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사전(史前)시기 대홍수는 세계 각지의 여러 민족에게 모두 있었다고 기록돼 있다. 비록 세부적인 내용은 다소 차이가 있지만 모두 대홍수가 고도로 발달한 그 시기의 인류문명을 끝냈다는 공통점이 있다.
■ 대홍수에 관한 기록
아틀란티스는 사람들에게 매우 높은 수준의 문명화된 고대 대륙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아틀란티스에 대한 기록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의 저서 ‘대화록’에 기재되어 있다. 그에 따르면 아틀란티스는 기원전 1만 년경 대홍수로 훼멸되면서 바다 밑으로 가라 앉았다.
인도에는 세계적으로 명성이 있는 고대 대서사시(마하바라따)가 있다.
인도 사람들은 이 책을 근거로 해서 전설 중에 대홍수로 침몰되었다고 알려진 드와카를 찾았다. ‘드와카’는 범어에서 ‘천국의 문을 소유하다’라는 뜻이다. 드와카는 고도로 발달한 인류 문명을 지닌 사전시기의 오래된 성(古城)이었다. 그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9천 년 전 대홍수로 훼멸됐다.
사전(史前)시기 한차례 세계적인 대홍수에 대해 기술한 문장들을 살펴보면 ▲고대 바빌로니아의 ‘길가메시 서사시’에는 “하늘이 땅에 가까워져 하루 만에 모든 사람이 멸종되었고 산도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고대 멕시코의 ‘치말포포카족 그림문자서’에는 “홍수와 함께 폭풍우가 몰아쳐 거의 하룻밤 사이에 대륙의 평지와 구릉지를 모두 덮었고 높은 산에서 거주하거나 그곳으로 도망친 사람들만이 생존할 수 있었다” ▲수메르의 ‘엘리쉬 창세 신화’에는 “그 상황은 공포에 질려 견딜 수 없을 정도였다. 바람이 공중에서 무섭게 울부짖어 모두 필사적으로 높은 산으로 도망쳤다”고 기록되어 있다.
사전시기 대홍수와 관련해서는 일반적으로 성경의 대홍수와 노아의 방주에 관한 기록이 가장 널리 전해지고 있다.
노아는 어느날 여호와로부터 방주를 만들라는 명령을 받았다. 방주의 규모는 길이 약 135m, 폭 약 22.5m, 높이 약 13.5m이며, 내부는 3층의 구조였다. 노아는 이 거대한 방주를 약 100여년 동안 만들었다.
노아가 600세 되던 해 2월 17일,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가운데, 그의 가족은 각종 동식물과 종자를 가지고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안전하게 방주에 올랐다. 당시 폭포수 같은 큰비가 40일 동안 밤낮을 내리니, 인류와 모든 종은 멸망하고 노아 가족만 살아 남았다.
방주는 모두 365일 동안 바다 위를 떠돌았으며, 노아의 가족은 홍수가 끝난 후 가까스로 육지를 찾은 후에야 배에서 내릴 수 있었다. 육지를 다시 밟게 된 노아와 가족은 먼저 여호와에게 감사의 제를 올렸다.
■ 대홍수가 존재했다는 증거
최근 각국의 여러 과학자들은 사전(史前)시기에 대홍수가 실제로 존재했다는 증거를 끊임없이 발견하고 있다.
컬럼비아대 윌리엄 라이언과 월터 피트먼 두 교수는 1997년의 보고서에서, 고고학적 증거를 이유로 대홍수는 구약성경에서 묘사된 것처럼 매일 10 입방마일 규모로 물이 불어나며 최소 300일간 계속됐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대홍수로 흑해 연안의 육지 6만마일 이상이 물에 잠겼으며, 지중해 바닷물과 합쳐지면서 흑해의 수면이 수백 피트 높아졌고 담수호에서 내해로 변했다고 밝혔다.
유명 해저 탐사가이자 고고학자인 로버트 발라드도 성경에 기재된 ‘노아의 방주’와 같은 대홍수는 실제로 발생했다고 했다.
발라드와 그의 연구팀은 1985년 타이타닉호의 침몰 잔해를 발견했으며, 흑해 지역을 탐험할 때 대홍수가 고대 문명을 파괴했다는 증거를 찾아냈다. 중동 지역의 대홍수가 역사 이전에 발생했다는 것은 구약성경에 기술된 바와 같이 대체로 일치했다.
또 터키인과 홍콩인으로 구성된 한 연합 탐험대는 2010년 4월 28일, 노아의 방주 잔해가 터키의 해발 4000m가 넘는 높은 산에서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유학(儒學) 오경(五經)의 하나이며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경전 ‘상서(尙書)’에는 고대 중국의 우(禹)임금의 치수에 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중국 한대(漢代) 초기의 백과사전인 회남자(淮南子)’에도 여와지수(女娲止水)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는데, 그 시기는 ‘성경’의 대홍수 시기와 비슷하다.
고고학자와 인문학자들은 전 세계에서 이미 알려진 사전(史前)시기 대홍수에 대한 기록은 약 600여 건이지만 기원전 13,000~6,000년 사이에는 관련 기록이 약 6,000여 건에 이른다는 것을 발견했다.
또 대홍수 이후 이를 입증할 수 있는 유적도 계속 발견되고 있어, ‘사전(史前)시기 세계적인 대홍수’ 사건을 우연의 일치나 전설이라고 주장하기 어렵게 됐다.
과학자들이 각종 관련 문헌과 고증(考證)을 조사한 데 따르면, 대홍수 이전의 지구 인류사회는 고도로 문명화됐으며, 전체 인구 수는 최고 35억 명에 달했다. 이들은 또한 피라미드와 사하라 사막의 암석 등에는 현재까지 밝혀지지 않은 신비한 과학과 예술적인 작품이 많으며, 사전문명의 훼멸적인 재해는 한 번에 그치지 않았다는 점도 발견했다.
■ 대홍수 발생 원인
현재 과학계에서는 사전시기 대홍수의 원인에 대해 해석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지구의 지진으로 쓰나미가 밀려오고 지각이 함몰해 바다가 침수됐다는 과학적 가정도 왜 대홍수가 산악지대에서 수위가 높아 평지에서 물이 차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
과학자들은 대홍수 관련 기록에는 산과 바위, 암석, 얼음, 모래폭풍 등이 연소하면서 하늘에서 물이 떨어지는 현상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이 재앙이 지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 가능성에도 무게를 두고 있다.
세계 각 민족의 기록에 따르면 사전 문명 중 인류가 타락한 주요 원인은 ▲무신론 확산과 ▲극심한 도덕적 부패 등이다. 그러나 당시에도 선량한 사람들은 재앙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중국에서는 복희 남매의 아버지는 천둥을 맡고 있는 신 뇌공(雷公)과 신령을 거역하다가 천신의 홍수로 대지가 물에 잠겼는데, 뇌공을 도왔던 복희 남매만은 살아 남았다.
페루에서는 비라코차가 잉카의 창조신이자 태양과 폭풍의 신으로 숭배됐다. 그는 사람들의 도덕성을 살피기 위해 남루한 걸인의 모습으로 변장하고 마을의 인심을 알기 위해 돌아다녔다.
이 마을은 결국 폭풍과 대홍수로 전체가 파괴됐는데, 당시 걸인을 냉대하지 않았던 한 소녀만은 살아 남았다고 기록돼 있다. 바빌론의 벨 신은 인간의 타락에 분노해, 미리 한 선량한 노인에게 명하여 배 한척을 골라 생존 물자를 준비하게 한 후 갑자기 7일 동안 큰비가 내리게 했다.
그리스 신화에는 대홍수의 발생 원인에 대해 “청동기시대 말에 이르러 인간 세계는 잔인하고 탐욕스러우며 신성(神性)을 잃게 됐다”고 기재되어 있다.
사람들은 법률을 지키지 않았고 일반적으로 널리 통용되는 진리나 도리도 존중하지 않았다. 제우스는 인간으로 분장한 모습으로 아르카디아와 테살리아의 두 곳을 살펴봤고, 인간의 극악한 모습에 분노해 그들을 지구상에서 훼멸하기로 했다.
제우스는 비를 내리게 하는 남풍을 풀어주고, 냉혹하고 무정한 바다의 신 포세이돈을 불러들였다. 그러자 인류 세계는 역사상 유례없는 홍수에 직면했는데, 그들 중 오직 심성이 바르고 선량한 데우칼리온 부부만이 끔찍한 재앙에서 살아 남을 수 있었다.
인류는 파멸적인 대홍수로부터 지금까지, 이미 5천 년이 지났다. 불행히도, 100여 년 전에 탄생한 공산주의는 인류에게 치명적인 재앙을 가져왔다. 공산주의는 인류에게 무신론과 반신(反神)을 부추기며, 각국에 폭력 혁명과 투쟁 철학을 적극 보급하고 있다.
현재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적지 않은 재난의 근원은 공산주의의 영향과 관련되어 있으며, 인류의 도덕성은 신(神)이 용납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섰다. 인류는 이런 상태로 얼마나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 明慧網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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