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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차이나] 中 굴기의 일등공신 만찬 외교 ①

디지털뉴스팀  |  2020-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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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SOH] 중국이 미국과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비밀 협상을 통해 화해와 수교로 이어진 데도 전환점이 된 식사 자리가 있었다.


美中 수교를 이끈 ‘베이징 오리구이’


미국과 중국은 1972년 미중 정상회담을 거쳐 1979년에 국교를 수립했다. 적대적 관계를 청산하고 화해 모드로 돌아서는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은 많이 알려져 있듯이, 탁구로 시작된 핑퐁 외교다.


대화의 물꼬를 튼 것이 미국 국가대표 탁구단의 상하이 방문이었다면, 대화 도중 갈등과 긴장의 매듭을 풀고 결국 협상 타결을 이끌어낸 것은 베이징 오리구이를 선보였던 식사 자리다. 때문에 미중 화해를 핑퐁 외교, 베이징 오리 외교, 마오타이 외교의 결과라고도 말한다.


1971년 7월 9일, 미국의 대표적인 대중 외교통인 헨리 키신저 박사가 닉슨 미국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비밀리에 베이징 공항에 도착했다. 중국과의 화해 가능성을 타진해보라는 대통령의 밀명을 받은 극비 방문이었다.


키신자는 이틀에 걸쳐 당시 중국 총리였던 저우언라이와 회담을 가졌다. 두 사람의 대화는 팽팽한 긴장과 줄다리기의 연속이었다. 핵심 쟁점이 대략 조율될 무렵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닉슨대통령의 방중 형식이었다. 처음 중국 측 성명 초안을 본 키신저 특사는 기겁을 했는데, 이는 닉슨대통령의 방중 요청을 중국이 수락한다는 내용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미국과 중국 양측은 심각하게 대립했고 협상은 깨지기 일보 직전 상황까지 갔다. 이때 돌파구를 연 사람이 저우언라이 총리였다. 점심 때가 됐으니 밥을 먹자고 한 것이다.


오찬에는 12가지 음식이 나왔는데 메인이 베이징 오리구이였다. 식사 자리 분위기는 매우 부드러웠다고 전해진다. 어떤 대화를 나누었기에 방금 전까지 서로 으르렁거리던 분위기가 갑자기 바뀌었을까 싶은데, 바로 식사로 나온 베이징 오리구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핑퐁 외교에 이어 베이징 오리 외교라는 말까지 만들어낸 베이징 오리구이는 도대체 어떤 음식일까?


중국 속설에 만리장성에 오르지 못하면 대장부가 아니고, 베이징 오리구이를 먹지 못하면 평생 한으로 남는다는 말이 있다. 앞에는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하는 사람은 영웅호걸이 아니라는 마오쩌둥의 시 구절을 살짝 변형시킨 것이고, 뒤에는 베이징 오리구이에 대한 중ㄲ인의 각별한 마음이 담겨 있다.


베이징 오리구이는 청나라 황제들의 궁중 요리로, 민간인은 쉽게 먹을 수 없었다. 게다가 먹는 방법이 독특하다. 오리구이는 어느 나라에나 있는 음식이지만 베이징 오리구이는 그 맛의 중심이 잘 구운 오리껍질에 있다.


살짝 기름지면서 바삭하게 구워진 오리껍질을 그대로 먹거나 밀전병에 양념장과 생파, 오이와 함께 싸서 먹는다.


베이징 오리구이를 무척 좋아했던 서태후는 바삭바삭한 껍질만 먹고 고기는 아랫사람들에게 남겨주었다. 때문에 지금도 베이징의 오리구이 전문점에서는 특별히 따로 주문하지 않는 한 오리 살코기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키신저와 저우언라이가 식사자리에서 나누었던 대화는 주로 이런 내용이었다. 저우언라이가 식사 자리를 주도하면서 직접 키신저에 밀전병에 오리구이를 싸주며 베이징 오리구이 먹는 법과 그 유래 등을 설명했다고 한다. 대화 중에 얼굴을 붉힐 만한 내용은 하나도 없었으니 분위기가 풀리는 것은 당연했다.


협상에서 원하는 것을 얻고 싶으면 먼저 상대방의 감정을 얻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상대방과 감정적으로 교차하면 쉽게 동의를 얻어낼 수 있다는 것인데, 저우언라이가 오찬에서 키신저에게 대접한 것은 음식이 아니라 중국 문화를 통한 교감이었다.


오찬을 마친 후 오후의 협상 분위기는 확연히 달라졌다. 긴장이 풀리면서 대립적인 감정도 수그러들었고 서로 조금씩 양보하여 마침내 협상이 타결됐다. 이에 미국과 중국이 모두 주체가 되는 역사적인 담화문이 발표됐다.


그리고 1972년 2월 21일, 닉슨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해 정상회담을 갖는다. 이어 1979년 1월 1일 약국은 외교관계를 수립한다. 또한 수교 과정에서 베이징 오리구이를 선보인 사실이 알려지면서 베이징 오리구이는 세계적인 음식으로 유명세를 떨치게 됐다.



디지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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