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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그렇구나] 한국에서는 ‘貴下’, 중국에서는 ‘足下’... 왜?

편집부  |  2020-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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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SOH] 한국은 문서에서 상대방에 대한 존칭을 귀하(貴下)로 표현한다. 중국에서는 어떨까?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존칭하거나 혹은 동년배 사이에 존칭할 때 많이 사용되는 칭호가 중국에서는 족하(足下)다. 직역하면 ‘발 아래’라는 이 단어가 어떻게 존칭으로 변했을까?


중국에서 이 단어가 널리 쓰인 것은 춘추전국시대 이후의 일이다. 가령 악의(樂毅)가 연왕(燕王)에게 보낸 편지에 “선왕(先王)의 밝으심을 해치고 족하(足下)의 의리를 해칠까 두려운 까닭에 조(趙)나라로 도피했습니다.”라는 글이 있다.


또 ‘사기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에는 “염악(閻樂)이 2세(진시황의 아들 호해)에게 나아가 ‘족하께서는 교만하고 방자해 함부로 살인을 하니 천하 사람들이 모두 족하를 배반할 것입니다. 이에 대해 스스로 헤아려보시기 바랍니다’라고 비판했다.”는 내용이 있다.


이것은 모두 신하가 군왕에 대한 존칭으로 ‘족하’를 사용한 예이다.


이 단어는 전국시대 이후 점차 넓은 의미로 사용되면서, 단지 신하가 군주를 존칭하는 것뿐만 아니라 동년배나 비슷한 지위의 사람 간에도 통용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당나라 때 피일휴(皮日休)가 쓴 ‘이원정군서(移元征君書)’에는 “만약 그대의 도를 행한다면 남산의 대나무를 다 쓴다 해도 족하(足下)의 공을 다 기록할 수 없고 계곡물을 다 쓴다 해도 족하의 선(善)을 따르지 못할 겁니다.”라고 했다.


이는 뛰어난 능력을 지녔음에도 산림에 은거한 친구를 불러내기 위해 피일휴가 한 말이다. 이외에 ‘삼국연의(三國演義)’ 제45회에도 “내 족하와 헤어진 지 오래되었으니 특별히 와서 옛날의 회포를 풀고자 합니다.”라는 구절이 있다.


이처럼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존칭하거나 혹은 동년배 사이에 서로 칭할 때 사용된 ‘족하’에는 ‘존경’의 의미가 담겨 있다. 그렇다면 이 단어가 왜 상대방을 존칭하는 뜻으로 사용하게 됐을까? 유경숙(劉敬叔)이 저술한 ‘이원(異苑)’에 이에 관한 기록이 있다.


춘추시대 중원의 강대국이었던 진(晉)나라 헌공(獻公)이 늦은 나이에 여희(驪姬)라는 여인을 맞아 총애했다. 급기야 후계구도를 둘러싸고 갈등이 발생해 특별한 잘못도 없던 태자 신(申)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자살해야 했다.


그 외 이미 장성해 있던 두 아들 중이(重耳)와 이오(夷吾)도 외국으로 망명해야 했다. 특히 중이는 북방 유목부락에서 12년을 살다 나중에 다시 중원으로 돌아오는 등 여러 나라를 전전하며 고생을 겪었다. 당시 그를 따르던 일행들은 장기간 추위와 배고픔, 냉대에 시달려야 했다. 한번은 위(衛)나라를 지나다 위문공(衛文公)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그는 만나주지도 않았다.


이때 중이는 장기간 피로와 영양부족, 추위에 지쳐 고열과 병에 시달렸다. 중이는 의식이 혼미한 중에도 “고깃국을 먹고 싶다”고 계속 중얼거렸다. 하지만 수행원들은 모두 돈이 떨어져 고기를 사올 형편이 못됐다. 이때 충성심이 강했던 개자추(介子推)가 자기 대퇴부의 살을 잘라 국을 끓인 후 주군에게 바쳤다.


신기하게도 중이는 이것을 먹고 병이 나았다. 중이 일행은 역경을 딛고 다시 동쪽의 강국이던 제(齊)나라로 향했다. 제환공의 지지를 받은 중이 일행은 마침내 19년 만에 진나라로 돌아와 정권을 잡았다. 그가 바로 춘추오패의 인물 중 하나인 진문공(晉文公)이다.


진문공이 정권을 잡은 후 진나라에서는 논공행상이 벌어졌다. 여러 사람들이 다투어 자신의 공을 자랑했지만 개자추는 이런 것들을 아주 싫어했다. 급기야 세태에 실망한 나머지 어머니를 모시고 산속에 들어가 은거해버렸다. 나중에 어떤 사람이 이를 풍자해 진문공을 비판하자 문공은 옛날 개자추에게 받았던 도움을 떠올렸다. 이에 급히 사람을 파견해 그를 찾아 등용하려 했으나 개자추는 이미 명리에 흥취를 잃었다.


산속에 은거한 개자추를 찾고자 해도 찾지 못하자 진문공은 안달이 났다. 이때 어떤 사람이 산에 불을 지르면 개자추가 어쩔 수 없이 스스로 걸어 나올 것이라는 계책을 냈다. 그러나 여러 사람들의 의도와 달리 개자추는 모친과 함께 산속에서 나오지 않았고 한 그루 나무를 끌어안은 채 불타 죽었다.


진문공은 이 소식을 듣자 몹시 후회했고, 개자추 모자를 후하게 장사 지낸 후 그가 죽을 때 함께 했던 나무를 베어 신발을 만들었다. 이 신발을 신을 때마다 지난 일을 떠올리며 “슬프도다, 족하(足下)여!”라고 탄식했다.


이 같은 전고로 족하(足下)라는 단어는 어떤 물건을 볼 때마다 그 사람을 떠올리며 옛 은혜를 그리워한다는 뜻으로 사용됐다. 나아가 벗에 대한 존칭의 의미가 파생돼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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