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중국 고대에는 궁전, 관아, 능묘, 사찰, 원림(園林), 교량 등 각종 건축물 앞에 늘 좌우 한 쌍으로 돌사자를 배치했다. 고서에도 관련 기록이 있다.
예를 들면 청나라 때 주상현(朱象賢)이 저술한 ‘문견우록(聞見偶錄)’에는 “오늘날 궁전과 관아 문밖 좌우에 배치한 돌짐승은 곱슬머리에 큰 눈을 지니고 입을 벌린 채 발톱을 드러내는데 속칭 石獅子(석사자·돌사자)라 한다”고 했다.
고대 건축물 앞에 한 쌍의 돌사자 조각을 배치한 이유는 무엇일까?
사자는 건장하고 용맹한 동물로 털빛은 짙은 갈색이다. 수사자는 목 부위에 긴 갈기가 있으며 포효소리가 우렁찬데 주로 아프리카나 아시아 남부지방에 분포한다.
얼룩말이나 사슴, 영양 등 대형동물을 잡아먹으며 ‘수왕(獸王·동물의 왕)’으로 불린다. 그렇다면 사자의 원산지는 중국이 아님에도 왜 유독 중국에서 많은 사랑을 받게 됐을까?
문헌의 기록에 따르면 사자가 중국에 들어온 것은 한무제(漢武帝) 때 서역에 파견된 장건(張騫) 이후 중국과 서역 간 교역로가 열리면서다.
예를 들어 《후한서(後漢書)》 〈서역전(西域傳)〉에는 “장제(章帝) 장화(章和) 원년 안식국에서 사신을 보내와 사자와 부발(符拔·꼬리가 긴 사슴 비슷하게 생긴 짐승)을 바쳤다. 부발은 외모는 기린처럼 생겼지만 뿔이 없는 동물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나중에 불교가 중국에 들어오면서 사자는 점차 호랑이를 대신해 동물의 왕으로 자리 잡았다. 송나라 때의 승려 도원(道原)이 저술한 《전등록(傳燈錄)》에는 “불조(佛祖) 석가모니가 탄생할 때 한 손으로는 하늘을 가리키고 다른 한 손으로는 땅을 가리키면서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惟我獨尊)’이라는 사자후(獅子吼)를 토했다”고 했다.
나중에 사자후는 불타(佛陀)가 설법할 때 내는 큰 목소리를 상징하게 되는데 일체 외도사설(外道邪說)들을 두려워 떨게 했다. 이후 사자는 불교문화 속에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했고 불교신자들은 사자를 길상(吉祥)하고 장엄한 신수(神獸)로 여겼다.
사람들이 사자를 숭배하기 시작하면서 사자는 위엄 있고 상서로운 동물로 인식됐다. 때문에 중국 조각예술의 소재로 즐겨 쓰였다. 특히 한당(漢唐)시기에는 제왕의 능묘나 호족(豪族)들의 무덤에 돌사자가 등장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돌사자는 주로 능묘에 한정돼 쓰였고 주로 석마(石馬)나 석양(石羊) 등과 함께 배치됐다. 목적은 사람들에게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당송(唐宋)이후 돌사자는 점차 민간에서도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대문 앞에 돌사자를 놓는 것은 문 앞에 문신(門神)을 부착하듯이 문을 지키고 사악한 귀신을 물리치는 게 목적이었다. 아름다운 장식으로 쓰거나 복을 불러들이는 뜻에서도 사용됐다.
한편 중국 역대 왕조마다 돌사자의 모습도 달라지지만 청나라에 들어와서는 돌사자 조각도 기본적으로 정해진 틀이 생겼다. 한당(漢唐)시기 돌사자가 사납고 용맹한 모습이라면 원나라 때는 웅장하고 힘찬 모습으로 변했고 명청(明淸)시기에는 비교적 귀엽고 유순하게 변했다.
돌사자는 또 각 지역에 따라서도 다른 특징이 있다. 남(南)사자와 북(北)사자로 구분되는데, 북사자는 소박하고 비교적 위엄 있는 모습인 반면 남사자는 장식이 많고 활달한 모습이다.
선인들은 만물에 음양의 구별이 있다고 여겨 음양의 조화를 중시했다. 그래서 돌사자를 놓을 때도 일정한 규칙에 의거했다. 가장 일반적인 경우가 수컷과 암컷을 하나씩 쌍으로 배치하는 것인데 보통 왼쪽에 수컷을 놓고 오른쪽에 암컷을 놓는다.
이는 남좌여우(男左女右)라는 음양학설과도 부합한다. 중국 민간에서 돌사자는 사악을 몰아내는 작용이 있다고 여겨 문 앞에서 집을 지키게 했다.
흔히 대문 왼쪽에 수사자를 배치하는데 사자 발밑에는 공 모양의 장식을 놓아 무한한 권력을 상징했다. 오른쪽에는 암사자를 배치하는데 발밑에는 새끼사자가 친근하게 달라붙어 있다. 이는 자손이 끊이지 않고 번창하는 것을 상징한다.
중국에서는 이처럼 역대로 돌사자를 吉祥의 상징으로 여겨 집안의 악귀를 쫓고 사악을 몰아내는 용도로 사용했을 뿐더러 전통건축에서 예술장식으로도 썼다. 가령 베이징 노구교(盧溝橋)에 조각된 400여 마리 사자조각들을 보면, 다양한 크기의 암수 사자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생생하게 표현됐다.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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