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정부가 응급실 의료진에게 환자 수용을 거부할 수 있는 면책 범위를 확대해 비상시 병원 이용이 더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와 의료계 등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지난 9월 15일 ‘응급의료법상 진료 거부의 정당한 사유 지침 안내’ 공문을 전날 전국 17개 시도와 대한병원협회, 대한의사협회, 대한간호사협회 등에 보냈다.
응급의료법 제6조는 응급의료종사자가 업무 중에 응급의료를 요청받거나 응급 환자를 발견했을 때 곧바로 의료행위를 하도록 하는데, 복지부는 이번 지침을 통해 정당한 진료 거부 사례를 명시했다.
우선 복지부는 한국형 중증도 분류체계(KTAS) 4∼5급에 해당하는 경증·비응급 환자를 응급실에서 수용하지 않더라도 의료진에 책임을 묻지 않기로 했다.
복지부에 따르면 KTAS 4급은 준응급, 5급은 비응급 환자다. 4급에는 착란(정신장애)이나 요로 감염이, 5급에는 감기나 장염, 설사 등이 대표적 증상으로 꼽힌다.
이들을 받지 않더라도 의료진이 책임지지 않도록 한 것은 응급실 의료진이 본연의 목적에 맞게 중증 환자에게 집중하도록 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환자 스스로 정확한 몸 상태나 그 중증도를 알기 어려워 일단 응급실을 찾는 경우가 많은 실정을 고려하면 이번 지침 역시 구체성이 다소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한 복지부는 응급실에서 폭력이 발생하거나 그럴 우려가 있는 경우를 정당한 진료 거부·기피로 규정했다. 여기에는 응급의료 종사자에 대한 폭행이나 협박, 위계, 위력 혹은 의료용 시설·기물의 손괴 등이 해당한다.
아울러 환자나 보호자가 모욕죄나 명예훼손죄, 폭행죄, 업무방해죄에 해당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의료인이 정상적인 의료행위를 하지 못하게 된 경우에도 정당한 진료 거부로 보기로 했다.
이 밖에 △응급의료기관의 인력·시설·장비 부족으로 적절한 응급의료를 할 수 없는 경우, △통신·전력 마비나 화재 등 재난으로 환자를 수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정당한 의료 진료 거부 사유로 분류됐다.
복지부는 이번 공문에서 응급의료법과 의료법에 따라 정당한 진료 거부 사유의 범위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 지침을 마련했다면서도 "법령의 제·개정, 판례와 유권해석의 변경 등에 따라 (범위가) 바뀔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응급의료진 측에선 해당 지침이 인력 부족의 근본적인 대책이 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회장은 “응급실 위기는 결국 배후 의료진이 부족해 최종 치료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 비롯된다”며, “(의료진이 부족한) 현재 상황에선 지침이 현실적으로 큰 도움이 되질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환자들은 “응급실 문턱이 높아져 갑자기 아프면 정말 큰 일”이라고 불안하는 모습이다.
김성주 한국중증질환연합회 대표는 18일 국민일보에 “인력 부족 등 응급실 여건이 되질 않으니 진료 거부를 해도 된다는 식의 대응은 환자들에게 ‘아프지 말고, 아파도 병원에 가지 말라’는 이야기”라면서 “환자와 국민의 불안과 혼란만 부추길 수 있다. 응급실 인력난을 해소할 수 있는 실제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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