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그인
    • 회원가입
    • 사이트맵
    • 06.05(목)
페이스북 바로가기 트위터 바로가기
  • 중국

  • 국제/국내

  • 특집

  • 기획

  • 연재

  • 미디어/방송

  • 션윈예술단

  • 참여마당

  • 전체기사

검색어 입력

[古中文化] 현장(玄奘)의 ‘서역 취경(取經) 행각’은 실화 (상)

편집부  |  2021-04-09
인쇄하기-새창



▲ 현장 법사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SOH] 널리 알려진 '서유기'는 당승 현장(玄奘)과 제자, 네 사람이 불경을 구하기 위해 구구 팔십일 난(難)을 겪으며 서역으로 가서, 마침내 불법 진경을 얻어와 동토(東土)를 널리 복되게 한다는 내용의 전기소설(傳奇小說)이다.


역사적 현실에서 당승 자신과 그가 서천으로 가서 불경을 구해온 과정에는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백룡마를 동반하지 않았지만, 마찬가지로 불후의 전설이었다. 그중의 수많은 고난과 생사 시련, 구사일생의 경험은 더욱 심금을 울린다.


■ 총명하고 점잖으며 풍채가 비범했던 현장


당나라 승려 현장(玄奘, 속명 진의 陳禕 602-644년/664년)은 수나라 말년 낙양에서 30Km 정도 떨어진 진가촌(陳家村, 현재 하남성 언사시 경내)에서 태어났다. 현장의 아버지 진혜는 성품이 담박(淡泊)하여, 관직을 그만두고 은거하면서 전적을 깊이 연구했다. 현장은 진혜의 네 번째 아들로 어릴 때부터 매우 총명하고 용모가 수려하며 풍채가 비범했다.


현장은 어린 시절 성현의 책을 즐겨 읽었다. 고상하고 정통(正派)적인 책이 아니면 보지 않았고, 성현 철인의 가풍이 아니면 배우지 않았다.


그는 어린 시절에도 개구쟁이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았고, 시장에 가본 적이 없었으며, 주변의 잡스러운 이야기에 참여한 적이 없었다. 설령 거리에서 징, 북소리가 요란하고, 골목이 희곡과 가무 소리, 남녀가 모여 이야기를 나누며 웃는 소리로 소란스러워져도, 현장은 호기심으로 구경 가지 않았으니, 온화 단정하고 공손 신중했다.


■ ‘불문의 천리마’로 칭송되다


현장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그가 5살, 10살 때 각각 세상을 떠났다. 이 엄청난 가정 변고는 그가 인생의 무상을 일찍 느끼도록 했다. 현장은 11살 때 둘째 형 장첩(長捷) 법사와 함께 낙양의 정토사에 가서 불법을 배웠다.


그는 침식을 잊고 불교 경전을 열심히 공부해 많은 깨달음을 얻었고 법상(法床)에 올라 설법하기도 했다. 현장은 이때 겨우 13살이었지만 불경을 읽은 것에 대해 매우 투철하게 설명하여 한때 미담으로 전해졌다.


현장은 20세 때 성도(成都)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고 정식 승려의 자격을 취득했다. 이는 그가 이후부터 250조 계율을 준수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장은 24살 때 '삼장'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그것은 경(經) 율(律) 론(論), 삼장(三藏)을 두루 통달한 자에 대한 학위이자, 법사의 최고 등급이다.


당시 현장은 ‘불문(佛門)의 천리마’로 불리며, 그 명성이 장안에 자자했다. 그는 불경을 수련하고 연구하면서, 불교 중 많은 내용에 대한 각 가(家)의  논술이나 설법이 불명확하거나 견해가 일치하지 않고 정확하지 않음을 느꼈다.


그는 남북을 두루 돌아다니며 고승을 찾아 가르침을 청했다. 대부분은 중국을 편력했는데, 의문이 갈수록 깊어졌기 때문에 원시 불경에서는 도대체 어떻게 말하는지를 알고 싶었다. 그래서 현장은 불경을 구하러 서역 행을 결심을 했으니, 대승경전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을 구해와서 의혹을 풀겠다는 뜻을 세운 것이다.


■ 서역에서 불경을 구하려고 국경을 넘다


현장은 서역에 가서 불경을 구해오겠다고 여러 차례 요청했으나, 당(唐) 건립 초기인 당시는 변경이 불안정하여 백성의 출국이 금지되었으므로, 모두 허가받지 못했다.


정관 3년(629년) 북방의 심각한 서리 피해로 장안(長安)에는 식량이 없었으며, 이에 조정은 이재민들을 성 밖으로 내보내 피난하게 했다. 29세의 현장은 이 기회를 틈타 장안을 떠나서 몰래 국경을 지나 서역으로 갔다.


현장은 서안에서 진주, 난주를 거쳐 양주에 도착했는데, 각 지방의 관리들은 그를 저지했지만, 현장의 결심이 매우 굳건한 것에 감동해 결국 편의를 제공했다. 그 후 현장은 무예를 익힌 이민족 석반타를 만나 길을 안내 받았는데, 낮에는 자고 밤에는 걸으며 옥문관을 몰래 통과했다. 그러나 석반타는 관문을 나간 후 길 따라 걸어가는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떠나버렸다.


■ 사막에서 죽을 고비를 넘다


현장은 양관(陽關)을 지나온 후 홀로 팔백 리 사막을 건너야만 이오(伊吾, 현 신강 합밀)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도중에 물을 마시다가 실수로 물주머니를 뒤집어 물을 다 쏟아 버렸다. 사막에서 물이 없으면 틀림없이 죽게 된다.


현장은 어쩔 수 없이 물을 가지러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길에서 문득 기억이 났다. “나는 서역으로 가다가 죽을지언정 살아서 동쪽으로는 한 발자국도 가지 않겠다고 이전에 맹세한 적이 있다.” 이 생각이 떠오르자 그는 즉시 말머리를 돌려 의연히 북서쪽으로 계속 전진했다.


사막에는 날아가는 새도, 내려오는 짐승도 없고, 죽은 사람의 백골만 있으며, 환영(幻像)을 수반하는 뜨거운 모래 폭풍이 자주 나타나 몹시 무섭다.


현장은 말라 빠진 늙은 말을 타고 4박 5일을 걸었다. 사람과 말은 기진맥진했고 입이 마르고 속도 타서 쓰러졌다. 현장은 마지막 남은 숨을 고르며 관음보살에게 가지를 빌었다. “빈승의 이번 서역행은 부와 명예를 위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정법(正法)을 구하기 위한 것입니다! 보살께서 자비로 이 고난에서 구해주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리고 현장은 정신을 잃었다. 밤중에 한 가닥 차가운 바람이 불어서 그를 깨웠다. 체력이 조금은 회복되는 것 같기도 했지만 잠을 더 자고 싶었다. 그런데 꿈에서 몇 장 높이나 되는 금 갑옷을 입은 신인이 홀연히 그의 앞에 나타나 미늘창을 들고 그에게 소리쳤다. “왜 빨리 가지 않습니까? 아직도 자고 있다니요!" 현장은 놀라서 깨어나 겨우 말에 올라 출발했다. 말은 그를 태운지 얼마 되지 않아 갑자기 미친 듯이 달렸는데, 얼마 후 어느 맑은 샘가에 도착해 현장은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 고창국 왕과 의형제를 맺다


현장은 이틀 후 이오(伊吾)에 도착했다. 이를 들은 고창국 왕 국문태(麹文泰, 미상~640년)는 몹시 기뻐하며 그를 궁으로 초대했다. 고창국은 화염산 아래, 지금의 투루판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현장의 서역행 길목에 있지 않았지만, 그는 후의를 거절하기 어려워 6일을 걸어서 고창 경내에 도착했다.


고창국 왕은 귀한 보물을 얻은 듯이 예의를 다하여 현장을 공손히 모시면서, (그가 서행 중 변고를 당할까 봐 염려하여) 고창에 남아 달라고 간청하였지만, 현장은 이를 완곡하게 거절했다. 그러자 고창국 왕은 다시 현장을 본국으로 송환하겠다면서 (그의 고창국 체류를) 압박했다. 이에 현장은 3일간 단식하며 자신의 결심을 굽히지 않았다.


고창국 왕은 현장이 단식으로 숨이 점차 끊어지려고 하자 매우 송구하고 두려웠다. 왕은 결국 현장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왕은 현장이 떠나기 전 부처님 앞에서 그와 의형제를 맺었다. 고창국 왕은 현장이 떠나기 전 그를 청해 법회를 열었다. 왕은 법회에서, 현장이 법상(法床)에 오를 때 친히 몸을 땅에 엎드려 자신을 발판으로 삼도록 했다.


고창국 왕은 현장을 위해 30벌의 법복을 준비했고, 특수한 장갑, 마스크, 신발을 제작해 추위를 대비했으며,  또 황금 백 냥, 은 삼만, 비단 오백 필을 하사하여 현장의 왕복 20년 여비로 충당하게 했다. 또한 현장이 서역으로 가는 길에 지나치게 될 24국의 왕을 위해서도 넉넉한 선물을 준비하여 그들에게 현장을 잘 보살펴 줄 것을 신신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현장이 출발하는 날, 고창국 왕은 고승, 대신과 백성을 거느리고 성 밖까지 그를 배웅했다. 왕은 현장과의 이별을 슬퍼하며 그를 부둥켜안고 통곡했다.


■ 사람과 말의 절반이 능산에 묻히다


이때부터 고창국 왕이 보낸 한 무리 인마(人馬)가 현장을 수행하게 되었다. 그들은 북서쪽으로 300여 리를 걸어가고 돌무지(石磧)를 지나, 일 년 내내 혹독한 추위로 눈과 얼음이 녹지 않는 높디높은 능산(凌山)에 이르렀다.


사람과 말들은 얼어붙은 산길을 조심스레 걸어갔다. 방심하면 한순간에 천 길 심연으로 떨어져 몸이 가루가 되고 뼈가 부서질 수도 있다. 현장이 여행기에서도 말했지만 그는 감히 산 밑을 내려다 보지 못했다. 왜냐하면 아래는 얼어붙어 천 년 동안 녹지 않은 시체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현장 일행이 7일 후 능산을 벗어날 때, 수행원 중 십여 명은 목숨을 잃었고 소와 말도 거의 다 죽었다.


현장은 장안을 떠난지 1년여 만에 드디어 북(北) 천축(인도)에 도착했다.


■ 갠지스강에서 위험에 직면하다


현장 일행이 나룻배를 타고 갠지스강을 따라 나아가는데, 갑자기 양안의 숲속에서 십여 척의 강도선(强盗船)이 살기등등하게 달려들었다. 강도들은 나룻배를 기슭에 정박시킨 후 사람들의 재물을 모두 강탈했다.


한편, 강도들은 현장의 모습이 아름답고 풍채가 당당한 것을 보고 매우 기뻐했다. 그들은 그동안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사교를 믿는 강도들은 매년 가을마다 한 남자를 잡아 인신공양을 해왔는데, 그들은 바로 현장을 제물로 바치려고 생각했다.


강도들은 갠지스강 기슭에 제단을 세웠다. 그러나 현장이 제단에 올라가서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고 매우 침착한 것을 보자 자신들도 모르게 존경하는 마음이 생겼다.


현장이 염력을 집중하여 가부좌하고 입정하자, 왠선(元神)은 바로 몸을 떠났다. 당시 그는 발원했다. "제자가 이번에 구법(求法)이 성공하지 못하면 하늘로 올라가서 불국에 왕생하여 법을 들은 후 다시 세상으로 돌아와 제자를 죽인 이 사람들을 구도할 수 있기 바랍니다."


그의 왠선은 수미산을 너머 한층 한층 하늘 위로 솟아올라 보살과 많은 천신을 만나니 마음에 기쁨이 생겼지만, 지상의 인간 세상은 난리가 났다! 갑자기 검은 회오리 바람이 불어 모래와 돌이 날아오르며 큰 나무가 뿌리째 뽑히고 거친 파도가 강기슭의 많은 배를 뒤집었다.


강도들은 대경실색하여 신불이 진노했다고 생각하고, 급히 머리 조아려 현장에게 사죄했다. 이에 현장이 강도들에게 설법을 하자, 그들은 범행에 사용한 칼, 등(燈), 도구 모두를 갠지스강에 던져 버렸다. 그리고 오계(五戒)를 받은 후 현장에게 무릎을 꿇고 예를 올렸다. 이때 풍랑이 점점 가라앉았고 강도들은 현장에게 다시 무릎을 꿇고 기쁘게 절한 후 작별을 고했다.


■ 나란다 사원 주지는 3년을 기다렸다 


서역행 5만여 리, 천신만고 끝에 현장은 마침내 고대 인도의 불학 중심지에 도착했다. 현장의 이번 행선지, 바로 그 나란다(Nalanda, 那爛陀) 사원 대학이었다.


당시 이미 100세가 지난 나란다 사원 대학의 주지(총장) 계현(戒賢) 대사가 물었다. “당신은 어디서 왔습니까?”


현장이 답하기를 “저는 머나먼 동토 대당(大唐)에서 왔습니다. 대사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을 배운 후, 동토에 돌아가서 불법을 널리 알리려고 합니다.”라고 했다.


계현은 말을 듣고서 눈물을 흘렸다. 원래 3년 전에 계현은 심한 류머티즘을 앓았는데, 매번 발작을 일으키면 마치 칼에 베인 것처럼 아파서 죽고 싶을 지경이었다. 어느 날, 그가 꿈에 본 보살이 이 병은 전생의 업력에 의한 것이라고 하면서, 3년 후에 동토에서 누군가 불법을 배우러 올 것인즉, 그때 『유가사지론』을 전부 전수하여 그 노고로 공이 높아지면 업력을 다 갚을 수 있고 그의 병은 저절로 나을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현장은 자초지종을 알고 희비가 교차했는데, 이 인연이야말로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했다! 이에 현장은 계현을 스승으로 모셔 불법을 배운 지 5년이 지났으며, 동시에 인도어도 함께 배웠다. (계속)



편집부
(ⓒ SOH 희망지성 국제방송 soundofhope.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목록  
글쓰기
번호
제목 이름 날짜
1268 [SOH 산책] 신이 전해준 반신(半神)문화에 관하여
편집부
21-04-21
1267 [SOH 산책] 귀를 씻어 망국음(妄國音)을 듣지 않는다
편집부
21-04-13
1266 [古中文化] 현장(玄奘)의 ‘서역 취경(取經) 행각’....
편집부
21-04-09
1265 [SOH 산책] 집착을 내려놓음
편집부
21-04-06
1264 [古中文化] 달마가 갈대로 강을 건넌 이유
국제뉴스팀
21-04-06
1263 [SOH Info] 비밀 사탄숭배와 공산주의 사상의 내원에 대....
편집부
21-04-04
1262 [古中文化] 손사막의 영단묘약
편집부
21-04-01
1261 [SOH 산책]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편집부
21-03-31
1260 [서프라이즈 포토] 화산 폭발 후 거대 괴물 구름 포착
디지털뉴스팀
21-03-29
1259 [SOH 산책] 항심(恒心)
편집부
21-03-23
글쓰기

특별보도

더보기

핫이슈

더보기

많이 본 기사

더보기

SOH TV

더보기

포토여행

더보기

포토영상

더보기

END CCP

더보기

이슈 TV

더보기

꿀古典

더보기
447,426,326

9평 공산당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