있으면 마(魔)가 있고, 사람이 있으면 귀신이 있다. 마귀 역시 만사만물을 이용해 두 가지 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데 하나는 사람을 외물(外物)에 미혹시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의 심령을 패괴(敗壞)시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신불(神佛)은 사람마음을 선(善)으로 인도하고 위로 제고하게 하지만 마귀는 사람마음을 악(惡)으로 향하게 만들어 사람을 아래로 끌어내린다.
형형색색의 다양한 예술은 만사만물 중의 하나로 또한 반드시 신과 마의 다툼과 관련이 있다. 그러므로 예술 역시 사람마음을 정화시키는 것과 패괴시키는 것으로 나뉜다. 인간 세상에서 어느 한 가지 종류의 예술이든 모두 이런 두 가지 방면의 표현이 있다.
선한 사람이 사용하면 선해지고 남에게 이롭고 자신에게도 이롭지만 악인이 사용하면 악행을 저지르고 남도 해치며 자신도 해친다. 가령 로큰롤은 연주가 시끄럽고 큰 소리로 울부짖으며 히스테릭해서 극도로 발설해 듣는 사람을 차분하게 만들 수 없고 가수는 더구나 차분해질 수 없다.
이는 모두 마성(魔性)이 크게 폭발한 표현이다. 가수가 이렇게 오래 지속한다면 점점 더 추해지고 점점 더 왜곡되어 또 건강하게 장수하기 힘들 것이다. 이런 음악을 늘 듣는 사람들은 무조건적으로 마성의 주입을 받아 점차적으로 마성이 심해지며 인성이 변이되어 ‘발광’에 빠진다.
또 현대에 유행하는 ‘퇴폐음악’은 부드럽고 혼미하고 아양을 떠는데 남자가 부르면 더욱 여자 같고 들으면 들을수록 정기(正氣)와 정념(正念) 기개가 부족해진다. 때문에 고인은 음악을 논하면서 임금과 백성이 퇴폐적이고 메스꺼운 음악을 좋아하면 곧 나라가 망할 징조라고 했다.
정통에서부터 말하자면 예술의 바르고 큰 표준은 바로 진선진미(盡善盡美)다. 진선(盡善)은 사람마음을 정화해 선으로 인도하고 진미(盡美)는 고아하고 순정하며 기법이 탁월함에 있다.
사람마음을 정화하지 못하는 일체 예술은 비록 ‘예술’이란 명칭은 있어도 ‘예술’ 자체는 아니다. 미래 예술의 전당 속에 그것에게 줄 자리는 없다. 일체 패괴된 예술은 사람마음을 패괴시키는 것으로 모두 천신(天神)의 심판에서 피해갈 수 없다.
노자는 “하늘의 도(道)는 갚음을 좋아한다”고 했다. 일체 악행 중에서 사람마음을 패괴시키는 것보다 큰 것은 없다.
예를 들어 현대 서법(書法 서도) 중에서 추서(醜書)가 있는데 그야말로 추악함의 극치임에도 오히려 대아(大雅)의 전당에 올라갔다. 심지어 이런 글을 쓰는 자가 서법협회에서 각종 요직을 차지하고 거의 모든 중요한 상을 독차지했다.
이 역시 서법예술이 전면적으로 타락한 표현이다. 그럼 왜 추악할수록 사람들이 열광하는가? 왜냐하면 도덕이 패괴된 사람은 마성에게 통제되어 늘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가기 때문이다. 이는 모두 요괴가 장난을 치는 것으로 변태와 겨루는 것이다.
반대로 정통예술은 사람마음을 정화시키는 효과가 있는데 아울러 그 효과도 무한하다. 예술가 자신도 갈수록 더 순정(純淨)해지고 심신 상태도 자연히 갈수록 더 좋아진다. 또 하늘과 신의 도움을 받아 걸어가면 갈수록 예술의 길이 더 넓어지고 더 높아지며 끊임없이 복을 받는다.
많은 이들에게 정면적인 촉동을 받으며 심신도 끊임없이 좋아지고 언행 역시 끊임없이 선량해지는데 정(正)의 작용과 선(善)의 보답 역시 상응해서 지속될 것이다.
가령 다빈치의 종교화는 아주 엄숙하고 경건하면서도 정교해서 한번 보기만 해도 일종 신성(神聖)한 분위기와 힘을 느낄 수 있으며, 천국을 동경하는 마음이 저절로 우러나온다. 또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은 변화가 많고 장엄하면서도 아름다워 듣는 이로 하여금 양강(陽剛)한 정기(正氣)를 활성화시킨다.
또 중국 10대 고금(古琴)음악은 마음을 기를 뿐만 아니라 양생에도 도움이 되는데 일단 들어보면 순미(純美)한 고전의 의취 속으로 빠져든다. 또한 순수하고 바른 글자는 온라인의 저속한 언어를 거부하고 변이관념의 지배를 거부하는데 완전히 정정당당한 사상과 언어로 고귀와 선념을 표현한다. 즉 온건하면서도 점잖다. 문학예술에서 말하자면 바로 정통적이고 순정(純淨)한 것으로 진정한 문장이란 도(道)를 싣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술 종사자로서 기왕에 자신을 정화하고자 하고 또 남을 정화하려 생각한다면 사람마음의 정화를 가장 중요한 표준으로 삼아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을 오도하고 또 남을 오도해 그 해로움이 끝이 없을 것이다. / 正見網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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