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칭롄(何淸漣 재미 경제학자)
[SOH] 몇 년 전 나는 중국의 일반 국민들 사이에 ‘반 엘리트 감정’ 생기고 있다는 글을 읽었다. 엘리트 계층 누군가가 불행하게 됐다면, 인터넷에는 많은 환호의 글들이 올라온다. 나도 이 현상에 주목했다. 그러나 엘리트 계급에 대한 반감이 얼마나 뿌리깊은 지에 대해서는 실감하지 못했다.
최근 트위터에서 ‘엘리트’라는 명사를 둘러싼 논쟁을 통해 나는 이에 대해 깊게 통찰할 기회를 얻게 됐다. 이번 논쟁에서 한 네티즌은 이렇게 말했다.
1. 중국에는 이른바 ‘엘리트’가 없다. 귀족이 없는 것과 같다.
2. ‘엘리트’라는 명사는 부적절하고, 이 그룹만이 사회의 정수이고 사람들을 일깨운다는 의미가 있어 일종의 오만과 불평등 의식을 선전하고 있다.
3. 중국의 엘리트는 도덕이 없다. 그래서 엘리트가 아니다. 게다가 공산당 옹호자는 엘리트라고 봐서는 안 된다.
4. 엘리트, 민초 및 그 외의 사회계급을 정하는 용어체계를 근본적으로 폐지해야 한다. 어느 네티즌은 더 과감하게 ‘엘리트나 민초는 마음대로 착각해서 사용되고 있는 말이다. 중국인은 5개 그룹으로 나뉘어진다: 큰 도둑, 중 도둑, 작은 도둑, 서민 그리고 피해자’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나는 이렇게 설명했다.
‘어떠한 연구에도 전문 용어체계가 필요하다. 연구자가 자신의 관점과 의견을 나타낼 때, 반드시 이 용어체계를 사용한다. 엘리트라는 명사는 민초의 반대어에 지나지 않고, 그 정의는 매우 간단하다. 즉, 양호한 교육을 받아 정치, 경제 및 문화 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이며, 도덕적 의미는 없다. 만약 엘리트에 도덕적 의미를 더한다면, 이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곤혹스러울 것이다. 일부 상층 계급의 엘리트가 여러 명의 애인을 거느린다든가, 부패라든가, 횡령 등을 했을 경우, 이 사람을 반대어인 민초 계급에 떨어뜨려도 좋은가?’
논쟁에 참여한 사람들은 대체로 내 설명에 납득한 것 같지만, 여전히 몇 사람은 ‘엘리트’라는 용어는 중국의 정치, 문화 주도자들을 나타낸다고 지적했다.
네티즌들이 중국의 엘리트의 존재를 부정하는 이 경향에 나는 강한 관심이 생겼다. 왜냐하면 이것은 사회 전환기에 있어 일종의 감정의 반영이기 때문이다. 나부터 보면, 이런 종류의 정보는 적어도 다음의 몇 개의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a. 중국 엘리트 계급은 그들의 본래의 책임을 다 하고 있지 않다. 어떠한 사회에도 엘리트 계급은 있다. 그러나 마오쩌둥 시대에 엘리트는 이단자라고 규정되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마오 본인이 매우 반엘리트와 반지성이었다. 사실상 황제의 자리를 오르고도, 혁명자에서 집정자로의 심리 전환을 할 수 없었다. ‘문화대혁명을 7, 8년에 한 번씩 실시해야 한다’는 말은 분명 반 엘리트 감정의 표현이다. 또 마오가 이끈 혁명은 사회의 엘리트를 소멸하는 것이었다. 중국에서 개혁 개방이 시작되고 나서, 공인(工人) 계급은 지도자 계급’, ‘고귀한 사람은 가장 어리석고, 천한 사람은 가장 총명하다’고 한 마오의 사상은 현실에서 철저하게 부정되었다. 엘리트라는 용어도 서서히 중국의 학술 연구와 각종 평론에 이용되기 시작했다.
1980년대부터 90년대 초까지, 중국 사회에서는 민초에서 엘리트로 상승하는 길에는 별로 장애가 없었다(성급, 청급 부패 간부, 학자 출신 간부 대부분이 농가 또는 일반 가정 출생이다). 엘리트라는 말에는 중국적인 내포가 있어 ‘어떤 분야에서 사회, 국가에 현저한 공헌이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정부의 정책이나 국가 발전 방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확대된 형태가 되었다. 당시 엘리트와 비엘리트들 모두 엘리트가 일정한 사회적 책임을 완수해야 한다는 공통 인식을 갖고 있었다.
1990년대, 개혁이 권력시장이라고 하는 갈림길에 선 이후 중국의 엘리트 계급도 서서히 타락하기 시작했다. 그 계급은 권력을 남용해 공공 자원을 약탈했다. 여러 사례에서 알게 된 것은 정계의 엘리트와 부패는 서로 이어진 관계라는 것이다. 재계 엘리트는 공권력과 결탁해 국가 자원을 불법 점유한데다 사회적 책임감이 전혀 없다. 지식층 엘리트는 정계・재계 엘리트를 대변하면서도 수치를 모른다. 엘리트 계급이 방대한 이익을 얻었기 때문에, 엘리트 계급에 대한 신뢰가 계속 떨어지고 있다. 민초들은 도덕적인 면에 있어 엘리트 계급에 부정적인 태도를 갖게 되었다. 이것이 반엘리트 감정이 생긴 주된 원인이다.
b. 엘리트가 될 수 있는 체제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다. 관직 매매는 승진 루트다(여성 간부는 침대에서 이뤄진다고 풍자되고 있다). 취직난이 심각해짐에 따라, 올해 대졸자가 실업에 직면하는 현상이 되어, 중국의 대학은 ‘중산층 육성’의 기능을 잃어 버렸다. 취직 경쟁도 취직자 집안의 경쟁이 되고 있다. 엘리트 탄생 체제에서 보면, 중국은 신분형 사회로 돌아오고 있다. 즉, 엘리트가 될 수 있을지 어떨지는 혈통이 결정요인이 되는 것이다.
꽤 오래 전, 나는 2 종류의 계급 관점에 주목했다. 하나는 마르크스주의적 계급 관점이다. 무산 계급은 유산 계급(엘리트 계급)에 부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어 폭력 수단으로 유산 계급을 넘어뜨리고 그 자리에 올랐다. 사회 하층에서 출세할 희망이 없는 사회에서는 엘리트 계급에 대한 회의와 적대시하는 정서가 생기기 쉽다. 이러한 극단적인 사회의 긴장 상태가 바로 마르크스 계급 투쟁 이론이 탄생하는 온상이 되었다.
다른 계급 관점은,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사회학자인 베블런(Thorstein Bunde Veblen)의 관점이다. 베블런은 마르크스의 계급 투쟁 관점을 반대했다. 그는, 사회 하층의 상류층에 대한 질투는 통상 자신의 노력으로 상류층의 일원이 되고 싶다는 소망의 표현이라고 인식했다. 이 같은 베블런의 관점은 하층이 스스로의 노력으로 출세할 수 있는 사회에서 통용된다.
중국의 문제점은 엘리트나 민초 같은 명사를 사용해야 할 것인가 어떤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엘리트 계급이 특권을 가지면서 책임을 완수하지 않고, 민초들은 권리가 없이 의무만 강요당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사회 긴장과 계급의 대립을 해소하는 길은 불평등한 사회 현실을 바꾸는 길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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