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고대 중국의 황제는 수많은 후궁을 거느렸다. 이중 황제의 정처(正妻)를 가리켜 ‘황후(皇后)’라 하는데 일부 고서에서는 이를 ‘후(后)’로 약칭하기도 한다.
또 황제의 모친을 황태후(皇太后), 황제의 할머니를 태황태후(太皇太后)라 한다. 그렇다면 황제의 처를 ‘후(后)’라고 칭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후(后)’의 원래 의미는 군주라는 뜻이다. ‘시경(詩經)’의 ‘상송(商頌) 현조(玄鳥)’ 편에 보면 “상나라의 옛 임금님 명을 받아 위태로움이 없으니 자손인 무정에까지 이르렀네(商之先后,受命不殆,在武丁孫子)”라고 하여 후(后)를 군주의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 ‘좌전(左傳)’이나 ‘서경(書經)’에서도 유사한 용례를 찾을 수 있다.
또, 우임금의 아들 계(啓)를 ‘하후씨(夏后氏)’라 하고 전설 속에서 해를 쏘아 떨어뜨린 명사수를 후예(后羿)라고 하는데 여기서 후란 임금을 뜻한다.
나중에 점차 뜻이 넓어지면서 공경(公卿)과 제후(諸侯)들도 후(后)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주(周)나라 이전까지 천자(天子)의 아내를 모두 ‘비(妃)’라 칭했지만, 주나라 이후에는 ‘후(后)’라 칭하게 되었다. ‘예기(禮記) 곡례(曲禮)’에 “천자의 비를 후라 한다(天子之妃曰后)”는 기록이 있다.
그러다 진시황(秦始皇)이 최초로 황제(皇帝)라는 칭호를 사용하면서 황제의 정처를 황후(皇后)라 부르는 후비(后妃)제도를 만들었다. 그러나 진 왕조는 일찍 멸망했기 때문에 비교적 체계적인 후비제도가 실행된 것은 한(漢)나라 이후의 일이다. 이때부터 황제의 정처를 황후라 하고 태자를 황태자로 높여 부르게 되었다.
황후 이외의 다른 후궁들에 대한 호칭은 역대 왕조마다 조금씩 다르다. 가령 조조(曹操)가 세운 위(魏)나라에서는 후궁을 5단계로 나누어 부인(夫人),소의(昭儀),첩여(婕妤),용화(容華),미인(美人)이라 칭했다.
그렇다면 후(后)의 원래 의미는 무엇일까? 갑골문에 보면 후의 원래 모습은 왼쪽 아래에 口(구)가 있고 우측 상방에 이를 잡으려는 손이 그려져 있다. 나중에 금문(金文)에서 글자의 좌우가 바뀌면서 지금처럼 손이 좌측 상방에 있는 모습으로 변모했다.
이 글자의 의미는 고대 씨족마을에서 명령을 발하던 수령(주로 나이 많은 여성)을 지칭하는데 나중에 그 뜻이 확장되어 제왕의 정처 등의 의미로 사용됐다. 후궁에서 황후의 지위는 천자와 같으며 수많은 비(妃)들의 주인이 된다.
편집부
(ⓒ SOH 희망지성 국제방송 soundofhop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