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어떠한 관심과 사랑도 받지 못하는 사람이 애써 살아가는 것은 마치 물이 없고 생존 가능성도 없는 곳에서 사는 물고기와 같다. 우리는 인간으로서 우리 존재에 대하여 적어도 누군가의 관심을 받아야 비로소 살아갈 수 있는데, 이것은 생존을 위한 가장 기본적 조건이다.
이런 관심이 필요한 것은 우리의 실력이 탁월한지, 재능이 출중한지, 지능이 뛰어난지, 외모가 눈부신지 와는 무관하다. 누구나 이해득실에 신경 쓰지 않고 가족처럼 무조건적 보살핌과 지지를 줄 수 있는 관계가 필요하다. 물론 이 요건을 충족하는 것이 반드시 가족만은 아니다.
누군가가 개인 정서, 개인 의견, 개인 생각과 같은 자신의 ‘자아’를 표현하고 있을 때, 그가 항상 갑자기 이유 없이 잘려 버리거나 공기처럼 취급된다면, 그의 생명은 틀림없이 전력이 3%밖에 남지 않아서, 곧 전원이 꺼지게 되는 휴대폰과 같은 것이다.
이처럼 수명이 곧 다 된다는 관점에서 인간의 생명과 배터리가 공통점은 있기는 하다. 하지만 휴대폰과 같은 전자 제품은 비록 전력이 고갈되더라도 평온하게 동작을 멈추지만, 인간은 이와 다르다.
자신의 ‘자아’가 곧 소실될까 봐 두려워하는 사람은 인생이 끝나는 것을 막기 위해 반드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쓴다. 이는 생명의 마지막 본능이기 때문에 자기 존재를 증명하거나 생명에 승부를 거는 것이 필사적일 것이다.
어떤 사람은 마지막 남은 전력이 3%밖에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전력의 30%가 필요한 행동에 필사적으로 도전하여, 남은 전기가 즉시 고갈되고 목숨이 잿더미가 되어버리는데, 애석하다.
■ 에너지가 곧 고갈되는 사람은 ‘자아’를 더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어떤 사람은 심리적인 곤경에 처했을 때, 여전히 전력투구를 선택하여 혼신의 힘을 다해 생명을 불태우지만, 어느 순간 자신을 끝내버리는 이야기를 우리는 이따금 듣게 된다. 그런 소식에 직면한 사람들은 항상 믿기 어려워하고 심지어 혼란과 충격에 빠지게 된다.
"그는 원래 생명과 투지로 가득 찬 남자였어...", "그는 이전에 새로운 계획에 대해 충분히 잘 준비했었지......" 그들의 행위 뒤에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자아’가 위축되고 모호해질수록 사람들은 항상 더 크고, 더 좋고, 더 강한 ‘자아’를 구축하며, 이를 위해 설사 목숨을 걸더라도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고 모든 것을 바치려 할 것이다.
식수가 없는 사람은 오수(污水)라도 마셔야 하는데, 설사할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그것은 차후의 일이다. 오수라도 마시지 않으면 설사마저 못 견딜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아’가 점차 모호해져서 소실되고 있음을 알게 되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감히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도전하거나 심지어 폭력적으로 행동할 수도 있다.
사회의 소외계층에게 속사포처럼 폭언, 폭행하고 마침내 경찰에 체포되는 갱스터들을 보면 그들은 모두 사회에서 고립되고 열등감으로 억울하게 살아간다. 이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하는 취약한 개체이다.
그들의 탈선행위는 경찰과 피해자를 지치게 만든다. 그러나 그들의 세계에서는 그들이 더 치명적 폭언이나 악행을 저지를수록 더 많은 인정과 환호를 받을 것이라고 여긴다. 따라서 그들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자신의 세계에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각오가 되어 있다. 이 집단은 오수를 집단으로 마시고 있으며, 겨우 남은 3%의 존재감으로 남은 목숨을 겨우 부지하며 자신을 이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행위가 다른 사람에게 지울 수 없는 고통을 주고 다른 사람의 목숨을 앗아 갈 수 있는 범죄가 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몇 년 전 독일 저먼윙스항공사(Germanwings Airlines)의 부기장 루비츠(Lubitz)는 비행 중 기장이 화장실에 간 사이를 틈타 조종실 문을 잠그고 고의로 비행기를 추락시켰다. 이 비극적인 사고로 총 150명(144명의 탑승객과 루비츠를 포함한 6명의 승무원 전원)이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고 후 수사 과정에서 루비츠가 사건을 주도한 것으로 밝혀지자 모두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왜 그런 짓을 했을까?
분석 결과는 예상대로 우울증이 주요 원인이었다. 확실히 루비츠는 이전에 우울증 치료를 받았지만 우울증은 사람으로 하여금 고의로 150명을 죽이게 하는 질병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계에서는 여전히 일상생활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사람이나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을 우울증으로 진단하고, 마찬가지로 1명 또는 150명을 죽인 사람을 경솔하게 우울증으로 진단하기도 한다.
독일 항공사는 과거 조종사 선발 시에 실시했던 심사를 (면책의 근거로) 주장했지만, 사생활 침해 우려(疑慮)로 보다 심도 있는 정신과 기록 조사는 하지 않았으며, 이런 주장은 루비츠 사건 이후 점차 설득력을 잃었다. 그러나 이 비극의 주요 원인을 우울증이나 정신질환으로 귀결하기 전에 명확히 해야 할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여러분은 혹시 의아하게 여길 수도 있지만 이것은 실제로 매우 기본적인 질문이다. 루비츠의 질병이 우울증인가? 루비츠와 같은 심리 상태를 요약할 수 있는 정신과적 진단명이 실제로 있는가?
사실, 현재 의료계에서는 종종 환자를 성급하게 우울증으로 판단한다. 일반적 정신신경증 중 하나인 우울증(우울 정서 장애)은 다음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2년 이상을 온종일 우울하고 게다가 다음의 6가지 포인트 중 2가지 이상을 충족해야 우울증이다.
1. 불면 또는 졸음
2. 식욕 부진 또는 비정상적 식욕 증가
3. 체력 부족 또는 피로
4. 자신감 부족
5. 주의력 결핍 혹은 자주 머뭇거림
6. 절망감
이는 『미국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 설명서, 제5판, DSM-5』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Fifth edition, DSM-5 )의 기준이다. 전 세계 거의 모든 정신과 의사와 연구자들이 이 진단 기준을 표준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한국의 의사들도 이 기준에 따라 진단하고 진단서를 발급한다.
그러나 우울증 진단을 받은 사람은 많은 경우 외부 증상 외에 특별한 감정이나 정서적 교차증상이 없다. 이것은 당연한 것이다. 진단 기준 자체는 외부 증상의 유사성을 기반으로 제정되며, 질병을 조성할 수 있는 심리적 요인, 성격 특성, 공포 등과 관련이 없다. 불행히도 현시점에서는 우울증을 재확인할 수 있는 뇌 생리학, 생물학 및 영상 진단학 등 검사방법은 없다.
위암을 예로 들면, 최종 진단은 반드시 조직 검사를 통해 암세포가 발견된 후에만 가능하다. 소화불량, 체중 감소와 같은 표면 증상만으로 위암 환자라고 진단하고 항암제를 투여할 수 없다. 유사한 증상이 위암에 걸린 사람에게도 나타날 수 있고, 다른 위장병에서도 나타날 수 있으며, 심지어 정신질환도 유사한 증상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지 증상만으로 위암 판정을 한다면, 위궤양 환자가 항 위암제를 복용하도록 강요받을 수 있다. 이 경우 환자는 놀라고 당황할 것이다.
이것이 진단 과정이라면 어떨까? 예를 들어 간에서 종양을 발견할 경우 의사는 먼저 종양의 성질을 확인한다. 암이라면 악성 종양인가, 양성 종양인가? 암이 아니라면 혈관종이나 간흡충 등의 기생충에 의한 종양인가 등이다. 종양의 종류에 따라 치료 방법이 다르고 향후 돌보는 방법도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반드시 종양을 잘 검사해야 한다.
그러나 현대의 정신의학은 단지 외부 증상만으로 진단을 내리고 다른 요인이 진단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진단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단지 외부 증상이 같으면 같은 질병으로 간주한다. 실업자의 우울증도 우울증이고, 실연한 사람이나 자녀를 잃은 부모의 우울증도 우울증이며, 위의 진단 항목이 충족되는 한 150명을 죽인 사람도 그저 똑같이 ‘우울증’일 뿐이다.
우울증인지 여부를 판단할 때, 의사는 원인을 묻거나 원인을 조사하지 않고 외부 증상만을 주된 근거로 하기도 하고, 확진 후에 갑자기 우울증이 생물학적 이상으로 야기된 것이라고 언명하기도 하면서, 전체 치료를 완전히 약물치료에 맡긴다. 물론 어떤 사람은 약물의 도움으로 증상이 뚜렷하게 개선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약물이 전 우울증 치료과정을 책임진다는 규칙은 없다.
현대의 정신의학은 거의 건강 체크리스트 의학으로 전락했는데, 모순이 많고 비극적이기도 하다. 과거에 사람들이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라고 부르던 때가 있었는데, 누구라도 간단한 치료를 받기만 하면 되었다. 요즘은 우울증을 ‘마음의 암’이라고 한다. 감기와 암을 어떻게 같은 질병으로 간주할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우울증 치료는 마땅히 감기 치료 방식을 따라야 하는가, 아니면 암치료 방식을 따라야 할까?
■ 자존감을 극대화하는 가장 좋은 방법
저먼윙스 여객기 추락 사고의 원인을 조사한 관련 전문가들은 루비츠의 우울증 치료 사례가 공개된 후 한숨을 돌리게 되었고, 마침내 루비츠가 한 잔혹한 행동의 원인을 찾은 것 같다. 사회 전체가 벌집을 쑤신 것 같이 조종사 모집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예를 들면, 어떤 정신질환과 치료 경력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가 마치 사고 재발을 막는 관건인 듯하다. 필자는 사건과 관련된 독일과 미국의 심리학 논문과 독일 사건에 대한 심층 보고서를 읽은 후 마음속으로 약간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보기에 루비츠는 전력(電力)이 3%에 불과한 자아와 마주치자 자아 소실을 두려워하기 시작했지만, 오히려 150%까지 충전된 비현실적인 자아 환상이 나타나서 능력을 크게 한번 과시하려고 준비했다. 사건이 발생하기 불과 몇 주 전에 루비츠는 자신과 여자 친구를 위해 두 대의 새 차를 구입했다. 이 역시 3%만 남은 전력으로 더 많은 전력을 필요하는 행동에 도전한 것이다.
주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루비츠는 좋은 사람이다. 한 동료는 그가 ‘죽고 싶다’라고 쉽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고, 그가 어렸을 때부터 자라나는 것을 지켜본 이웃들도 이구동성으로 그가 보는 사람마다 좋아하던 귀여운 아이였다고 회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비츠는 사고 얼마 전 그의 여자 친구에게 “언젠가는 내가 이 모든 시스템을 바꿀 것이고 전 세계가 이로 인해 내 이름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진짜 동기가 무엇이든 이 사고는 아마 점차 숨이 가빠진 루비츠가 전 세계를 향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시도한 마지막 반격일 수 있다. 결과를 보면 그는 확실히 자신의 이름을 오수(汚水)와 같은 악명으로 영원히 이 세상에 남겨두고 갔다.
사고 이후 밝혀진 소식에 따르면 당시 루비츠는 점차 시력이 나빠져 거의 시력을 잃은 상태였고, 이로 인해 조종사 일을 포기하게 될까 봐 두려움 속에 살면서 심하게 고통받았다. 물론 루비츠가 경험한 자아 소실의 위협은 거기서 멈추는 것이 아닐 수가 있다.
루비츠는 이미 살아 있지 않으며 그의 사생활에서 가장 은밀한 내면의 모습은 더 이상 알려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처참하고 용납할 수 없는 사고에 대해 의학계에서는 단순히 우울증에 기인한 것으로 생각했는데, 필자는 이 점에 대해 개인적으로 매우 회의적이다.
자아 존재가 곧 소실될 무렵 자아 존재를 증명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곧 폭력이다. 폭력은 자아 존재를 극대화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일단 모든 사람의 눈에 폭력분자로 보이게 되면 이런 사람은 타인의 극한적인 두려움 속에서 빠르게 팽창하는 자신의 존재감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아소실’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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