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미·중 무역 갈등이 격화되는 가운데, 중국 기업들이 한국을 '우회 수출 기지'로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국내 중소기업들이 중국산 원자재를 사용해 제품을 생산하거나, 중국 기업이 국내에 직접 공장을 설립해 생산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행태는 '원산지 세탁' 논란을 일으키며, 한국 제조업 전반에 걸쳐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우회 수출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고 있다. 특히 한국이 중국의 우회 수출 기지 역할을 하는 것에 대해 면밀히 조사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 정부는 한국에서 미국으로 수출되는 알루미늄 연선·케이블(AWC)에 대해 높은 반덤핑 관세와 상계 관세를 부과했다. 이는 국내 금속 기업들이 중국의 대미 우회 수출 통로 역할을 했다는 판단에서다.
■ 중국의 '원산지 세탁' 수법
한국을 거친 중국의 대미 우회 수출은 3단계로 이루어진다. △먼저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을 이용하여 중국산 원자재와 부품을 저율 관세로 한국에 수입한다. △다음으로 하청을 받은 한국 중소기업은 중국산 원자재와 부품을 사용하여 완제품을 생산한다. △마지막으로 '메이드 인 코리아'로 둔갑한 완제품은 한미 FTA 적용을 받아 미국에 저율 관세로 수출된다.
이때 한국산 원자재 등을 51% 이상 사용하면 합법적인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이 되지만, '택갈이'나 '라벨갈이'와 같은 원산지 세탁을 통해 불법적으로 '한국산' 이름이 붙는 경우가 문제가 된다.
중국 기업들은 한국 중소기업에 하청을 주는 것을 넘어, 한국에 직접 대규모 공장을 짓고 생산 기지로 삼는 경우도 있다. 전북 군산 새만금 국가산업단지에 위치한 '한국샤먼텅스텐금속재료'는 중국 국유기업인 샤먼텅스텐이 투자하여 지난해 5월부터 산화텅스텐 생산을 시작했다. 또 다른 중국 기업 HT는 새만금에 태양광 전지 제조 공장을 설립하겠다는 투자 의향서를 제출했다.
■ 첨단 산업 우회 수출 기지로도 눈독
한국에 대한 중국의 직접 투자에서 2차 전지, 태양광, 반도체 등 미국으로부터 규제를 받는 첨단 산업 투자도 크게 증가했다. 이는 중국이 한국을 첨단 산업 분야 우회 수출 기지로 활용하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한국무역협회 관계자는 미국 상무부가 중국의 우회 수출 문제를 심각하게 보고 조사 강도를 높이고 있다고 밝혔다.
수주 고갈로 어려움을 겪는 국내 중소기업은 중국 기업의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운 상황에서 한국이 중국의 하청 기지로 전락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서빙 로봇과 같은 서비스 로봇 분야는 이미 국내 기업이 경쟁력을 잃고 중국 하청 업체로 전락한 상태이다. 전기 스쿠터를 제조하는 중소기업 관계자는 국내 업체 대부분이 중국 부품을 조립만 하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미국 정부는 중국의 우회 수출 문제에 대해 조사 강도를 높이고 있으며, 앞서 중국의 우회 수출 기지로 활용되었던 베트남과 말레이시아는 미국 정부로부터 고율 관세를 부과받는 불이익을 당했다. 한국도 불이익을 당하지 않기 위한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디지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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