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중국 문화대혁명 때 교사 구타, 살해 등 폭력을 주도했던 홍위병(紅衛兵) 리더 쑹빈빈(宋彬彬·77)이 지난 16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에서 지병(암)으로 사망했다.
국내외 보도에 따르면 쑹빈빈은 중국 혁명원로이자 인민해방군 최초의 상장(上將)인 쑹런충(宋任窮)의 딸로, 문혁이 한창이던 1966년 6월 베이징사범대 부속 여중·고교인 여부중(女部中)에 다니던 그는 교내에 대자보를 붙이고 볜중윈(卞仲耘) 교감 등 교사 7~8명을 구타하는 등 폭력 시위를 주도했다. 피해 교사들은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쑹빈빈은 같은 해 8월 수십만명의 홍위병이 집결한 천안문 성루에 올라 당시 마오쩌둥 공산당 주석에게 홍위병을 상징하는 붉은 완장을 채워주는 역할을 맡기도 했다.
정적 제거를 염두에 뒀던 마오쩌둥은 당시 쑹빈빈에게 '야오우'(要武)라는 예명을 지어주면서 홍위병의 더 많은 폭력을 조장했다. 이후 쑹빈빈이 이끄는 홍위병들의 폭력 행위는 더 극단적으로 치달았다.
이들은 교사를 구타하고 부모를 고발하는 등 전국적인 무장투쟁에 앞장섰다. 류사오치 당 총서기를 포함해 마오쩌둥과 각을 세웠던 기득권 세력을 겨냥해서도 극심한 언어폭력과 각종 신체적 폭력을 가해 사실상 죽음으로 내몰았다.
쑹빈빈은 문혁 후반부인 1972년 창춘지질대학에서 수학한 뒤 1980년 유학을 이유로 미국으로 가 보스턴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 미국 시민권까지 얻어 영국계 회사의 오너 겸 CTO로 재직했다.
세월이 흘러 쑹빈빈은 노인이 된 2014년에야 문혁 당시 함께 활동했던 홍위병들과 함께 베이징사범대 부속 여부중에 있는 볜중윈 교감 흉상을 찾아 공개로 사과했다.
하지만 볜 교감의 유가족은 쑹의 사과를 거부했다. 볜의 남편인 왕징야오 전 중국과학원 역사 연구원은 "아내가 죽임을 당한 지 48년이 지났지만, 가해자들은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 있다"며 "사건이 진상이 밝혀질 때까지 홍위병의 거짓 사과를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비판했다.
쑹빈빈의 사인은 암으로 알려졌다. 장기간 병원 생활을 해온 그는 지난 15일 뉴욕 자택으로 옮겨져 36시간 가족과 지내다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에서는 문화대혁명 기간 중국의 상당수 중·고·대학생들이 홍위병이라는 이름으로 마오쩌둥의 정치 운동에 동원됐으며, 이들의 폭력으로 사망한 사람은 무려 10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한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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