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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차이나] 중국인들의 돼지고기 사랑...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디지털뉴스팀  |  2020-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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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파육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SOH] 현재 중국에 남아있는 명나라의 발자취를 찾으려면 자금성과 만리장성에서 볼 수 있다.


자금성은 명나라 제3대 황제인 영락제 때 건설해 청나라 마지막 황제 때까지 황궁으로 쓰였다.


만리장성은 진시황 이전부터 쌓기 시작했지만, 현재의 모습으로 완성된 것은 명나라 때다.


음식문화로 이어진 명나라의 족적도 있다. 바로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돼지고기다.


억만장자이든 하루하루 근근이 끼니를 때우는 도시의 빈민층이든 또는 중국 공산당 최고 권력자든지 중국인이라면 회교도를 제외하고는 모두 돼지고기를 즐겨 먹는다.


과거 돼지고기를 잘 먹지 않았던 중국인들이 돼지고기를 사랑하게 된 것은 명나라 때부터다.


■ 황제의 수라상에 오른 돼지고기


명 태조 홍무제 주원장이 원나라를 몰아내고 새롭게 나라를 세운 해가 1368년이다.


황제의 자리에 오른 지 17년이 되던 1384년 6월 어느 날 황제의 아침 수라상에 모두 12가지 요리가 차려졌다.


메뉴는 양고기 볶음과 돼지고기 채소볶음, 거위 부추 지짐, 생선지짐, 고기 화덕구이, 닭고기 탕, 국수, 콩국 등이다.


황제를 비롯해 궁중에서 먹는 음식을 관리하는 관청 광록시에서 남긴 『남경광록시지』 에 이날 수라상 요리가 자세히 적혀 있다.


얼핏 보기에 아침부터 고기요리가 많다는 점 외에는 황제의 수라상치고 그다지 화려하지도 않아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내막을 알고 보면 중국 음식 문화사에서 획기적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는 변화가 있다.


바로 중국 최초의 통일 왕조인 진나라 이래로 16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처음으로 황제의 수라상에 돼지고기가 올랐기 때문이다.


■ 서민들도 거들떠보지 않던 돼지고기


명나라 이전까지 중국에서 돼지고기는 황제가 먹어도 좋을 만한 고기가 아니었다. 황제는 고사하고 제후나 장수, 재상 등 고관대작인 왕후장상은 물론 웬만한 부자들은 거들떠보지 않았던 음식이다.


그렇기에 돼지고기를 좋아해 삼겹살찜인 동파육의 전설을 남긴 송나라 문인 소동파도 ‘돼지고기 예찬’이라는 시에서 진흙만큼 값이 싼 돼지고기, 부자는 먹지 않고 가난한 사람은 먹을 줄 모른다고 읊었다.


소동파가 살았던 11~12세기의 송나라, 그리고 13~14세기 중반까지의 원나라에서 귀족과 부자들은 양고기를 먹었고, 그게 아니라면 닭과 오리, 거위와 같은 가금류와 생선을 먹었다.


반면 돼지고기는 가난한 서민과 농민이 먹는 음식이었다. 이런 돼지고기가 명나라 건국 이후 처음으로 황제의 식탁에 오른 것인데, 그 배경은 주원장의 출신 성분과 관련이 있다.


농민 반란군을 이끌다 마침내 황제 자리까지 오르게 된 주원장은 지금의 안후이성 평양 출신으로, 가난한 소작농의 막내아들이었다.


그가 16세가 되던 해 고향 마을에 큰 가뭄이 들었고, 메뚜기 떼의 피해에다 전염병까지 돌면서 부모와 형이 굶주림에 시달리다 전염병으로 목숨을 잃었다.


졸지에 고아가 된 주원장은 하루 한 끼도 먹기 힘들게 되자 밥이라도 얻어먹을 생각으로 황각사라는 절에 들어가 승려가 됐다.


하지만 흉년이 심해 절에서도 끼니를 이을 수 없게 되자 이곳저곳 떠돌며 구걸하는 탁발승 노릇을 했다.


출신 배경이 이러했기에 황제가 되기 전까지 주원장은 당시 중산층 이상에서 먹던 양고기를 감히 먹어보지 못했다.


황제가 된 지 17년이 지난 후에도 아침 수라상에 여전히 돼지고기가 올라왔다는 것은 주원장이 몸은 황제가 됐지만, 식성은 여전히 가난했던 젊은 시절의 입맛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이유로 태초 주원장 이후 돼지고기는 양고기와 함께 황제의 식탁에서 한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황제가 돼지고기를 좋아하다 보니 고관대작과 부자들도 더이상 돼지고기를 꺼리지 않게 됐다.


이렇듯 돼지고기의 위상이 사민의 고기에서 황제의 고기로 높아지자, 명나라 중기부터는 농민과 평민, 귀족과 부자 가릴 것 없이 돼지고기를 먹었고 너도나도 키웠다.


명 태조 주원장 이후 명나라 황제들이 돼지고기를 즐김에 따라 상류층에서 돼지고기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졌다면, 중국인들에게 돼지고기가 맛있는 고기, 고기 중 최고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청나라 황제들이다.


만주 숲속에 살던 여진족의 후예인 만주족이 만리장성을 넘어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청나라를 세운 후 돼지고기에 날개가 돋았다.


만주족은 전통적으로 돼지고기를 가장 좋아했기 때문이다.


만주 벌판의 숲속이 생활 터전이었던 만주족에게 돼지고기는 역사적·문화적으로 빼놓을 수 없는 필수품이었다.


『후한서』 「동이열전」에 나오는 만주족의 조상인 읍루에 관한 내용에 따르면, 읍루족은 돼지를 잘 기르고 그 고기를 먹으며, 그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고, 겨울에는 매서운 바람과 추위를 막기 위해 돼지기름을 온몸에 두텁게 발랐다.


이들에게 돼지는 없어서는 안 될 생필품이자 생명줄이었다.


그들은 하늘과 조상께 제사를 올릴 때 돼지를 제물로 바쳤고, 청나라 황제는 신하들과 돼지고기를 나누어 먹으며 결속을 다졌다.


이리하여 청나라의 육식 문화는 돼지고기가 강세한 반면 양고기는 약세 추세가 두드러졌다.


청나라 때 춘절 무렵 베이징에서 도축하는 돼지고기는 10만 마리에 이르렀다. 건륭제 때인 1784년 섣달그믐날 식탁을 차릴 때는 돼지고기 65근, 멧돼지 고기 25근을 요리한 반면 양고기는 20근에 불과했으니, 돼지고기와 양고기의 전세가 완전히 역전됐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중국은 전 세계 돼지고기의 절반 이상을 먹어치우는 나라가 됐다.


이렇듯 돼지고기가 중국인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게 된 것은 명나라 황제 주원장의 출신과 만주 출신의 지배자였던 청나라 황제의 출신 배경에서 비롯됐다.



디지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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