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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인민일보’ 공방으로 드러난 중공의 내부투쟁

편집부  |  2010-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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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이산(張海山, 따지웬 논설위원)

 

[SOH] 2010년 10월 18일 중공 17기 5중전회가 끝났다. 회의 전 수개월 간 8차례에 걸친 원자바오의 정치개혁발언은 이번 대회기간의 정치개혁에 대한 해석을 싸고 각계각층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중공 내부 파벌들도 소위 정치개혁 발언권에 대한 쟁탈전을 벌였다. 이를 반영하듯 중공 당보(黨報) ‘인민일보(人民日報)’에는 원자바오 지지파와 타도파 간에 치열한 공방이 전개됐다.

 

‘인민일보’ 논평으로 선기를 잡은 지지파

 

10월 21일 원자바오 지지파는 ‘인민일보’에 정칭위안(鄭青原) 명의의 논평을 발표했다. 이 논평에서는 원자바오가 정치개혁을 중공 존망의 높이로까지 끌어올린 것을 겨냥해 “이는 공산당의 집권능력에 대한 중대한 시험이며, 민족의 자강능력에 대한 중대한 시험이자 민족의 앞길과 관련되며, 중공과 국가의 장기적인 안정과 관련된다”고 주장했다.

 

이 논평이 발표되고 4일 후인 25일 원자바오 지지파는 정칭위안이란 동일한 필명으로 ‘인민일보’에 두 번째 논평을 발표했다. 두 번째 논평에서는 ‘현재 중국의 1인당 GDP는 이미 4천불에 근접했다. 이 단계는 발전방식을 전환하는데 결정적인 시기이다. 제 때에 발전방식을 조정하지 않으면 나중에 정체되거나 심지어 역전된다’고 주장했다.

 

동일한 필명을 도용한 원자바오 타도파의 반격

 

27일 ‘인민일보’에는 동일 필명의 세 번째 논평이 등장했다. 그러나 이 논평은 앞서 두 편의 문장과 풍격이 전혀 달랐다. 이 글은 중공이 성취한 지난 30년간의 ‘정치개혁성과’를 과장했다. 이 같은 노골적인 찬양은 흔히 장쩌민 계파에서 선전하는 것과 상통하는 것이다.

 

이 같은 논평에 대해 외부에서는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대만의 ‘평과일보(坪果日報)’ 칼럼니스트 리핑(李平)은 “인민일보가 원자바오에 반대하는 호각을 불었다”라고 진단했다. 그는 “(27일자) 논평이 마치 정치개혁 추진을 호소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중국 개혁개방 이후 30년동안의 정치개혁 지체를 부인하고 있다. 다시 말해 보편적인 가치를 부인하고 다당제와 삼권분립의 서구식 정치체제를 따르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27일자 논평은 사실 하루 전에 신화사를 통해 원고가 발표되었고, 각 성시(省市)의 당보(黨報)에도 전재되었다. 또한 이 논평의 주장은 원자바오가 5중 전회 이전에 자주 발언한 정치개혁과 크게 다르다. 때문에 외부에서는 국내 여론을 선동해 원자바오를 공격할 가능성이 아주 크다고 봤다.

 

그러나 이 논평을 자세히 보면 단지 문체만 크게 바뀐 것이 아니라 문장력도 조악하고 직설적인 정치공작식 말투이다. 다시 말해 이 논평의 필자인 ‘정칭위안’은 앞선 논평들의 필자와 전혀 다른 사람이다. 아마도 원자바오 타도파의 인내력이 극에 달해 지지파의 세 번째 논평이 발표되기 전에 조직적으로 반격을 가한 것으로 여겨진다.

 

지지파의 과감한 반격

 

이 같은 타도파의 수법에 맞선 지지파의 대응도 단호했다. 원자바오 지지파는 새로운 수법을 쓰는 대신 전과 같이 원래의 시적인 논평을 29일자 ‘인민일보’에 발표했다.

 

흥미로운 것은 지지파 역시 타도파와 마찬가지로 하루 앞서 신화사를 통해 원고를 발표하고 다음날 ‘인민일보’에 실릴 논평임을 알려 각 성시 당보에 동시에 전재할 것을 요구한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흥미로운 것은 원자바오의 행동이다. 28일 그는 베트남에서 열린 아세안(ASEAN) 정상회담에 참석했다. 그는 회의에서 다른 나라 총리들과 악수할 때는 적절한 거리를 두고 표정도 진지했지만, 유독 베트남 총리와 함께 있을 때는 왼팔을 가까이 밀착시키며 밝은 표정을 보였다.

 

그동안 중공 관방에서는 베트남의 정치개혁에 대해 거의 보도하지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베트남이 정치개혁에서 적지않은 수확과 실질적인 진전이 있었음을 알고 있었다. 원자바오의 이런 친밀한 태도는 정치개혁에 대한 자신의 의지를 다시 한 번 표현한 것으로, 마치 아홉 번째 정치개혁발언을 한 것처럼 보인다.


[ 對중국 단파라디오 ⓒ SOH 희망지성 국제방송 soundofhope.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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