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도(道) 속에 수가 있고 수(數) 속에도 도가 있다. 수자의 내함은 풍부하고 고심하며 부동한 사유방식과 부동한 경계 및 각도에 따라 모두 부동한 인식이 있다. 우리 전통문화 속의 수자는 아라비아 수자와 쓰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각기 구비한 수의 내함(內涵) 역시 다르다.
왜냐하면 한자 속의 수자는 다른 한자의 기원과 마찬가지로 자연히 그 음(音 소리), 형(形 모양), 의(意 뜻)에 대응하는 보다 많은 내함이 존재한다. 바로 이 방면에서 말하자면 아라비아 수자 등은 비교할 수 없다.
아래에서 우리는 한자 속의 일(一)에서 십(十)까지 수자에 대해 진일보로 풀어보고자 하는데 기점은 여전히 도가의 태극원리에 근거한 것이다.
1. 일에서 십이 각각 가리키는 것
1) 일(一)은 대도(大道)의 수다. 부동한 층차에 부동한 내함이 있다. 《설문해자》에서는 “처음 태시(太始)에 도(道)가 일(一)에서 섰고 천지를 만들고 만물을 이뤘다.(惟初太始,道立于一,造分天地,化成万物)”고 했다.
이는 사실 노자가 말한 “도(道)가 일(一)을 낳고 일이 이(二)를 낳고 이가 삼(三)을 낳고 삼이 만물을 낳았다”는 함의와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일은 바로 무극대도(無極大道)가 홍대한 우주 중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체현된 것이다.
다시 말해 가장 높고 가장 원시적인 체현이며 도(道)에 가장 부합하고 도에 가장 가까운 상태다. 우주의 도는 본래 무형(無形)무상(舞象)하고 시작도 없고 끝도 없어서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데 그 어떤 우주 내의 중생에게도 모두 불가사의하고 추측하기 어려운 것이다.
일은 바로 우주대도(宇宙大道)의 원만한 표현이다. 이 경계 속의 만물중생 역시 신신합일(身神合一)의 상태에 있다. 소위 ‘합일(合一)’이란 일체(一體 한 몸)로 합해져 이쪽과 저쪽을 나눌 수 없다는 뜻으로 대도와 부합하는 의미가 있으며, 신신(身神)이 모두 도에 합하기 때문에 합일이라 한다.
다른 말로 하자면 시종여일(始終如一)한 것으로 가장 최초이자 가장 바르고 가장 좋은 상태를 줄곧 지켜야 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수도자(修道者)에 대해 말하자면 더욱 그렇다. 또한 시종여일해야만 비로소 일과 합할 수 있고 일을 얻을 수 있다. 왜냐하면 일은 대도(大道)의 수이자 또한 시작하는 수기 때문에 일을 얻은 사람은 순진(純真)하고 선량(善良)해서 전도가 끝이 없으며 복(福)과 수명이 무한하다.
좀 더 설명하자면 일은 대도(大道)의 수이지만 단지 대도의 상징일 뿐이고, 태극 중에서 가장 원시적인 대도의 체현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대도 자체는 아니다.
2) 이(二)는 태극의 수이자 음양의 수, 천지의 수다. 우리는 아라비아 수자 2의 외형이 태극도(太極圖)의 곡선과 아주 유사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두 글자는 부동한 층차의 함의를 담고 있다. 태극 원리에서 홀수는 양이고 짝수는 음이 되기 때문에 일(一)은 양이 되고 이(二)는 음이 된다.
만약 전체 태극을 일(一)로 본다면 이(二)는 그중에서 음양(陰陽) 양계(兩界)가 되는데, 이것이 소위 ‘일분위이(一分爲二 하나가 나뉘어 둘로 된다는 의미)’다. 같은 층차에서 불도(佛道) 양대가(兩大家)에 대해 말하자면 불가의 수가 일이라면 도가의 수는 이가 되지만 그렇다고 높고 낮은 구분은 없다.
또 다른 각도에서 말하자면 일(一)은 선천의 수이고 이(二)는 후천의 수가 된다. 노자가 “도가 일을 낳고 일이 이를 낳는다”고 한 것이 바로 이런 뜻이다.
천수(天數)는 일이 되고 지수(地數)는 이가 되니 천원지방(天圓地方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이 된다. 사람은 천지 사이에 태어나 천지의 수를 본받았기 때문에 머리는 하늘을 본받아 하나이고 발은 땅을 본받아 둘이다. 또한 천지의 상(象)을 본받았기 때문에 머리는 하늘을 본받아 둥글고 발은 땅을 본받아 네모나다.
정신(精神)의 수는 일(一)이고 진아(真我)는 유일한 것이기 때문에 사람은 주의식이 강해야 하고 한마음 한 뜻(一心一意)이어야 하며 욕망에 통제당해 두 마음을 가져선 안 된다.
물질(物質)의 수는 이(二)인데 사람에 대해 말하자면 소유한 물질재부가 아무리 많든 아무리 적든 물질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사상(四象) 중에서 현무(玄武)는 북방의 신수(神獸)로 그 성격이 음(陰)이고 오행으로는 수(水)에 속하며 그 형상은 거북과 뱀의 합체인데 2가지 덕을 합했기 때문이다.
3) 삼(三)은 생수(生數)다. 그 함의 역시 부동한 층차에 따라 부동한 인식이 있다. 《설문해자》에서는 “삼은 천지인의 도다(三,天地人之道也)”라고 했다. 일양(一陽)과 이음(二陰)을 합하면 삼(三)이 된다. 다시 말해 삼은 천지인(天地人)을 가리키는데 주역에서는 이를 삼재(三才)라 했다.
천수(天數) 일(一)에 지수(地數) 이(二)를 합하면 삼이 되고 음양의 두 기(氣)가 서로 만나 사람을 낳기 때문에 여기서 사람의 수를 삼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노자는 “도는 일을 낳고 일이 이를 낳고 이가 삼을 낳고 삼은 만물을 낳는다”고 했다. 그러므로 삼은 만물(萬物)을 낳는 수이다. 태극원리 속에서 오행의 수를 보면 각각 수일(水一), 화이(火二), 목삼(木三), 금사(金四), 토오(土五)가 되는데 목(木)은 생(生)을 주관하고 목의 수가 삼이므로 삼은 생수(生數)가 된다. 여기서 생이란 낳고 창조하며 보우하고 자윤(滋潤)하며 양육한다는 뜻이다.
4) 사(四)는 성수(成數)이자 지수(地數)다. 여기에도 여러 층의 함의가 있다. 《설문해자》에서는 “국(囗)은 사방(四方)이고 팔(八)은 별(別)이다(囗,四方也。八,別也)”라고 했다. 囗 속의 八은 넷으로 나눈 모습이다.
그러므로 사(四)에는 분리하고 구별한다는 의미가 있다. 단지 생사의 이별만이 아닌데 이는 표면적인 함의일 뿐이고 또한 개체 생명의 영혼(靈魂)과 육신(肉身)을 분리하거나 또는 몸과 머리의 분리를 지칭하기도 한다.
오행 속에서 목의 수가 삼(三)이고 금의 수는 사(四)인데, 목은 생(生)을 주관하고 금은 살(殺)을 주관한다. 그러므로 사(四)는 또 끝내고(终止) 제지(制止)하며 가로막고(截止) 조용히 정지한다(静止)는 뜻이 있으며 또 죽인다는 뜻도 있다.
다시 말해 어떤 사물이나 생명이 사(四)로 발전하면 원래 상태를 중단하거나 규제해야 한다. 우리는 이 ‘지(止)’자의 획수가 4임을 알 수 있다. 속담에 어떤 일을 하든 삼세번이라 삼을 넘을 수 없다고 한다.
그러므로 사(四)는 또 전환하고 변화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오행에서 금의 성질은 가장 단단하고 안정적이기 때문에 사(四)에는 또 성숙하고 안정되어 변동하지 않으며 영원히 굳세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해서(楷書)로 사(四)를 쓰면 글자모양이 ‘囗’속에 ‘儿’이 있는데 儿는 바로 사람(人)이다. 이는 사람이 관 속에 들어간 모습이라 사(四)에는 또 사망(死)이란 뜻이 들어 있다. 또 두 글자의 발음도 같아서 더욱 그렇다.
5) 오(五)는 존귀한 수이자 생명의 수, 지혜의 수이자 중정(中正)의 수, 원만(圓滿)의 수다. 수자 오는 내함이 가장 풍부하다.
《설문해자》에서는 오를 오행으로 풀었고 이(二)를 따른다고 했다. 즉 음양이 천지 사이에서 서로 교차한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오(五)의 본래 뜻은 바로 오행으로 또한 오행의 수이며 이(二)란 음양이다. 오(五)는 고대에는 㐅로 썼는데 이는 음양 이기(二氣)가 천지 사이에서 서로 운행하는 것을 상징한다.
도가 이론에 따르면 이 우주의 물질구조가 오행이니 이 전체 우주가 바로 오행이다. 때문에 우주의 수는 바로 오(五)가 된다. 우주가 얼마나 크면 오(五)는 그만큼 크기 때문에 가장 크고 가장 존귀한 수이다. 우주의 자칭(自稱) 역시 오(五, 五가 말하는 게 吾가 된다)가 되며 일체 중생의 자칭도 모두 오가 된다.
만약 전체 우주를 아홉 개의 큰 층차로 나눈다면 오(五)는 바로 그 가운데가 된다. 우주를 구성하는 가장 기초적인 물질이 오행이기 때문에 오는 또 가장 작은 수가 되는데 지극히 크면서도 지극히 작으며 중간에도 거하고 또 밖에도 거하며 치우치거나 기울어지지 않고 없는 곳이 없기 때문에 중정(中正)한 수가 된다. 또 전체 우주의 일체를 다 구비해 원만하고 누락이 없기 때문에 원만(圓滿)의 수가 된다.
6) 육(六)은 순조롭게 잘 통달하면서도 사람을 미혹시키는 수다. 수자 육의 함의는 아주 복잡해서 음양 양계(兩界)가 다 있고 정부(正負) 두 방면이 다 있는데 부동한 층차가 다 있다. 정면(正面)적으로 보자면 오(五)가 일(一)을 얻으면 육(六)이 되는데, 오는 생명의 수이고 일은 대도의 수다. 득도한 사람은 자연히 저절로 길이 생기고 잘 통해서 걸림이 없다.
속담에 ‘육육대순’(六六大顺 역주: 모든 일이 순조롭게 잘 풀린다는 의미)이라 하는 것은 바로 여기에서 근원한 것이다.
또 삼(三)에 삼(三)을 더해도 육(六)이 되는데 삼은 생수(生數)이고 생수가 중첩되었으니 육은 생기로 가득 찬 것이다.
부면(負面)적으로 보자면 이(二)에 사(四)를 더한 것이 육(六)이 되는데 이와 사는 모두 음수(陰數)이니 육은 지음(至陰)의 수가 된다. 지음(至陰)의 땅에서 마환(魔幻)이 생겨나기 때문에 요마귀괴(妖魔鬼怪)의 일은 대부분 육과 관련이 있다.
고인들은 저승을 뜻하는 지부(地府)와 음계(陰界)를 명계(冥契)라 했는데 저층 음계(陰界)의 중생이 거처하는 곳이다. 이 명(冥)이란 글자 구조 속에 육(六)이 들어 있는 걸 볼 수 있다. 《성경》에서도 사탄의 생일을 6월 6일이라 한다.
또 중국에서는 음력 6월 6일이 대부분의 농촌에서 성묘 가는 날이다. 불교에서는 마왕 파순을 또 제6천의 마왕이라 한다. 《서유기》에서 가짜 손오공도 육이미후(六耳獼猴)로 육이 들어간다.
《주역》에서는 감괘(坎卦)의 수가 육이 되는데 감(坎)은 위험하고 함몰되어 마난(魔難)을 의미한다. 감은 물이 되고 술이 되며 또 독이 된다. 과거 아주 맹렬한 농약 중에 ‘육육육(六六六)’이란 이름이 있었는데 이것도 우연이 아니다.
7) 칠(七)은 기(期)로 주천(周天)의 수다. 팔괘(八卦)에서는 간괘(艮卦)의 수가 칠이 된다. 간괘는 그침(止)과 시작(始)의 함의가 있다. 여기서는 조용히 멈춰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이 있고 또 한가지 운동형식이 중단되고 다른 운동형식이 시작한다는 의미가 있다. 그 함의는 사(四)와 유사하지만 또 차이가 있다.
가령 하루 중 자시(子時)에 양기(陽氣)가 처음 생겨나서 사시(巳時)에 순양(純陽)의 기가 되는데 이 6개 시진(時辰)이 하나의 작은 주기가 된다. 그 후 일곱 번째 시진인 오시(午時)에 음기가 새로 생겨나 순음지기(純陰之氣)인 해시(亥時)까지 여섯 개의 시진이 있다. 이 역시 하나의 작은 주기다.
1년도 이와 마찬가지인데 자월(子月 음력 11월 동지가 들어 있다) 양기가 시작되어 사월(巳月 음력 4월)에 순양지기(純陽之氣)가 되고 이 여섯 달이 하나의 큰 주기가 된다. 그 후 일곱 번째 달인 오월(午月 음력 5월)에 다시 음기(陰氣)가 시작되고 해월(亥月 음력 10월)에 순음지기에 이르는데 이 여섯 달이 또 하나의 큰 주기가 된다.
이처럼 하루에서 일 년에 이르기까지 음양 이기(二氣)의 운행주기는 모두 칠(七)과 관련이 있다. 음양지기(陰陽之氣)의 운동은 직접적으로 세간 만물의 생장(生長)변화를 결정하고 영향을 끼치고 또한 음양 이기의 운동법칙이 고층 우주 공간의 천체운행을 결정하는데 이는 모두 칠과 관련이 있다. 그러므로 칠을 주천(周天)의 수라 한다.
8) 팔(八)은 번영하고 창성하며 흥왕(興旺)하게 발달하는 수다. 《설문해자》에서는 “팔(八)은 별(別)이니 갈라져서 서로 등지는 모양이다”라고 했다. 별(別)자에는 분리・분별(分別)의 의미 외에도 구별하고 서로 다르다는 뜻이 들어 있다.
하늘과 땅이 자리를 정하면 세간의 만물중생은 모두 각기 그 처소를 얻고, 각기 그 능력이 있으며, 각기 그 명(命)을 받고, 각기 그 직책을 받아 각기 그 도(道)를 실행한다.
하도(河圖)에서는 천삼(天三)이 목(木)을 생하고 지팔(地八)이 이를 이룬다고 했다. 삼(三)과 팔(八)은 모두 오행에서 목이 되는데 목은 생(生)을 주관하므로 팔(八)자에는 또 생생불식(生生不息)하면서 무성하게 자란다는 뜻이 있다.
《역전》에서는 “천지의 큰 덕을 일러 생(生)이라 한다(天地之大德曰生)”고 했다. 즉, 만물을 낳고 기르는 것이 천지 사이에서 가장 큰 공덕이란 뜻인다. 덕이란 득(得)이다. 그러므로 번영하고 창성하며 흥왕하게 발달할 수 있다.
또 삼과 팔은 모두 오행에서 목이 되든데 목(木)은 모(母)와 발음이 같다. 사람은 모두 모친이 있는데 때문에 3월 8일을 부녀절(婦女節)로 삼은 것에도 나름 의미가 있다.
고인은 또 “여자는 재주가 없는 것도 곧 덕이 된다(女子無才便是德)”고 했다. 이는 여자가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이 목(木)과 같은 덕이기 때문에 덕이 있다고 한 것이다. 목은 또 인(仁)을 주관하는데 어진 사람(仁者壽)은 장수하기 때문에 여자의 수명은 흔히 남자보다 길다.
9) 구(九)는 대도(大道)가 장존(長存)하고 천지가 영원히 견고한 극수(極數)다. 하도에서는 지사(地四)가 금(金)을 낳고 천구(天九)가 이룬다고 했다. 사(四)와 구(九)는 모두 오행에서 금(金)에 속하는데 사(四)에는 성숙・안정・불변・불괴(不壞)의 의미가 있다.
구는 후천의 사에 해당하기에 사의 특성을 갖고 생겨났다. 또 구(九)는 구(久)와 발음이 같기 때문에 구 자체에도 금강불괴(金剛不壞)하고 장구하며 영원하다는 뜻이 있다.
오행에서 3가지 양수(陽數)인 일, 삼, 오를 더하면 구가 되기 때문에 구는 또 지양(至陽)의 수가 된다. 또 구(九)는 구(究)와 발음이 같아서 궁구(窮究)하고 다하며 고심(高深)하다는 뜻이 담겨 있다. 때문에 구는 곧 수의 극(極)이다.
대도(大道)의 연화(演化)는 구(九)에 이르러 끝나기 때문에 부동한 경계의 천체 구조는 모두 구층(九層)으로 되어 있고 더 미시적으로 들어가도 또 구층으로 나눌 수 있는데 층층마다 이러하며 끝이 없다.
공간적으로 보자면 지극히 미세하고 지극히 홍대하며, 시간적으로 보자면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중국도 구주(九州)로 나뉜다. 세간의 인류에게도 구족(九族)이 있다. 이는 삼재(三才)가 같은 이치다.
일에서 구까지 수에서 만약 일(一)을 대도의 처음으로 지극히 높고 지극히 양한(至高至陽) 경계로 본다면 위에서 아래에 이르기까지 구는 가장 낮은 경계가 되는데 바로 대도의 끝이자 양(陽)의 끝이며 생명・지혜・능력의 최저 경계이자 사람과 가장 가까운 경계가 된다.
반대로 만약 이 경계를 일(一)로 본다면 최고 경계가 구가 된다. 그러므로 사람에 대해 말하자면 구(九)는 지극히 높고 지극히 양한 수가 된다. 천리(天理)와 인리(人理)는 바로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만약 수 밖으로 뛰쳐나가 무극(無極) 속에서 본다면 구가 바로 일이 되며 일이 바로 구가 된다. 수는 모두 같으며 높고 낮음이 없으며 크고 작음이 없다.
10) 십(十)은 모든 수의 조상으로 완전히 아름다운 수(全美之數)이자 무극의 수다.
《설문해자》에서는 “십(十)은 수가 갖춰진 것이다. 一은 동서이고 丨은 남북이니 사방과 중앙이 갖춰진 것이다(十,數之具也. 一爲東西,丨爲南北,則四方中央備矣)”라고 했다. 그 함의는 바로 십(十)은 수를 싣는 도구가 된다는 것이다.
그중 一은 횡적으로 동서(東西)를 대표하고 丨는 수직으로 남북(南北)을 대표하는데 그럼 사면팔방과 중앙이 모두 완비된 것이다.
이런 견해는 이미지가 분명하면서도 정확한 것이다. 이외에도 십자의 일횡일수(一橫一豎)는 또 음양이나 시공(時空)을 가리킬 수 있다. 만약 대도의 각도에서 본다면 십은 모든 수의 바탕이자 배경으로 일체 수를 만든 근원이다.
즉, 일체 수는 모두 십(十) 속에 있으며 십은 영원히 일체 수의 합보다 크고 뭇수(眾數)의 조상이 된다. 다시 말해 일체 수는 모두 태극 안에 있고 모두 대도의 체현이지만 십(十)은 바로 대도 자체가 되고 바로 무극이 된다.
만약 작은 한 경계(境界) 속에서 본다면 십은 바로 이 경계의 극한이자 외각(外殼)이다. 그는 우주 중의 한 층차로 볼 수 없는데 수(數) 속에 있지 않다. 저층의 경계에 대해 말하자면 그가가장 높다. 고층 경계에 대해 말하자면 그는 가장 낮다.
최종적으로 보자면 십은 바로 무극(無極)이고 일체 수와 일체 태극은 모두 십으로 생성되었으니 십은 일체를 다 갖추고 있고 전지전능한 것으로 일체 생명과 물질의 본원이며 태극 내의 생명과 물질이 연화하는 모든 지혜와 에너지 등을 제공한다. 그러므로 완전히 아름다운 수가 된다.
십(十)은 또 시(是)와 발음이 같으니 십이 바로 도이고 때문에 도는 바로 “옳다(是).”
십은 또 실(實)과 발음이 같으니 대도는 일체를 구비했고 태극에 비교해 말하자면 그는 가장 진실(真實)하고 가장 견실(堅實)하며 또 영원불변한 존재이다.
소(小)결론
아주 높은 층차의 우주 시공 속에서 그 어떤 하나의 수자(數字)든 모두 신(神)과 마찬가지 존재이다. 그들은 모두 우주 시공구조와 생명구성 속에서 가장 본질적이고 가장 내재적이며 가장 핵심적인 요소의 하나다. 이는 또 우주 시공과 만물중생의 가장 진실한 존재방식이기도 하다.
전통문화에서 수(數)의 해석 역시 흔히 천수(天數)와 정수(定數)를 말하는데 때문에 우리 역시 수(數)를 하늘이 정한 우주연화의 순서로 간주할 수 있고 또 특정한 순서 아래에서 시공의 운행 및 만물중생의 존재 상태로 볼 수 있다.
때문에 매 하나의 수에는 모두 그 독특한 함의가 있는데 마치 한 생명이 무리(衆)와 다른 것과 같다. 사람에 대해 말하자면 만약 사람이 수의 도리를 인식할 수 있다면 자신의 마음속에 하나의 수를 지닌 사람이 될 수 있는데 그렇다면 그것은 가장 훌륭한 일이 될 것이다. (계속) / 正見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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