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수자의 계시
[SOH] 태극(太極)의 원리에서 보자면 인류사회의 문화형식 역시 음양(陰陽) 양대류(兩大類)로 나눌 수 있다. 만약 현대 교육 중에서 문과와 이과를 말한다면 문과는 양(陽)이고 이과는 음(陰)이다. 음양의 구별은 철학범주 중에서 물질과 정신에 대응하기 때문인데 문과는 정신문명의 체현이고 이과는 물질문명의 체현이다.
만약 수자로 말한다면 문과의 수는 일(一)이고 이과의 수는 이(二)가 된다. 또한 정신의 수는 일이고 물질의 수는 이가 된다. 인류사회의 물질재부(物質財富)는 모두 돈으로 가늠할 수 있지만 정신재부(精神財富)는 돈으로 가늠할 수 없다.
고인이 “가난한 사람은 문을 배우고 부유한 사람은 무를 배운다(窮文富武)”고 한 것에도 나름의 이치가 있다. 장사를 하거나 잡지나 신문사를 만드는 것은 대체로 그 브랜드나 이름 속에 ‘문(文)’자가 들어 있으면 돈을 벌고자 해도 그리 쉽지 않다. 왜냐하면 문(文)은 양(陽)에 속하니 정신을 대표하고 물질을 대표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도가(道家) 이론 중에서 삼(三)은 생수(生數)로 다시 말해 만물을 만들고 창조하는 수다. 동시에 ‘생(生)’이란 글자는 또 구원・제도(度化)・구조(救助)・비호(庇護)한다는 뜻이 있다. 삼은 또 동시에 천지인(天地人)을 대표한다.
오행에서 목(木)의 수가 삼이기 때문에 목은 생(生)을 주관한다. 세간에서 목의 표현이 바로 모든 식물이다. 백성은 밥을 하늘로 여기기 때문에 사람과 동물은 모두 식물을 생존의 근본으로 삼는데 중국 전통의학 역시 약초로 사람을 치료한다.
어릴 때 친척 어른 중에 때로 하늘에 점을 쳐서 처방을 얻어 남의 병을 치료해주는 분이 있었다. 나는 운 좋게 그분이 처방을 내는 것을 여러 번 본 적이 있는데 대부분의 약초가 다 세 돈(錢 역주: 1돈은 3.75g)이었다.
만약 네 돈을 쓰는 경우에는 먼저 세 돈을 쓰고 다른 약물을 몇 개 쓴 후 나중에 다시 1돈을 더했다. 만약 여섯 돈이면 먼저 세 돈을 쓰고 다른 약재를 몇 개 쓴 후에 나중에 다시 세 돈을 더했다. 나는 어릴 때 그 뜻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나중에야 삼(三)이 생수(生數)가 되는 이치를 취한 것임을 알았다.
세인들은 하늘의 복과 가호를 얻기 위해 신불(神佛)에게 향을 사르고 절을 올릴 때도 대부분 3개의 향을 사르는 것도 같은 이치다. 왜냐하면 ‘생(生)’자에는 자비와 큰 사랑의 함의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삼(三)과 팔(八 역주: 팔도 오행의 목에 해당) 두 수에도 이런 뜻이 있다.
사(四)는 비교적 특수한 수자다. 사물의 발전과정이나 운행이 사(四)란 이 위치에 이르거나 또는 네 번째가 되면 원래의 운동상태가 끝나거나 심지어 반대로 되는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 그래서 사(四)란 이 수는 우선 ‘멈춤(止)’의 함의가 있는데 멈춤은 또 멈춰 서서 움직이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이 멈춤의 함의 역시 아주 광범위해서 다양한 방면에 관련이 있을 수 있다.
가령 우리는 녹색이 가시광선 스펙트럼 중에서 네 번째 색임을 아는데 그렇다면 녹색의 물건은 곧 멈춤과 관련이 있다. 자연계에서 녹색의 주 매개체는 각종 식물이며 식물의 생존상태는 바로 ‘멈춤’의 특징과 부합한다. 식물은 걸어다닐 수 없으며 그것들은 모두 원래 있는 곳에서 자란다.
식물의 식(植)과 지(止)가 발음이 같은 것도 이 방면의 원인이 있다. 우리는 또 사람 손가락에서 네 번째 손가락의 이름을 무명지(無名指)라 하는데 가장 움직임이 적은 손가락으로 이름도 특수하고 기능 역시 특수하다.
또 형제자매 중에서 넷째는 성별이나 성격특징 또는 운명 등의 방면에서 대부분 다른 형제나 자매들과 다르다. 또 대부분 네 명의 조합이 있으면 그중 반드시 한 사람은 아주 특수하다. 물론 수자 사에는 또 많은 다른 방면의 함의가 있으며 이상은 단지 정지(停止)란 함의에서 설명한 것이다.
일정한 경계(境界) 속에서 보면 도가(道家)의 세계에 대한 인식은 오행으로 바로 금목수화토(金木水火土)이고 불가(佛家)는 사대(四大) 즉 지수화풍(地水火風)이다. 오행과 사대는 물질세계의 양극(兩極)이자 두 방면으로 일음일양(一陰一陽)의 관계가 있지만 그 범위는 사실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이 한 방면에서 보자면 수자 사(四)와 오(五)는 서로 같은 것으로 마찬가지로 큰 두 수이다.
한자 사(四)는 필획이 오(五)이고 오(五)의 필획은 사(四)가 되는 것도 바로 이 방면의 원인이다. 동시에 우리는 또 아라비아 수자 중에서 1, 2, 3, 6, 7, 8, 9 모두 한 획으로 쓸 수 있지만 오직 4와 5만은 두 획으로 필획이 같다. 이 역시 우연이 아니다.
이상의 각도에서 보자면 수자 사와 오는 마찬가지로 크다고 할 수 있지만 그 표현하는 내함이 다르고 중시하는 측면도 달라서 서로 대등하지만 또 부동한 두 수다.
사(四)와 칠(七)도 함의가 서로 비슷하면서도 다른 수자다.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두 수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모두 정지(止)의 함의가 있기 때문이지만 표현형식은 다르다.
가령 사(四)에서 정지의 함의는 순서의 설계와 관련이 있고 자연적인 표현인데 다시 말해 주동적인 정지다. 동시에 또 본인이 주동적으로 남을 제지한다는 함의가 있다.
칠이 표시하는 정지의 함의는 피동적이고 가로막히거나 저애된다는 뜻이다. 이처럼 정지(停止)와 종지(終止)란 함의에서 사와 칠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음양 속성으로 보자면 사는 음수(陰數)고 칠은 양수(陽數)로 음양 두 물질이 인간세상에서 가장 유형적으로 체현되는 것이 바로 수(水)와 토(土)다.
그러므로 지구 표면에 사대양(四大洋)과 칠대주(七大洲 역주: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오대양 육대주를 말하는데 중국에서는 오대양에서 남극해를 빼서 사대양이 되고 육대주에서 아메리카를 북미와 중남미 두 개로 구분해 칠대주로 본다)가 있는 것이다.
모두들 알다시피 예수는 사람은 모두 죄(罪)가 있다고 했는데 그럼 죄가 있으니 마땅히 징벌을 받아야 한다. 지(止)는 제(制), 치(治), 지(至) 등과 발음이 같기 때문에 인류가 거주하는 이 환경은 본질적으로 보면 사람의 행동을 제한하고 제지하고 다스리기 위한 것으로 아울러 가장 낮은 층차이다.
동시에 우리는 죄(罪)와 벌(罰)이란 두 글자의 구조 속에 모두 수자 사(四)가 들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역시 원인이 있다.
도가 이론 속에서 모종의 특수한 각도에서 보자면 오(五)와 십(十)은 완전히 정반대의 함의를 지닌 한 쌍의 수자다.
하도(河圖)에서는 “천오(天五)가 토(土)를 낳고 지십(地十)이 이룬다”고 하는데 다시 말해 수자 오는 선천 오행의 토이고 십은 후천 오행 속의 토다. 소위 선천이란 바로 높은 경계 속의 미시적인 존재이고 후천이란 바로 우리 인류사회 이 공간 속의 존재임을 가리킨다.
만약 수자로 사람의 위치를 형용한다면 사람은 바로 십(十)의 위치에 있는데 왜냐하면 십이 바로 토이기 때문이다. 전설에서 흙으로 사람을 빚었다는 이야기 역시 이치가 있는 것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오(五)는 존귀한 수, 지혜의 수, 생명의 수, 중정의 수, 원만의 수다. 그러나 십(十)은 오의 가장 낮은 표현으로 다시 말해 오의 반면(反面)이기 때문에 이곳에 태어난 사람은 바로 사는 게 존엄하지 않고 지혜가 없으며 생명이 짧고 또 자아를 상실해 자신의 위치를 찾지 못하며 선천의 모든 일체를 잃어버리고 알몸으로 온다. 그렇다면 사람이 되었다고 해서 무슨 교만하고 자랑할게 있는가?
아울러 이 십(十)자는 만약 방향을 조금만 개변하면 바로 틀리게(X) 되는데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해도 늘 잘못이 있는 것이다. 때문에 서방에서는 “인간은 생각하고 신은 웃는다”[역주: 밀란 쿤데라의 《소설과 유럽》] 라고 한다.
왜냐하면 사람이 잘못 속에 떨어졌기 때문에 오직 성현(聖賢)과 각자(覺者)의 가르침에 따라야지만 자신의 출로를 찾을 수 있을 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정말로 만겁(萬劫)에도 회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수자 십(十)의 내함은 대단히 풍부하고 높은 경계의 시공 속에서 일(一)부터 구(九)는 모두 그중 부동한 층차를 대표하는데 십은 바로 이 경계의 외각(外殼)이다. 다시 말해 이 경계의 하늘과 땅이 모두 십이다. 아라비아 수자로 표시하면 바로 10인데 즉 하나(一)의 〇이다. 그것은 저층 경계에서 생긴 생명과 물질의 통로가 되는데 마치 천체 중의 블랙홀과 마찬가지다.
노자가 《도덕경》에서 “현빈(玄牝)의 문은 천지의 뿌리라고 하며 끊어질 듯 이어지며 아무리 써도 무궁무진하다”라고 한 것에서 ‘현빈의 문(玄牝之門)’이라고 한 것이 바로 이를 가리킨다. 사람의 경계 역시 이와 같다.
사람은 천상(天上)이나 지하(地下)에 있지 않고 바로 십(十)의 위치 위에 있기 때문에 사람이 세상을 사는 것은 사실 바로 인생이 ‘십(十)’에 있는 것이다. 이는 마치 수시로 십자로(十字路) 위에 있는 것처럼 각종 선택에 직면하며 생명에 명확한 목표와 방향이 없다.
때문에 이는 아주 특수하고 아주 험악한 곳이라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마치 블랙홀과 마찬가지로 정말로 패괴(敗壞)되면 곧 순식간에 빨려 들어갈 수 있다. 그럼 사람에 대해 말하자면 덕(德)을 중시하고 선(善)을 행하는 것이야말로 극히 중요한 것이다.
또 다른 방면에서 수자 십(十)은 앞에서 언급한 다른 수자들과는 다르다. 십은 수를 싣는 도구가 되는데 모든 수의 받침이자 배경이 되며 일체 수를 만드는 근원이다. 만약 어느 작은 경계에서 본다면 십은 바로 이 경계의 극한과 외각이며 우주 중의 한 층차로 볼 수 없는데 그는 수(數) 밖에 있다.
그럼 사람은 가장 낮은 이 십(十)의 위치에 있는데 사실 바로 전 우주의 가장 낮은 층이자 가장 변두리이다. 아울러 또 모두 수(數) 속에 없는 생명이다. 다시 말해 모두 수(數)로 간주할 수 없는 생명이며 오직 진리대도(真理大道)를 따라 각고의 수행으로 끊임없이 정진해야만 벗어날 수 있다.
수자 육(六)에 대해서는 앞서 언급했다시피 만약 전체 우주의 층차 특징을 표시할 때면 거시적으로 제6대 층차에서 시작해서 아래로 일체 생명은 모두 삼위일체(三位一體)의 존재형식이다. 즉 일체 중생은 모두 형상(形象)이 있고 신체(身體)가 있는 것이다. 제5층 이상의 생명은 모두 신신합일(身神合一)의 무형무상(無形無象)의 생명형식이다. 이 방면에서 수자 육의 외형구조에서도 깨달을 수 있다.
‘육(六)’자의 구조는 바로 ‘一’위에 하나의 점이 있고 아래로 두 개의 점이 있다. 여기서 一은 고층과 저층의 경계선으로 볼 수 있는데 일은 양이고 이는 음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말해서 위의 한 점은 순양(純陽)의 경계를 상징하고 아래의 두 점은 순음(純陰)의 경계를 상징한다.
순양의 경계 속에서 일체 생명은 모두 바른 것으로 모두 정신(精神)을 주체로 하기 때문에 존재형식이 바로 신신합일(身神合一)의 상태이며 모두 무형이다. 양 속에도 음양(陰陽)이 있기 때문에 순양의 경계 속에서 부동한 생명개체는 모두 부동한 정신(精神 陽)특징을 체현한다.
또 순음의 경계 속에서는 물질이 주체가 되므로 다시 말해 각종 생명의 유형이 모두 존재하는 것으로 우선 모두 각종 생명의 외형이 있고 모두 자신의 물질신체가 있다. 음속에도 음양이 있기 때문에 순음의 경계 속 부동한 생명개체는 모두 부동한 물질(物質 陰)특징을 체현한다.
그렇다면 태극원리에서 보자면 수자(數字)가 일(一)에서부터 구(九)까지 체현하는 것은 바로 음양이 교체(交替)하고 융합(融合)하는 법칙이다.
상대적으로 말하면 높은 경계 속의 만물중생(萬物衆生)일수록 표현되는 전체적인 특징이 더욱 정신적이고 더욱 양강(陽剛)하며 낮은 경계 속의 만물중생일수록 표현되는 전체적인 특징이 더욱 물질적이고 더욱 음유(陰柔)하다.
만약 태극을 벗어나고 수(數) 밖으로 벗어나 무극(無極) 속에서 본다면, 높은 곳에서 낮은 곳까지 양에서 음까지 이 일체 존재는 모두 무극대도(無極大道) 지혜의 체현이다.
때문에 만물중생은 크지도 작지도 않고, 높고 낮음도 없으며, 음도 아니고 양도 아니며, 남도 없고 나도 없으며, 선도 없고 악도 없고, 일체가 다 대도(大道)의 흐름이며 마음이 가는 대로 여의(如意)하게 표현되고 여의하게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는 것은 매 하나의 수자의 함의는 모두 단일하지 않으며 모든 방면의 것을 포함하고 있다. 가령 생명과 우주의 층차, 부동한 시간, 부동한 공간, 부동한 생명유형, 부동한 물질형태, 부동한 사유방식과 부동한 운동방식 등등이다. 일체 존재는 모두 수의 표현이 있고, 일체 존재는 또 모두 수(數)가 있다.
가령 수자 일(一)을 말하자면 그는 우주의 가장 높고 가장 원시적인 경계를 대표하며 또한 이 전체적이고 모든 층차를 포함하는 우주를 대표한다. 또 사람에 대해 말하자면 사람의 머리를 가리키거나 또는 완전한 한 사람을 대표한다.
또 가령 수자 사(四)를 예로 들면 정지와 전환의 함의를 포함한다. 공간속의 표현에는 운동상태와 생존방식 등의 방면이 있고 시간 속의 표현에도 유사한 상황이 있다.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표현은 바로 계절변화인데 삼개월마다 한 계절이고 네 번째 달에 다음 계절로 넘어간다.
이는 그 전환과 변화란 함의가 체현된 것이다. 1년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에서 네 번째 계절인 겨울이 1년의 끝이 되는데 이는 또 그 종지의 함의를 체현한 것이다.
또 평년의 경우 1년이 365일이고 2월이 28일이지만 윤년인 경우에는 1년이 366일이 되고 2월이 29일이 된다. 여기서 윤년 역시 4년에 한번이다. 이것도 수자 사의 특수한 함의를 체현한 것으로 또는 종지의 함의이다.
이처럼 매 수자마다 박대정심(博大精深)한 내함이 있기 때문에 그 어떤 한 수자에 대한 인식도 모두 특정한 방면에만 국한할 수 없고 그것은 모든 방면을 포함한다.
또한 필자의 층차와 사유방식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수자에 대한 인식 역시 극히 제한적이며 모든 해석 역시 단지 필자가 인식할 수 있는 모종의 방면일 뿐이다. (끝) / 正見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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