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청현
[SOH] 2003년 대구에서 있었던 일이다. 자전거 가게에 30대 후반의 한 남자가 들어왔다. 그리고는 주인에게 현금 20만원이 든 봉투를 건넸다.
“학창 시절, 이 가게에서 자전거 한 대를 훔친 것이 제 평생 양심의 가책이 되었습니다.” 엉겁결에 돈 봉투를 받은 자전거 가게 주인은 인근 파출소를 찾아가 이런 돈을 받아도 되는지 자문을 구했다.
경찰은 그 노인에게 훔친 사람이 얼마나 양심의 가책을 느꼈으면 그랬겠느냐며 “그냥 받아두시지요!” 하고 노인을 돌려보냈다. 돈을 돌려준 청년이나 그 돈을 그냥 받지 못하는 노인의 이야기는 불법 정치 자금 수십억원을 받아먹고도 없었던 일인양 큰소리치는 일부 정치인들의 경우와 얼마나 대조적인가.
이 미담의 주인공은 자신의 죄에 대해 속죄하려고 했고 노인은 양심에 따라 행동했지만, 그들의 투명한 마음 씀씀이는 각박한 세상에 훈훈한 감동을 안겨줬다.
독일의 철학자 칸트의 아버지는 폴란드인이었다. 그가 고향으로 가기 위해서 말을 타고 산길을 지나갈 때였다. 갑자기 강도들이 나타나서 그의 말과 가진 것을 모두 빼앗았다. 마지막으로 강도는 “숨긴 것은 없느냐?”하고 물었고, 칸트는 말했다.
“없습니다.” 엉겁결에 모든 것을 빼앗기고, 그는 무사히 강도들 틈을 빠져나왔다. 한 숨을 돌리고 주머니를 살피던 칸트는 바지춤에 몰래 감추어둔 금덩어리가 있음을 뒤늦게 발견했다. 그는 고민 끝에 강도들에게 다시 찾아갔다.
“죄송합니다. 조금 전에 너무나 무섭고 정신이 없어서 숨긴 것이 없느냐고 물을 때 없다고 대답했는데 조금 가다가 이 금덩이를 숨긴 것을 발견했습니다. 받으십시오.” 말이 끝나자 강도는 빼앗은 물건과 말을 내주면서 그에게 엎드려 애원하며 용서를 빌었다. “잘못했습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주십시오. 당신이 두렵습니다.”
차동엽 신부의 ‘바보 Zone’이라는 책의 한 구절이다. 강도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바로 진실이었다. 진실 앞에서 강도의 양심이 살아났고, 결국 도덕적 잣대로 자신의 행동을 가늠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세상이 각박하고 옳지 않은 방법으로 성공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바로 진실하고 선한 것이다. 세상에 온기를 불어넣는 바보(等神)같은 이들 덕분에 이 시대가 조금은 덜 삭막하고 조금은 더 아름다운 것이 아니겠는가.
바보는 투명하다. 속내를 감출 줄 모른다. 실속 없는 허점인 것 같지만, 사실은 양심적 삶을 위한 절실한 미덕이다. 이 생각의 투명성 앞에 사람들은 경계심을 허문다. 그 순진무구함에 상대방은 공감하고 전율하고 감화된다.
불의(不義)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도 진실 앞에서는 누구나 떤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마음 한구석에 신성(神性)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양심이 투명하게 드러나는 사회가 진정한 복지사회(福至社會)가 아닌가. 복지사회 구현을 위해서는 잇(利)속이라는 고질적 울타리를 벗어나려는 양심의 해방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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