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수의 상징과 함의
[SOH] 수(數)의 함의(含意)는 극히 풍부하다. 왜냐하면 수(數)가 오행(五行)을 표시하기 때문인데, 오행으로 구성된 이 우주는 공간 구조와 시간의 운행방식, 생명의 존재형식 및 인연관계, 물질의 존재와 변화형식 등이 아주 복잡하기 때문에 수(數)의 함의 역시 매우 복잡하다.
(1) 영(零)은 모든 수의 근원 수(數) 영(零) 오(五)
태극의 원리에서 영(零)이 표현하는 것은 무극(無極)이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무극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며, 그 정신(양)과 물질(음)상태가 ‘신신합일(身神合一)’의 경계(境界)에 있어 어떤 극단적인 표현도 없기 때문에 태극 안의 일체 중생에게는 모두 추측하기 어렵고 불가사의하다.
이 정체(整體)적인 태극(太極)과 태극 안의 무량한 천체, 무량한 소우주와 무량한 중생은 모두 무극의 정신과 물질의 체현으로 모두 유(有)의 범주에 속한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은 다 영(零) 이외의 다른 수(數)로 표시할 수 있지만 오히려 영(零)으로는 표시할 수 없다.
또한 무극의 수(數)를 표시하는 영(零)은 그 어떤 유(有)의 개념으로 그를 형용해도 단지 그의 함의를 태극으로 변하게 하고 무한히 작게 변하게 할 따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零)을 일체 수의 근원으로 보는데, 노자의 말로 하자면 영(零)은 “현빈의 문은 천지의 근본이며, 끊임없이 존재하는 것 같고 아무리 써도 지지치 않는다(玄牝之門,是謂天地根,綿綿若存,用之不勤)”가 된다. 그는 영원불변과 대원만(大圓滿)을 상징한다.
(2) 오(五)는 영(零)의 표현형식
태극의 원리에서 무극은 선천적인 존재이고 태극은 후천적인 존재이다. 때문에 무극의 수(數)를 표시하는 영(零)은 바로 선천적이며 태극의 수(數)를 표시하는 오(五)는 후천적이다.
무극은 태극을 낳기 때문에 태극은 무극의 정신과 물질의 체현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태극이 무극 자체는 아니다.
수(數)에 대해 말하자면 五는 영(零)에서 생기지만 영(零)은 오(五)를 이용해 표현한다. 마치 계란은 닭이 낳은 것이지만 닭은 닭이고 계란은 계란인 것처럼 닭과 계란이 다른 것과 같다.
노자는 “천하 만물은 유(有)에서 생겼고 유는 무(無)에서 생겼다”고 했다. 그가 말하는 무(無)가 바로 무극이며 유(有)가 바로 태극이다. 그렇다면 만약 수(數)를 사용해서 이 말에 담긴 함의를 표현한다면 우주 중의 일체 수(數)는 모두 오(五)가 낳았고 오(五)는 영(零)에서 생겼다고 할 수 있다.
오(五)가 대표하는 것은 전 우주이다. 그것은 태극의 수(數)로써 태극 안에는 하늘이 있고 땅이 있으며, 남자가 있고 여자가 있으며, 생명과 물질, 시간, 공간이 있다.
이 모든 존재는 각기 그 수(數)가 있고 또한 그것을 이용해서 표시할 수 있기 때문에 일체의 수(數)는 다 오(五)의 극단표현이라 할 수 있다.
(3) 많은 수(數)는 서로 같으면서 같지 않다
우주의 수(數)는 오(五)이고 우주 중의 만물의 수는 一, 二, 三, 四, 五, 六, 七, 八, 九, 十(보다 큰 수는 자릿수로 결정된다) 등등 수많은 수(數)가 있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수(數)는 오행에서 생겼고 오행을 표시하는데 다시 말해 모든 수(數)는 다 오행의 체현이다.
오행의 표현이 일(一)이 될 때면 그는 곧 일(一)이 되고, 이(二)로 표현될 때는 곧 이가 되며, 삼(三)으로 표현될 때는 곧 삼이 되며 …중략… 십(十)으로 표현될 때는 십이 된다. 이런 각도에서 일에서 십을 말하고 십에서 백을 말하며 천, 만, 억, 조 등을 말하면 우주 중의 모든 수는 마찬가지로 큰데 모두 오행의 극단체현이다.
매 하나의 수는 다 오행의 어느 한 방면의 특징을 체현하기 때문에 그 어떤 두 개의 수(數)도 모두 같지 않다. 사람으로 비유하자면 천지는 대우주이고 인체는 소우주인데 그렇다면 매 사람의 수(數)는 다 오(五)이고 자칭(自稱) 역시 오(五 즉 吾)가 된다.
인체를 구성하는 모든 세포는 모두 오(五)의 형상과 정보가 있으며, 모든 것은 오(吾 즉 五)의 체현이다. 하지만 매 세포의 위치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그 성질과 기능도 다르다.
마찬가지로 그 어떤 두 수(數) 사이의 관계 역시 이와 같은데 서로 같으면서 다르기도 하다. 소위 같다는 것은 크고 작음이 없고 귀하고 천함이 없으며 일률적으로 평등하다는 것이고 다르다는 것은 위치가 다르고 성질이 다르고 작용이 다른 것이다.
(4) 수(數)는 우주 중 부동한 시공의 구조형식과 운동규칙
태극원리에서 보자면 이 우주의 시공구조에는 층차(層次)가 있는 것으로 매 수(數)는 다 부동한 층차를 상징한다. 전체적으로 말하자면 태극 안에서 일(一)은 최초의 가장 원시적인 층차와 경계를 대표하는데 다시 말해 도(道)에서 가장 가까운 경계다.
오(五)는 그 속에 있으며 구(九)는 가장 낮은 층차다. 십(十)은 오(五)의 음극(陰極)으로 전체 우주의 외각(外殼)이지만 그것을 한 층차라 할 수는 없다. 인류사회는 바로 이 공간 가운데 있다. 이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이르는 종향(縱向)의 층차 개념이다.
횡향(橫向)의 층차 개념은 일(一)에서 구(九)까지 모두 동등한 층차의 서로 다른 공간이다. 종향의 매 수 속 매 층 공간 속에는 모두 각각 횡향의 구대(九大)공간이 있으며, 매 한 층 공간의 외각은 다 십(十)이다.
그러므로 태극 안에서 매 하나의 완전한 우주 속에는 구구팔십일(九九八十一) 개의 부동한 공간이 존재한다. 수(數)가 다르기 때문에 모든 공간의 물질구조 역시 같지 않으며 공간의 개념 역시 같지 않다.
비교하자면 인류가 생활하는 공간과 어류가 생존하는 공간의 개념이 완전히 다른 것처럼 사람에 대해 말하자면 물은 아주 실재적인 것으로 공간이 아니지만 물고기에게는 우리의 공기 역시 아주 실재적인 것이 되며 역시 공간이 아니다.
우리가 앞에서 설명했다시피 오행의 오(五)가 일(一)로 표현될 때는 일이 되고, 이(二)로 표현될 때는 이가 되는데, 다시 말해 매 하나의 수(數)는 오(五)의 극단 표현이고 매 수(數)를 확대하면 다 오가 된다.
다만 이런 변화는 최초의 이 수(數)의 범위 안에 한정될 뿐이다. 다시 말해 우주시공은 모두 끊임없이 운동하고 변화하는 것으로 그 변화법칙 역시 모두 수(數)가 있는 것이다. 아울러 양수(陽數)와 음수(陰數)의 운동방식은 완전히 반대로 되며 양은 순행(順行)하고 음은 역행(逆行)한다.
매 수(數)마다 모두 이런 변화가 있는데 변화 후 매 수 역시 이러하다. 때문에 방금 말한 이 법칙은 아무리 깊은 층으로 들어가서 보아도 역시 무궁무진(無窮無盡)한 것이다.
우주시공의 구조와 생명의 구조는 모두 수리(數理) 속에 있기 때문에 우주 중의 일체 중생 역시 각자 그 수(數)가 있다. 다시 말해 모두 우주의 수인 오(五)의 극단표현이며 아울러 모두 오(五)와 같은 능력을 구비하고 있다.
다만 그의 능력이 그가 소재한 층차 속에 한정되어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 능력의 방식은 같은 것이다. 가령 우리가 《서유기》를 보면 손오공이 분신(分身)해서 수많은 자신으로 변할 수 있고, 신불(神佛)과 보살도 무수하게 분신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일체는 다 수리(數理)에 근거한 것이다.
(5) 수(數)는 우주 중 생명과 물질의 존재형식
앞서 언급했다시피 도가의 세계관은 무극이 태극을 낳는 것으로 태극은 바로 무극 의지의 체현이다. 그런데 무극의 무(無)는 오(五), 물(物), 오(吾), 오(悟)의 함의를 지니며 태극 속의 이 몇 가지 방면은 모두 전체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오행으로 구성된 이 우주의 수(數)는 바로 오(五)이다.
오가 만약 입을 움직이면 곧 오(吾)가 되며, 오가 만약 마음을 움직이면 곧 오(悟)가 되고, 마음과 입이 움직이지 않으면 곧 물(物)이 된다.
또 이 우주 중의 일체 존재는 다 오행으로 구성된 것이라 이 일체 존재 역시 바로 지혜가 있고 생명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주 중의 생명형식, 문화지혜, 물질형태 등 일체 역시 수(數)가 있는 것으로 수의 각도에서 말하자면 이 모든 일체는 다 오(五)의 극단 체현이며 각자 부동한 수(數)가 있다.
가령 사람을 말하자면 부동한 피부색과 언어, 인종 및 그 사람 수 등은 모두 수(數)의 체현이다. 동물의 종류, 수량, 형상, 생존방식 등 역시 각기 그 수(數)가 있으며, 식물의 종류, 형상, 능력 등 역시 모두 각각의 수(數)가 있다.
태극은 음양으로 나뉘기 때문에 수(數)와 생명의 표현형식 역시 음양이 있다.
만약 사람과 동물, 식물처럼 생명형식을 쉽게 관찰할 수 있으면 양성(陽性)적이고, 산천대지(山川大地), 금석토목(金石土木), 풍우뇌전(風雨雷電) 등의 일체 현상은 곧 음성(陰性)적인 생명으로 그 일체 존재형식 역시 모두 각기 수(數)가 있다.
종향(縱向)적으로 말해, 이 삼계 내의 생명 층차를 만약 수자로 표시한다면 一, 二, 三, 四는 천인(天人)으로 성질이 양(陽)이고 六, 七, 八, 九는 음계(陰界)의 생명이 된다. 오(五)는 바로 지구 위의 사람으로 음양이 각기 절반씩 있다.
만약 삼계 층차를 더 세분한다면 일(一)에서 구(九)까지 천상의 사람이 되고 성질은 양이 된다. 지구상의 사람은 십(十)의 위치에 있고 음양이 절반씩 있다. 음계(陰界) 역시 일(一)에서 구(九)까지 구대(九大)층차가 있다.
모든 수는 다 오(五)의 극단체현이기 때문에 모든 수(數) 역시 오의 능력과 특징을 구비하고 있다. 우주 중의 모든 생명형식과 물질형식은 모두 상호 변환되거나 전화될 수 있는데 불교에서는 이런 현상을 윤회(輪回)라 부른다.
앞서 언급했던 후천(後天) 오행의 수는 인류사회 이 경계에서는 이렇게 나타나지만, 인류보다 높거나(천인) 인류보다 낮은(저승) 공간 역시 모두 이렇다. 인류보다 높은 공간은, 오직 오행 속에서 그중의 일체 존재, 모든 생명과 물질 역시 오행으로 구성된 것으로 그들은 곧 후천의 존재에 속한다.
그렇다면 그들이 소재한 경계의 오행의 선천 수(數) 역시 수일(水一), 화이(火二), 목삼(木三), 금사(金四), 토오(土五)가 되며, 후천의 수(數)도 수육(水六), 화칠(火七), 목팔(木八), 금구(金九), 토십(土十)이 된다.
높은 경계 속에서 오행의 기(氣)가 모여 이룬 생명과 물질의 표면입자는 인류공간에 비해 더 미시적이고 더 세밀하다. 그러므로 그 경계 속 생명의 능력과 지혜는 모두 사람보다 높으며 아울러 수명도 길고 복도 크다.
인류보다 낮은 공간에서 오행의 수(數) 역시 이렇게 얻어지는데 단지 그중의 생명과 물질을 구성하는 미립자가 인류보다 더 거칠고 과립이 더 크며 더 물질화되어 있기 때문에 음계의 생명은 이미 영혼이 없고 오직 물질형체만 있을 뿐이다.
오행은 단지 오형(吾形 나의 형상)으로 표현되며 생명은 이미 그 어떤 행복이나 즐거움도 없고 오직 고통스럽게 시달릴 뿐이며 다시 말해 이미 죽은 것이다.
특히 지옥 속의 악귀(惡鬼)・악마(惡魔)는 대부분 지혜와 지능이 없으며 감정은 더욱 없다. 그것들은 곧 기계적이고 완전히 자동적이며 살아 있는 형구(刑具 형벌도구)에 불과하며 그것들의 공능은 곧 직접적으로 이곳에 떨어진 중생들의 업력을 제거하는 것이다.
이곳에 떨어진 중생은 날마다 생사(生死)에 직면해야 하는데 심지어 하루 사이에 만 번 살고 만 번 죽는 것 역시 정상이다. 때문에 이 경계 속의 오행은 이미 아주 실질적으로 오형(吾刑 나의 형벌)으로 변한다!
결론
수(數)에 대한 인식은 태극원리의 중요한 구성 부분이다. 중국 전통문화의 근원이 바로 태극원리이기 때문에 중국 고대의 과학기술방면은 모두 수(數)를 벗어날 수 없으며 전통문화에서 천지인(天地人)에 대한 고층차의 인식은 모두 완전히 수(數)에 대한 인식을 기반으로 건립된 것이다.
한대(漢代)의 위대한 학자 장형(張衡)은 “수술(數術)은 천지를 탐구한다”고 했다. 오직 수의 규칙을 장악하기만 하면 정확하고 깊이 있게 천지인(天地人)의 운행 규칙을 인식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중국인의 사유방식, 언어문화 속에서도 모두 수(數)의 내함이 관통되어 있다. 가령 우리가 한 가지 일을 하는데 정확한 파악이 있다면 통상 마음속에 수(數)가 있다(心中有數 승산이 있다는 의미)고 말하고 또 아주 쉽게 이룰 수 있다. 반대로 만약 실패했다면 이는 마음속에 수(數)가 없기 때문이다.
수(數)의 내함은 박대정심(博大精深)하며 부동한 경계에서 부동한 인식이 있다. (계속) / 正見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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