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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그렇구나!] ‘젓가락’의 유래

편집부  |  2022-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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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H] 젓가락은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 문화를 상징하는 물건이다. 우리말 ‘젓가락’은 ‘저(箸)’와 ‘가락’(가늘고 긴 모양을 이르는 말)을 합한 것이다. 숟가락도 유사한 조합이다.


젓가락을 사용하게 된 것은 중국에서부터다. 현대 중국어에서는 젓가락을 쾌자(筷子)라 하는데, 중국인에게 젓가락은 세끼 식사에 없어서는 안될 필수품이다. 그렇다면 중국인들은 왜 음식을 먹을 때 젓가락을 사용하게 됐을까? 또 ‘筷子’라는 이름은 어디서 유래했을까?


중국 고대에는 지금 한국과 마찬가지로 젓가락을 ‘저(箸)’라고 불렀다. ‘사기’의 ‘송미자세가(宋微子世家)’에는 “주왕(紂王)이 상아(象牙)로 젓가락을 만드니 기자(箕子)가 ‘주왕이 상아로 젓가락을 만드는 것을 보니 필경 옥으로 잔을 만들겠구나!’라고 탄식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여기서 상저(象箸)란 상아로 만든 젓가락을 말하는데 기자가 주왕의 사치가 극에 달할 것임을 예측한 것이다. 약 3천 년 전 은나라 말기에 중국에서 젓가락이 널리 사용됐고 상아와 같이 특수한 재질로 만든 젓가락도 있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중국 전설에 따르면 물을 다스리는데 큰 공을 세운 대우(大禹)는 젓가락의 달인이었다. 대우는 물을 다스리기 위해 애쓰던 시기에는 자신의 집 앞을 세 번이나 지나쳤음에도 단 한 번도 집에 들르지 않았다. 공사 진행을 지체할까 염려해 들판에서 식사를 하고 음식이 익으면 바로 먹고 길을 나섰다. 


그런데 음식이 탕 속에서 펄펄 끓고 있을 때는 손으로 건져낼 수 없었다. 그래서 나뭇가지를 잘라 고기나 야채를 건져먹었는데 이것이 바로 젓가락의 시초다.


저(箸)가 등장하는 또 다른 고대문헌으로는 ‘예기(禮記)’가 있다. ‘예기(禮記) 곡례상(曲禮上)’에 “기장밥을 먹을 때는 젓가락을 사용하지 말라(飯黍毋以箸)”는 구절이 나온다. 당시에는 밥을 먹을 때 손으로 먹는 것이 바른 예절이었고, 젓가락으로 밥을 헤집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본 것이다.


또 같은 편에는 “국에 나물이 있는 것은 젓가락을 사용하되 나물이 없으면 사용하지 않는다(羹之有菜者用梜,其無菜者不用梜)”는 구절이 있다. 여기서 협(梜)은 나무로 만들어 음식물을 사이에 끼우는 젓가락을 말한다. 지금도 일부 중국인들은 젓가락을 가리킬 때 협제(梜提 자티)란 단어를 사용한다. 


이러한 기록을 통해 중국은 선진(先秦)시기에 이미 젓가락을 널리 사용했지만 용도에 제한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밥을 먹을 때는 주로 손으로 먹고, 젓가락은 뜨거운 국에서 건더기를 건질 때만 썼다.


중국 역사상 젓가락을 보편적으로 쓰기 시작한 시기는 한(漢)나라 때로 여겨진다. 또, 젓가락을 가리키는 단어가 저(箸)에서 쾌자(筷子)로 변한 것은 명(明)나라 이후의 일이다.


명나라 때 육용(陸容)이 지은 ‘숙원잡기(菽園雜記)’에는 “민간에도 피휘(避諱)가 존재하는데 특히 오중(吳中) 지방이 심하다. 가령 ‘주(住 머무른다는 뜻)’나 ‘번(飜 뒤집힌다는 뜻)’을 휘해 ‘저(箸)’도 ‘쾌아(快兒)’라 한다”고 적혀 있다.


오중 지방은 수운이 발달한 곳이라 배를 타고 생활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들에게 가장 불길한 단어는 배가 뒤집히거나 혹은 멈춰서는 것이라 이와 비슷한 발음을 지닌 단어들을 꺼렸다. 그런데 멈출 주(住)와 젓가락을 뜻하는 저(箸)의 중국어 발음이 ‘zhù’로 같았다. 


때문에 이 지역 사람들은 젓가락을 지칭할 때 ‘저(箸)’라 하지 않고 ‘쾌아(快兒)’라고 불렀다. 빨리 움직인다는 의미인데 나중에 젓가락의 의미를 분명히 하기 위해 대나무 죽(竹)을 덧붙여 ‘쾌(筷)’로 만들었다. ‘쾌자(筷子)’라는 단어는 이렇게 생겨났다.


한편, 쾌자가 외형이 곧고 굽은 곳이 없어 선인들은 젓가락에 여러 가지 미덕(美德)을 덧붙였다. 예로, 오대(五代) 왕인유(王仁裕)가 편찬한 ‘개원천보유사(開元天寶遺事)’에 따르면 당 현종 시대에 송영(宋璟)이란 재상이 있었는데 지조가 굳고 법을 잘 지켰다고 한다. 이에 현종은 자신이 사용하던 금 젓가락을 하사해 그의 강직하고 굳센 지조를 표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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