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중국인들이 국내에서 군부대 등을 무단으로 촬영한 사건이 작년 6월부터 최근까지 11건 발생했다고 국가정보원(국정원)이 4월 30일 국회 정보위에 보고했다. 중국인들의 촬영 대상은 군 기지, 공항·항만, 국정원 등 핵심 군사시설 및 국가 중요 시설에 집중됐다.
국정원에 따르면 촬영자는 관광객 등 일시 방한객과 유학생이 대부분이고, 그중 일부 고등학생 등 미성년자도 포함됐다. 이들은 여행 기록용 촬영이라고 주장하지만, 군사기지법 적용 경계선 밖에서 고성능 카메라나 무전기 등을 사용해 활동하는 등 국내법을 회피하려는 의도가 다분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인들은 지난해 6월 부산 해군작전사령부에 정박한 미 항공모함을 드론으로 촬영했다. 지난달에는 중국인 10대 등 2명이 경기 수원 공군 기지와 오산 미 공군 기지 전투기 이착륙 장면을 몰래 촬영하다 경찰에 입건됐는데 이들 중 한 명은 부친이 공안인 것으로 일려졌다.
이처럼 스파이로 의심되는 중국인들의 불법 촬영이 잇따르고 있지만, 이들 대부분은 대공 혐의점이 없다는 이유로 훈방되는 등 제대로 된 처벌은 없는 상황이다. 이를 비웃는 듯 오산 공군 기지를 촬영한 중국인들은 이틀 뒤인 23일 또 군부대를 촬영하다가 적발됐다.
이처럼 중국인들의 간첩행위가 들끓고 있지만 법령상 이들을 ‘간첩죄’로 처벌하지 못하는 것은 현행 간첩죄가 ‘적국’(북한)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간첩법의 허점으로 인해 법망을 피해 간첩 행위를 계속하더라도 처벌이 어렵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중국에 포섭돼 간첩 행위를 한 우리 측 사람 역시 간첩죄로 처벌할 수 없는 상태다. 중국 정보 당국에 포섭돼 우리 군의 ‘블랙 요원(신분을 위장해 활동하는 요원)’ 신상 등 군 기밀을 약 7년 동안 유출해 왔던 국군정보사령부(정보사) 군무원 A(50)씨는 지난 1월 군형법상 일반 이적 혐의 등으로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다.
초동 수사를 맡은 국군방첩사령부는 A씨에게 간첩죄를 적용해 군 검찰로 송치했으나, 군 검찰은 간첩죄는 제외했다. 북한과의 직접적 연계를 입증하기 어렵다는 이유다. 군에서는 “블랙 요원 신상을 팔아넘긴 사람도 간첩죄로 처벌을 못 하면 간첩법은 대체 왜 있냐”는 지적이 나왔다.
앞서 2018년 중국과 일본에 군사 기밀을 팔아넘긴 군무원도 간첩죄가 아닌 군사 기밀 누설 혐의로 지난해 징역 4년형을 선고받았다. 간첩죄는 7년 이상 징역에 최고 사형까지 가능하지만, 군사 기밀 누설 혐의는 10년 이하 징역 등 상대적으로 형량이 낮다.
■ 간첩법 개정에 등 돌린 민주당
형법 98조의 간첩죄는 ‘적국(敵國)’을 위한 간첩 행위만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적국은 북한으로 한정되기 때문에, 북한 외에 다른 나라를 위한 간첩 활동은 간첩죄로 처벌할 수 없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지난해 형법 98조의 간첩죄 적용 범위를 ‘적국’(敵國)에서 ‘외국 또는 이에 준하는 단체’로 확대하는 법 개정을 추진했다. 국민의힘은 법 개정을 당론으로 정하고 연내 통과를 추진했다. 민주당도 처음엔 반대 입장이 아니었다. 민주당 박선원, 강유정, 위성락 의원 등이 법 개정안을 각각 발의했다. 작년 11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형법 개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 법안심사 소위에서 통과됐다.
하지만 형법 개정안은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하지 못했다. 전체회의 상정을 앞두고 민주당이 돌연 입장을 바꿨기 때문이다. 민주당에서는 “공청회를 열어 의견을 들어보자”면서 상정을 미뤘는데, 실제로는 간첩죄 적용을 확대하는 안을 보고받은 당 지도부 일각에서 강한 반대가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12·3 계엄 사태로 관련 논의는 중단됐다.
국정원은 이날 국회 정보위원회 비공개 간담회에서 ‘간첩법 개정을 통해 북한뿐 아니라 다른 국가들이 우리나라 산업 경제 혹은 군사 안보와 관련된 국가 기밀을 누출하거나 탐지·획득하는 부분에 대해 간첩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일본·중국 등에선 적국뿐 아니라 외국을 위한 간첩 행위도 처벌하는 법을 두고 있다. 특히 중국에서는 한국 교민이 ‘반간첩법’ 위반 혐의로 2023년 12월 당국에 구금돼 1년 가까이 기약과 정보가 없는 '깜깜이 수사'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 조선일보
디지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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