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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후-원의 베이징 인선이 중요한 이유

편집부  |  2012-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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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린다(方林達 시사평론가)
 
[SOH] 베이징은 원래 지난 5월 제11차 당대회를 개최할 예정이었으나 베이징 시각으로 31일까지 대회를 소집한다는 통보조차 없었다. 이는 베이징시 당대회가 연기된 것을 의미한다.
 

충칭시 당대회가 연기된 것과 마찬가지로 베이징 당대회의 연기는 외부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특히 두 직할시의 차기 당서기가 누가 될 것인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앞서 중공의 한 고위인사가 대만 매체를 통해 흘린 소식에 따르면 중공 지도부는 이미 후춘화(胡春華)를 차기 베이징시 서기로, 저우창(周強)을 차기 충칭시 서기로 내정했다고 한다. 이들 두 사람은 모두 후진타오의 공청단파 직계이다.
 

중국의 수도 베이징은 고대부터 경사(京師)로 불려왔고 경사의 안정과 안전은 전국의 안정에 직결된다. 때문에 중공 정치투쟁 중에서 경사에 대한 통제를 잃는 것은 적에게 목줄을 잡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겨져 왔다. 때문에 베이징은 권력투쟁이 가장 치열한 곳으로 만약 베이징 위수구(衛戍區)와 베이징 시정부 및 중앙경위단의 권력을 단단히 틀어쥐지 못하면 중공 최고지도자의 안전도 보장할 수 없다.
 

장쩌민이 권력을 잡은 후 베이징시 서기 천시퉁(陳希同)이 여러 차례에 걸쳐 장의 권위에 공개적으로 도전하자 장쩌민은 1995년 4월 당시 베이징 부시장 왕바오썬(王寶森)의 자살을 구실로 베이징시위원회와 천시퉁에 대한 숙청작업에 들어갔다. 장쩌민은 1998년 7월 천시퉁이 16년 판결을 받은 후에야 진정한 의미에서 당정군(黨政軍)의 대권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아울러 1995년부터 1997년까지 웨이젠싱(尉健行)을 과도시기 베이징시 서기로 삼은 이후 장쩌민은 곧 자신의 심복 자칭린을 푸젠성에서 불러들여 베이징시 서기로 삼았다. 2002년에는 역시 자기 파벌인 류치를 베이징시 서기로 삼아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지금의 베이징은 여전히 장쩌민파 혈채방 일원인 류치가 장악하고 있다. 후진타오에게는 류치가 베이징에 버티고 있는 것은 목에 가시가 걸린 것과 마찬가지다. 지난 3월말 후진타오가 외국을 방문했을 때 다른 성시(省市)의 서기들은 앞을 다퉈 후진타오에게 충성을 다짐했지만 류치는 자신이 장악한 베이징일보를 통해 후진타오의 권위에 공공연히 도전하는 기사를 발표했다. ‘총서기는 당의 중앙조직을 능가하는 최고기구가 아니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또 류치 직속의 환구시보가 후-원 중앙과 다른 목소리를 냈다. 5월 중순 베이징시에서는 소위 사교(邪敎) 반대 교육과 선전을 대대적으로 전개했으며 심지어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사교에 반대하는 활동과 선전을 전개했다. 이는 류치가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걸고 끝까지 후-원에게 저항하려는 것으로 앞으로도 계속해서 파룬궁을 박해하고 혈채파의 세력을 다지기 위해 노력하는 동시에 후-원중앙을 묶어놓겠다는 의도이다.
 

베이징시 서기는 줄곧 중공 지방제후의 우두머리로 간주되어 있으며 당연직 중공 중앙정치국 위원이었다. 그러므로 18대를 앞두고 지방에서 가장 중요한 인사배치는 바로 베이징과 상하이 등 직할시 인사에 관한 주도권 쟁탈이다. 이렇게 본다면 베이징은 중공 정치권력의 대본영이라고 할 수 있다.
 

저우융캉의 권력이 상실함에 따라 혈채방의 붕괴가 가속화되고 있는 가운데 후-원측이 만약 베이징이란 요충지마저 차지한다면 이는 단순히 18대 인사배치를 가속화시킬 뿐만 아니라 베이징을 통제하게 됨으로써 혈채방에 대한 최후결산, 다시 말해 베이징에서 혈채방 원흉들을 심판하는 조건과 기초를 다지게 될 것이다.


[ⓒ SOH 희망지성 국제방송 soundofhope.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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