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닝(楊寧 시사평론가)
[SOH] 나치독일의 선전부장 괴벨은 히틀러에 대한 충성심으로 국가의 모든 수단을 동원해 나치의 정책을 선전했으며 특히 최고지도자(히틀러)의 사상을 주입했다. 그는 모든 매체를 통제해 보도할 수 있는 뉴스와 보도할 수 없는 뉴스를 세세히 지시했을 뿐만 아니라 출판 및 다른 문화영역도 전방위적으로 통제해 모든 출판사와 영화사에서 작품을 발표하기 전에 미리 선전부의 검열을 거치도록 했다. 그는 나치당과 국가의 선전도구의 사소한 실수조차 용납하지 않았다.
괴벨의 ‘탁월한’ 영도 하에 당시 독일인들은 세상의 모든 일에 대해 동일한 경로, 동일한 논조만 알았으며 전국 여론도 고도로 통일되었다. 전국적으로 국민들이 볼 수 있는 책이나 영화 역시 천편일률적이었다. 지도자의 어록이 없는 곳이 없었고 지도자를 찬양하는 노래가 도처에 울려 퍼졌다.
비록 강력한 선전기구가 일시적으로 독일인들을 세계와 단절시키고 우매하게 당과 지도자를 맹종하게 할 수는 있었지만, 거짓말에 의지해 지탱하는 사악은 궁극적으로 성공할 수 없었고 필연적으로 철저히 멸망할 수밖에 없었다. 히틀러와 나치는 결국 실패했고 괴벨 역시 철저히 파멸되었다. 1945년 4월 29일 괴벨은 직접 자신의 5명 아이들을 독살한 후 부인과 함께 총으로 자살했다.
괴벨이 죽은 지 4년이 지난 후 중국에서는 폭력을 숭상하는 사악한 공산당이 정권을 탈취했다. 60여 년에 이르는 통치기간에 중공은 일련의 만행들을 은폐하고 사람을 미혹시키는 마르크스-레닌-마오쩌둥 주의를 주입시켜 중국인들이 ‘공산당이 없으면 신중국이 없다’고 믿게 만들었다. 또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매체와 출판 및 다른 모든 문화영역을 통제하며 중국인들을 우롱했다. 1980년대 개혁개방이래 비록 매체, 여론, 출판업 등이 잠시 개방되어 중국인들에게 민주화의 희망을 안겨주었지만 1989년 학생들의 반부패운동(역주: 6.4 천안문 민주화운동)을 통해 중공의 흉악한 진면목이 다시 드러났다. 이후 중공은 다시 여론에 대한 통제와 선전을 강화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여기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인물이 현재 중공의 선전업무를 주관하며 ‘중공의 괴벨’로 불리는 리창춘(李長春)이다. 리창춘은 1944년 생으로 순풍에 돛단 듯이 관운이 좋았다. 39세에 선양시 시장이 되었고 42세에는 랴오닝성 성장이 되었으며 그 후 허난성 성장, 성위원회 서기, 성인민대표대회 주임, 중공중앙정치국위원, 광둥성 서기 등의 요직을 거쳤다. 그가 허난성에 근무하던 기간에 마침 허난 일대에 에이즈가 창궐해 전국적인 문제로 대두되었다. 그는 불과 7년여 만에 에이즈의 진실한 상황을 철저히 은폐시켰고 또한 2천만 빈곤층에 관한 실상을 은폐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허난성 당정(黨政)간부, 기율위원회, 인민대표대회, 정협위원 등이 고등법원에 리창춘의 심각한 독직을 고발한 사례가 33차례에 달하며 허난성 22개 지역에서 약 25만 명의 사람들이 에이즈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
1999년 7월 파룬궁 탄압이 시작되자 리창춘은 장쩌민을 추종해 전력을 다해 파룬궁 탄압에 앞장서 해외 여러 나라에서 ‘반인류죄’로 피소되었다. 이해 9월 중공중앙정치국조직생활회의에서 웨이젠싱(尉健行)이 지방보고서 및 중앙기율위원회 허난성 조사보고서를 가져와 리창춘에게 중앙에 허난의 에이즈 실태를 은폐한 책임을 추궁했다. 하지만 장쩌민의 보호로 모면할 수 있었다. 2000년 장쩌민은 리창춘을 부총리로 추천했지만 다른 사람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2002년 장쩌민은 리창춘을 중앙정치국의 8번째 상무위원으로 발탁해 중앙선전부 공작을 맡기고 쩡칭훙, 황쥐, 자칭린 등과 협력해 후진타오-원자바오를 견제하게 했다. 2007년도 그는 중앙상무위원에 남을 수 있었고 서열이 5위로 올라갔다. 지금은 중공중앙의 정신문명건설지도위원회주임, 중앙선전사상공작영도소조 조장을 맡아 선전업무를 주관하고 있다.
중앙선전부 공작을 맡은 이후 리창춘은 과거 괴벨이 했던 것뿐만 아니라 매체와 인터넷에 대한 통제를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거짓말을 지속적으로 반복해 진상을 은폐시켰다. 뿐만 아니라 장쩌민의 지시로 국내외에서 파룬궁에 대한 비방을 크게 강화했다.
가령 올해 초 한 언론인이 인터넷에 공개한 중앙선전부 연례 신문통제금지령(新聞管制禁令)에는 9대금지령원칙이 나열되어 있다. 또 1월 4일 리창춘은 전국선전부장 회의에서 ‘양절(兩節 중추절과 국경절), 양회(兩會) 기간에 양호한 여론분위기를 조성하고 핫이슈를 잘 이끌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 폭력철거와 철거 중에 발생하는 ‘자살, 자해, 집단’사건은 보도하지 말고 일반적인 집단사건은 보도하되 중앙이나 사건이 발생한 지역 이외의 매체에서는 보도하지 않는다. 도시의 매체 관리를 강화하며 집단 사건의 보도에서 창끝과 초점이 당위원회와 정부를 겨냥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리창춘의 요구에 따라 중앙선전부는 늘 좋은 뉴스만 보도하고 나쁜 뉴스는 보도하지 않으며 선전 중에서 평화롭고 조화로운 사회를 반영한다. 이를 위해 중앙선전부는 또 중앙지나 일부 영향력 있는 지방지에 직접 직원을 파견해 검열을 강화했다. 따라서 파룬궁에 대한 잔혹한 탄압, 덩위자오(鄧玉嬌)사건, 쓰촨 대지진, 스서우(石首)사건, 각지 노동자들의 파업 등은 전부 당 매체의 보도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이런 리창춘을 골치 아프게 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과거 괴벨의 경우와는 달리 지금은 시공을 초월한 인터넷이 존재해 전통매체보다 통제가 훨씬 어렵다는 것이다. 중국의 많은 네티즌들은 인터넷 봉쇄돌파 프로그램을 이용해 ‘장벽을 넘어’ 진실한 외부세계를 알아가고 있으며, 중공의 선전은 갈수록 인심을 얻지 못하고 있고, 각성한 민중들은 갈수록 기만하기 어렵게 되었다. 중앙선전부가 매체에 ‘트위터’의 사회적 영향을 보도하지 못하게 한 것은 신흥매체의 발달에 따른 정보통제의 어려움과 근심을 반영한 것이다.
분명한 것은 중공매체의 공신력이 갈수록 떨어짐에 따라, 중공의 악행과 본질에 대해 민중들이 알아감에 따라, 중공의 운명이 멸망을 향한 카운트다운에 들어감에 따라 중앙선전부의 사명 역시 끝장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그 날이 올 때 이미 암이 깊어진 리창춘 역시 동료인 괴벨을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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