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 청현
[SOH] 서양의학에서 의성으로 통하는 히포크라테스(기원전 460~375)는 “가장 위험한 인간의 병은 분노(憤怒·魔性·火)”라고 말했다. 사실 분노만큼 정확한 판단을 흐리게 하는 감정은 없다.
몽테뉴(프랑스의 사상가·1533~1592)는 ‘수상록’에서 “만약 분노에 사로잡혀 죄인을 처형하는 재판관이 있다면 그 재판관을 사형에 처해도 어느 누구도 이의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어버이와 교사는 어린이들에게 화를 내고 또 매질까지 하는 경우도 있는데, 몽테뉴는 이에 대해서도 이미 광정(匡定·도와서 정함)이 아니라 복수라고 밝혔다.
사실 분노란 자기만을 위하는 강한 자존심에서 나온 감정이다. 우리들은 그릇된 원인으로 마음이 어지러울 때, 정당한 변명이나 이유뿐만 아니라 진리와 무고(無故)함에 대해서까지도 화를 내는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해 고대 로마의 일화(逸話)가 전해오고 있다.
피소라는 장군은 다른 모든 점에선 뛰어난 미덕을 갖춘 인물이었지만 분노를 잘 다스리지 못하는 흠이 있었다. 어느 날 두 병사가 양식을 징발하러 갔다가, 한 병사는 돌아왔으나 나머지 한 병사는 돌아오지 않았다. 돌아온 병사는 동행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설명하지 못했다. 피소는 화를 내면서 분명 이놈이 죽여 버린 것임에 틀림없다고 판단해 곧 그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그가 막 교수대로 올라가려는 찰나 길을 잃었던 병사가 가까스로 돌아왔다. 모든 병사들이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으며, 두 병사의 감격에 찬 포옹이 끝난 후 사형 집행인은 둘을 피소앞으로 데리고 갔다. 물론 주위 사람들은 피소가 매우 기뻐하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결과는 반대였다. 왜냐하면 아직 피소의 내심에서 불타고 있던 분노에다 수치심과 억울함까지 배가(倍加)되었기 때문이다. 피소는 분노에 사로잡힌 나머지 심술을 부리듯 사형 집행인과 동행한 병사를 포함해 세 사람 모두에게 사형을 내렸다.
첫 번째 병사는 사형 선고를 이미 받았으므로, 길을 잃었던 병사는 동행자인 병사의 죽음의 원인 제공자가 되었으므로, 사형 집행인은 주어진 명령에 복종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와 같이 화는 상식과 이성을 마비시켜 존엄한 인명을 파리 목숨처럼 여기는 엄청난 과오도 서슴없이 저지르게 한다. 이는 무지막지(無知莫知)한 변태적 만용의 주범인 것이다.
“분노란 새로운 사용법을 필요로 하는 무기이다. 왜냐하면 다른 무기는 우리들이 움직이지만 이 무기는 우리들을 움직이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손이 그것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우리들의 손을 이끌기 때문이다. 그것이 우리들을 포착하는 것이지, 우리들이 그것을 포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네로의 스승이 되었지만 후에 반역의 혐의를 받고 자결한 ‘분노의 희생자’인 세네카의 말(遺言)이다.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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