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중국 속담 중에 “주관(州官)의 방화는 허용하지만 백성들이 등불을 켜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只許州官放火, 不許百姓點燈)”는 말이 있다.
현대인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이 속담에는 정부 관리들이 행정적 편의를 위해 백성들의 권리를 자의적으로 제한했다는 뜻이 담겼다. 중공이 통치하는 대륙에서는 봉건시대 지배계층이 권력을 전횡하며 백성들의 자유를 억압한 것으로 해석한다.
하지만 이 속담이 피휘(避諱)와 관련된 풍자에서 비롯된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피휘란 무엇일까? 피휘(避諱)란 원래 군주의 이름에 사용된 글자를 존중하는 뜻에서, 이를 사용하지 않은 것을 말한다. 군주의 이름을 피하는 것을 국휘(國諱)라 하는데 보통 황제의 경우는 7대, 제후 왕의 경우는 5대 위 조상까지 같은 이름을 쓰지 않았다.
예를 들어 당태종은 본명이 이세민(李世民)인데 성은 상관없고 이름인 ‘세(世)’, ‘민(民)’을 일반 백성들이나 관료들이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당나라의 유명한 장군 이세적(李世勣)의 이름이 이적(李勣)이 된 것도 군주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으려는 뜻이다.
심한 경우에는 해당 글자뿐만 아니라 그 글자와 음이나 모양이 비슷한 다른 글자들까지 모두 피하기도 했다. 이 관습은 고대 중국에서 시작돼 한국, 일본 등 한자문화권에서 오랫동안 행해졌다. 성인(成人)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이 예(禮)에 어긋난다며 자(字)나 호(號)를 지어 부르던 전통관습도 그렇다. 직계 조상의 이름을 언급할 때 본명을 부르지 않고 ‘○자○자’라고 부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면 원래 속담으로 돌아가 보자. 이 문장은 남송의 저명한 시인 육유(陸遊)가 지은 ‘노학엄필기(老學庵筆記)’에서 나왔다. 기록에 따르면 송나라 때 전등(田登)이란 인물이 있었는데 주(州)의 장관으로 있으면서 자신이 통치하던 지역의 백성들에게 자신의 이름(‘登’)을 피하게 했다. 이 규정을 어기면 채찍으로 때리는 가혹한 형벌을 가했다. 이렇게 되자 사람들은 ‘등(登)’이란 글자와 유사하거나 발음이 비슷한 글자마저도 사용을 꺼렸다. 백성들은 ‘등(燈)’을 ‘화(火)’로 바꿔서 사용했다.
당시 세시풍속에 정월 대보름날(원소절)이 되면 성안 곳곳에 등불을 밝히고 3일 동안 경축했다. 하지만 주 관원들은 주 장관의 이름이 등(登)이라 ‘등불을 밝힌다(放燈)’는 표현을 쓸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불을 놓는다는 뜻의 ‘방화(放火)’로 고쳐 써야 했다. 이에 “우리 주에서는 관례에 따라 3일간 불을 놓는다(本州依例,放火三日)”라고 공고했다.
그러자 이를 본 백성들이 전등의 전횡을 풍자해 주의 관원들만 불을 놓을 수 있고 백성들은 등불을 켜지 못하게 한다는 말을 만들어 냈다. 즉, 여기서 진짜 등불을 켜지 못하게 했다는 것이 아니라 전등의 이름에 나오는 등(登)을 쓰지 못하게 한 것을 비꼬는 말이다.
이외에도 피휘 때문에 글자가 바뀐 사례는 아주 많다. 대표적인 것은 진시황의 이름인 ‘정(政)’을 피하기 위해 정월(正月)을 단월(端月)로 고쳐 부른 것이나 한 경제(景帝)의 이름인 유계(劉啓)를 피하기 위해 24절기 중 계칩(啓蟄)이 경칩(驚蟄)으로 바뀐 것이 예다. 원래 북경 자금성의 북문 명칭은 현무문(玄武門)이었으나 강희제의 이름이 현엽(玄燁)이었던 관계로 신무문(神武門)으로 바꿨다.
처음에는 군주의 이름만을 피휘했던 것이 당송 시기를 거치면서 심해져 나중에는 조상이나 성인의 이름까지 피했다. 대표적인 예가 공자의 이름인 구(丘)이다. 원래 조선 영조시대까지 대구의 한자 표기는 ‘大丘’였다. 하지만 공자의 이름을 피하려고 ‘丘’를 ‘邱’로 바꿨고 지금까지도 대구는 ‘大邱’로 표기한다.
때로는 이와 반대되는 경우도 있었다. 민간에서 자라 백성들의 고통을 잘 이해한 한나라 선제(宣帝)는 원래 이름이 ‘유병이(劉病已)’였다. 그런데 ‘병(病)’과 ‘이(已)’, 두 글자 모두 민간에서 흔히 쓰는지라 백성들이 말을 하다보면 실수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았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본의 아니게 엄한 처벌을 받곤 했다. 선제는 보다 못해 자신의 이름을 유순(劉詢)으로 개명했다.
특수한 피휘도 존재한다. 충신 악비(岳飛)를 죽인 남송의 간신 진회(秦檜), 그를 미워하는 중국인들은 사람 이름에 회(繪)를 쓰지 않는다. 오랫동안 몽골족의 침략을 받았던 한족(漢族)들이 ‘원(元)’이란 단어를 쓰기 꺼린 것도 그 예다. ‘원래(元來)’가 ‘원래(原來)’로 바뀌고 ‘원시(元始)’가 ‘원시(原始)’로 바뀐 것도 이 때문이다.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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