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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장쩌민은 6.4 학살의 원흉

편집부  |  2012-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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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톈샤오(李天笑 시사평론가)
 
[SOH] 장쩌민은 6.4에 단순 가담해 당정군(黨政軍) 3가지 대권을 한 손에 쥔 최대 수혜자로 여겨져 왔다. 그가 과연 특별한 노력도 없이 얼떨결에 어부지리를 얻은 것일까?


중국 속담에 ‘공(功)이 없으면 녹(祿)을 받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만약 장쩌민이 단지 6.4에 단순 가담했다면 탄압의 공로는 리펑(당시 총리)이나 천시퉁(당시 베이징 시장)만 못할 것이다. 중공 원로들이 장쩌민을 중용하고 새로운 당 두목으로 세운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대담한 가정을 하자면 장쩌민은 분명 64탄압 중에서 가장 큰 공로를 세웠을 것이다. 당시 자오쯔양의 자리를 놓고 경쟁하던 총서기 후보 중에서 원래 덩샤오핑이 세우고자 했던 인물은 리루이환(李瑞環)이었다. 리펑, 양상쿤, 천시퉁 등이 6.4 탄압의 공을 자처했는데 왜 유독 장쩌민만이 가장 두드러졌을까? 이는 장쩌민이 6.4 탄압 중에서 발군의 공을 세웠기 때문이며 덩샤오핑 등 중공 원로들은 공에 따라 상을 준 것이다.


일반적으로 장쩌민은 ‘세계경제도보’(世界經濟導報)를 탄압해 6.4의 선구를 연 것으로만 알려져 있다. 동시에 장쩌민은 일찍이 상하이에서 덩샤오핑에게 비밀편지를 보내 중공 원로들의 호감을 산 바 있다. 확실한 것은 장쩌민이 세계경제도보를 봉쇄한 것은 원로들이 보기에 당성(黨性)이 강하고 선도적인 행동으로 비쳐졌다. 장쩌민은 비밀서신에서 6.4 이전의 망당(亡黨) 망국(亡國)의 형세를 분석하면서 과감한 조치의 필요성을 역설해 덩샤오핑이 학살명령을 내리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장쩌민이 중공 원로들의 시험을 통과해 진짜 총서기가 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아 그의 공로는 단지 이 두 가지에 그치진 않았을 것이다.
 

장쩌민은 덩샤오핑을 도와 아주 중요한 정치임무를 맡았으니 바로 6.4 학살이 실현될 수 있게 한 것이다. 당시 덩샤오핑과 리펑이 계엄령을 선포한 것은 1982년 중국헌법에 따르면 완전히 불법이다. 헌법 제67조,  제80조, 제89조에 따른다면 리펑이건 양상쿤(당시 국가주석)이건 전국인민대표대회의 결정이 내려지기 전에는 그 누구도 계엄을 선포할 권한이 없었던 것이다.
 

당시 57명의 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들이 회의를 열어 리펑이 베이징에 계엄을 선포한 것이 합법적인지 토론할 것을 요구했다. 만약 당시 캐나다를 방문 중이던 인민대 상무위원장 완리가 이 회의를 주재했더라면 계엄령을 폐지하고 국무원의 조치가 불법이라고 선포했을 가능성이 크며 이 경우 6.4 학살을 저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아마 역사는 새로 쓰였을 것이며 덩샤오핑과 리펑 등은 정변을 일으킨 죄인이 되었을 것이다.
 
덩샤오핑이 장쩌민에게 요구한 것은 완리가 덩샤오핑과 리펑의 불법 정변에 동의할 때까지 상하이에 억류하도록 한 것이다. 덩은 장쩌민에게 이 임무를 완수하면 그의 정치 생애에 아주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임을 암시했다. 장쩌민은 당연히 이 일의 이해관계를 알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장쩌민은 6.4 실현되게 했다. 바로 이 공로의 중요성 때문에 장쩌민은 6.4의 주요 원흉인 리펑, 양상쿤, 천시퉁에 뒤처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리펑과 천시퉁이 6.4이후 장쩌민이 총서기가 된 것을 질투한 것은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장쩌민은 6.4 학살 중에서 확실히 그들보다 크고 중요한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장쩌민을 6.4 학살의 원흉이라고 해도 전혀 지나침이 없다. 이것이 바로 장쩌민이 당정군(黨政軍) 대권을 장악한 제1지도자가 될 수 있었던 진정한 내막이다. 천시퉁은 그와 공을 다툴 처지가 아니며 억울함을 호소할 이유도 없다. 만약 천시퉁이 당시 정말 총서기가 되었다면 가장 큰 죄를 감당했어야 하며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억울함이기 때문이다.
 

사실 덩샤오핑이 장쩌민을 후계자로 선정한 이유는 6.4 죄행이 청산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장쩌민은 또 파룬궁 탄압의 죄행이 청산되지 않게 하기 위해 17대 상무위에 저우융캉 등을 진입시켰으며 또 온갖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해 보시라이를 저우융캉의 후계자로 삼고자 했던 것이다. 그 목적은 모두 파룬궁 탄압을 유지해 자신의 죄가 청산당하지 않기 위해서다. 이로부터 장쩌민의 혈채파가 형성되었고 현재 발생하고 있는 중공 지도부를 둘러싼 심각한 권력투쟁을 촉발하게 되었다.


6,4죄행이 지난 23년간 청산되지 못했던 주요 원인은 바로 한때 하늘의 태양처럼 거대한 권세를 누렸던 장쩌민과 그가 상무위에 심어 놓은 인사들 때문이다. 장쩌민이 지난 2002년 은퇴할 때 남긴 규정 중에는 6.4 재평가를 불허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장쩌민은 단순히 6.4학살의 원흉일 뿐만 아니라 6.4 재평가를 저지한 원흉이기도 하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장쩌민의 생명이 위태하고 장쩌민파가 후-원-시의 공격에 의해 붕괴되기 직전인 지금 중공 내부에서 6.4에 대한 재평가 논의가 활발히 일어나는 것을 이해하기란 어렵지 않다.
 

장쩌민은 6.4이후 당정군 삼권을 장악했으며 이는 중공 역사상 전례가 없던 일이다. 장쩌민은 또 6.4 학살뿐 아니라 파룬궁 탄압이라는 두 개의 중대한 사건의 원흉이며 이 역시 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장쩌민의 비참한 결말 역시 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 될 것이다.


[ⓒ SOH 희망지성 국제방송 soundofhope.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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