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지난 18일 오전, 새로운 직위에 오른 관료 55명이 리커창 총리의 입회 하의 헌법에 대해 직무 수행 선서를 했다. 선서에 참여한 55명의 관료는 모두 국무원 부속 및 직속 기관 책임자들이다.
선서식의 법적 근거는 베이징 당국이 지난해 7월 가결한 ‘헌법 선서제도의 시행에 관한 결정(이하 결정)’과 올해 7월 20일 리커창 총리가 주최한 국무원 상무회의에서 통과된 ‘국무원 및 각 부문 임명 공무원 등의 헌법 선서 조직 방법(이하 방법)’이다. 리 총리가 ‘결정’과 ‘방법’에 근거해 선서를 감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선서는 공산당 통치하의 중국에서 수없이 행해져 온 의식이지만, 이번의 선서는 예전과는 좀 다르다. 중국에서는 지금까지 공산당에 대해서만 선서가 행해졌고, 그 내용도 ‘공산당을 위해서 평생 분투한다’는 것이었다. 즉, 지금까지 선서의 대상은 중국 공산당이라는 정당이며, 국가와 국민은 일당 독재 하에서 무시되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헌법에 대해 선서를 함으로써 공무원은 국가와 국민에 대해 책임을 가져야 하는 것임을 나타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원래 공무원이나 관료가 당에 충성할 것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것이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수십 년 전부터 이러한 체제가 이어져 왔고, 이번에 드디어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선서문에서 ‘당(중국 공산당)에 충성한다’는 말이 사라진 것은 중국 정부 내에서 공산당의 가치와 영향력이 줄어든 것으로 볼 수 있다. 전술한 것처럼 공무원이나 관료들은 공산당원이 아니어도, 공산당에 충성을 맹세하지 않아도 법정 직무를 완수하면 국가는 기능한 것이다. 따라서 선서문에서 당에 대한 충성이 사라진 것은 시진핑 당국의 공산주의 포기를 향한 강력한 신호로 볼 수 있다.
중국 공산당은 성립 초기부터 당의 의견을 국민에게 강요하며 당에 충성할 것을 요구했다. 중국 공산당이 곧 중국이라는 이념을 선전해왔고, 공산당에 이의를 제기하면 반혁명 분자, 국가와 인민의 적으로 엄격하게 탄압되었다. 극단적인 예로서, 대학 입시나 대학원 입시에서 중국 공산당을 찬양하는 ‘정치’라는 과목의 시험에 합격하지 못한 학생은 대학이나 대학원에 진학할 수 없었다. 1999년 이후에는 중국 내 많은 대학생과 대학원생들이 파룬궁 수련을 포기하지 않아 학위를 취득할 수 없었다. 따라서 리 총리의 입회 하에 행해진 선서식에서 관료의 선서문에서 ‘당에 충성한다’는 문구가 사라진 것은 시 당국이 이미 탈 공산당화를 추진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헌법은 모두 국가의 구조를 나타낸 법을 의미한다. 근대적인 헌법의 개념은 프랑스 혁명 이후에 형성되었고, 헌법은 국가의 기본 형태와 통치 기구를 정하는 것과 동시에 국가 권력을 구속해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국가의 기본법에 대해서 선서하는 것은 법률을 존중하고 준수해, 법률이 정하는 직권을 행사하여 법정 직무를 완수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시 당국이 현재 진행하고 있는 ‘법에 따라 나라를 다스리는 의법치국(依法治国)’과 직결된다.
이와 관련해 공산당 정권은 일관되게 법률과 헌법, 그리고 국민의 기본 인권을 무시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공산당은 1949년 중국을 점령하자 마자 ‘토지개혁’을 실시해 지주와 저항하는 농민을 학살하고 그 재산을 빼앗았다. 그 후 ‘반우운동(反右運動)’으로 많은 지식인을 우파로 몰아 처형했고, 이어진 대약진에서는 수천만 명의 국민을 아사시켰다. 문화대혁명으로 홍위병에 의해 많은 문화유산이 파괴됐고 폭력이 횡행했다. 1989년 6월 4일 발생한 톈안먼 사건에서는 탱크와 기관총으로 일반 시민과 대학생을 학살했고, 1999년 7월 20일부터는 파룬궁 수련자에 대해 국가 권력을 총동원해 탄압을 가했다.
이러한 ‘운동’이나 ‘정책’에 법적 근거가 있었을까? 사용한 수단은 합법적인 것이었을까? 대답은 그 반대이다. 창립 초부터 불법활동을 하고 세력을 확대해 정권을 유지해 온 공산당에게 법치를 확립하려고 하는 시진핑 주석의 움직임은 공산당의 숨통을 끊는 것과 동일한 것이 아닌가.
해외 중국어 뉴스 사이트 ‘인민보(人民報)’ 는 지난 19일 평론에서, 이 선서식을 ‘보통 뉴스와는 다른 획기적인 사건’이며, ‘중국 공산당에 의한 중국으로부터 중화민족에 의한 중국으로의 전환 현상’이라고 평가했다.
2011년 국가주석으로 취임한 시진핑은 공산당 통치하의 중국에서 계획적으로 ‘의법치국’을 실시해왔다. 2014년 10월에 개최된 ‘제18차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제4회 전체회의 (제18회 4중 전회)’에서는 ‘의법치국’이라는 주제하에 중대 결정에서 실수한 책임을 평생에 걸쳐 추궁하는 제도를 만들었다. 2015년 5월부터는 ‘사건이 있으면 반드시 수사하고, 호소가 있으면 반드시 심리한다’는 원칙을 법원에 요구했고, 그 결과 약 20만명의 파룬궁 수련자 및 그 친족이 장쩌민에 의한 잔혹한 박해와 인권탄압을 고발하고 있다.
중국 시사평론가 샤샤오창(夏小强)의 분석에 따르면, 시 당국이 만들어낸 헌법에 대한 선서제도도 시진핑 주석이 취임 후 실시한 ‘의법치국’에 관한 일련의 정책도 모두 장쩌민파를 제거하고 처리하기 위한 것이며 중국 정치의 핵심 문제인 파룬궁과 관련이 있다.
그에 따르면 이러한 현상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시진핑 주석이 실시해온 여러 정책들은 결국 장쩌민을 체포해 그를 법정에 세우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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