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중국에서 ‘월하노인(月下老人, 달빛 아래 노인)’이라는 단어는 인간 세상에서 혼사를 전문적으로 주관하는 중매인을 말한다. 간단히 ‘월하노(月下老)’ 또는 ‘월로(月老)’라고도 한다.
우리나라 전설 중에도 청실홍실에 관한 내용이 있다. 남자는 푸른 실, 여자는 붉은 실로 연결돼 있고 이 실을 하나로 엮으면 부부가 된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함을 들일 때 청실과 홍실을 함에 넣어 부부의 금슬을 상징하게 됐다.
이 역시 중국의 ‘월하노인’ 전설과 관련이 있다. 당나라 때 이복언이 지은 ‘속현괴록(續玄怪錄)’에 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1천4백여 년 전 당나라 때 일이다. 두릉(杜陵) 지방에 위고(韋固)라는 남성이 있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일찍 아내를 맞고 싶어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는 어느 날 여행을 하다가 송성(宋城) 남쪽의 한 객점에 묵게 됐다.
그날 밤 산책에 나선 위고의 눈에 문득 한 노인이 달빛 아래에서 열심히 책을 뒤적이는 모습이 들어왔다. 노인의 옆에는 또 큰 포대가 하나 있었는데 그 속에는 붉은 색 실이 가득했다.
호기심을 느낀 위고는 노인에게 다가가 정중히 물었다. “어르신, 무슨 책인데 그렇게 열심히 보십니까?” 노인은 “천하 남녀의 혼인에 관한 인연을 기록한 책이라네.”라고 대답했다.
이 말에 호기심이 생긴 위고는 “그러면 포대에 든 이 홍실은 어디에 쓰시는 겁니까?”라고 물었다. 노인은 미소를 지으며 “이 홍실은 장차 부부가 될 남녀의 손발을 묶는데 쓰지. 그 두 사람이 설사 원수의 집안이거나 이역만리 떨어져 있거나 또는 빈부차가 아무리 심할지라도 이 홍실로 한데 묶어놓기만 하면 결국에는 부부가 된다네."라고 대답했다.
이것이 바로 ‘천리의 인연이 한 가닥 줄에 연결되어 있다’는 말의 유래다.
위고는 노인의 말을 믿기 어려웠고 자신에게 농담을 하는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이 괴상한 노인에 대해 흥미가 생겼고 궁금증도 많아졌다. 그 순간 노인은 몸을 일으키더니 책과 포대를 챙겨 시장을 향해 걸어갔다. 위고는 노인을 쫓아갔다.
두 사람은 한 쌀가게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마침 한쪽 눈을 잃은 여인이 세 살 가량의 여자아이를 안고 서 있었다. 노인은 그 아이를 가리키면서 위고에게 “저 아이는 장래 자네의 아내가 될 것일세”라고 말했다.
이에 위고는 노인이 자신을 놀리는 것이라고 여겨 화를 냈다. 집에 돌아온 후에도 분을 참을 수 없었던 위고는 하인을 시켜 시장에서 본 그 여자아이를 죽이라고 사주했다. 그러면 그 아이가 장차 자신의 아내가 될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명령을 받은 하인은 곧장 쌀가게로 달려가 아이를 칼로 찌르고 달아났다. 위고는 다시 노인을 찾아가 책의 내용이 변했는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다시는 노인을 만날 수 없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14년이 흘렀다. 위고는 전투에서 눈부신 공을 세웠고 상주 자사(相州刺使) 왕태(王泰)의 눈에 들었다. 왕태는 예쁘기로 소문난 자신의 금지옥엽 딸을 위고의 아내로 주고 싶어 했다. 애석한 것은 그녀의 미간에 상처가 하나 있었다는 점이다.
위고는 이상하게 느껴 장인이 될 왕태에게 물어보았다. “따님 미간의 상처는 어쩌다 생긴 것입니까?” 그러자 왕태는 “이 아이의 목숨과 바꾼 것이지. 14년 전 송성에 있을 때 유모가 아이를 안고 시장에 갔다가 갑자기 웬 미친놈에게 칼을 찔렸다네. 다행히 아이의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이마에 이런 상처를 남겨놓았다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 수 있지!”라고 말했다.
위고는 이 말을 듣고 매우 놀랐고 14년 전에 있었던 노인과의 일을 떠올렸다. 위고의 마음 속은 순간 놀라움과 부끄러움, 의혹이 교차했다. ‘설마 그녀가 정말 내가 살해하라고 시켰던 그 아이란 말인가?’
위고는 이를 확인하기 위해 왕태에게 다시 물었다. “혹시 그 유모는 한 눈을 잃은 사람이었나요? 왕태는 위고의 안색이 변한 것을 보고 이상히 여기면서 “그렇다네, 분명 한쪽 눈이 먼 아낙이었지! 그런데 자네가 어찌 그 사실을 아는가?”라고 물었다.
위고는 오래 전 노인의 예언이 실현된 것에 대해 매우 놀라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잠시 후 평온을 되찾은 위고는 14년 전 송성에서 월하노인을 만났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에 대해 왕태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위고는 당시 노인이 자신에게 허튼 소리를 한 것이 아니었으며, 하늘의 뜻은 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혼인의 인연은 신이 결정한 것이었다. 위고는 결국 노인의 말대로 왕태의 딸과 혼인했고 평생 서로를 아끼며 사이좋게 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일은 송성에도 전해졌다. 현지 사람들은 월하노인을 기념하기 위해 남쪽 객점을 ‘정혼점(定婚店, 혼인을 결정하는 객점)’이라 고쳐 불렀다. 또 홍실 포대를 지닌 노인을 월하노인이라 불렀다.
이 이야기에는 혼인이 개인의 기호나 선택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하늘의 이치에 따라 결정된다는 깊은 뜻이 담겼다. 선현들은 혼인을 ‘하늘의 이치를 따르고 인정의 마땅함에 합하는 것’(順天之理 合人情之宜)이라 여겨 엄숙하고 신중히 여겼다.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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