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국민 10명 중 8명은 말기환자의 존엄한 죽음을 위해 의사조력자살과 같은 안락사의 합법화 보다 간병비와 의료비 지원, 호스피스ㆍ완화의료 확충 등의 제도 개선이 우선돼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가 최근 전국 성인남녀 1007명을 대상으로 의사조력자살 및 호스피스·완화의료 관련 인식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80.7%가 "의사조력자살 법제화보다 말기 환자의 돌봄환경과 호스피스·완화의료 확충이 우선한다"고 답했다.
이는 의사조력자살의 허용을 골자로 하는 연명의료결정법 개정안(대표발의 안규백 의원)이 최근 발의되었으나 우리 국민 대다수는 성급한 법제화에 앞서 생애 마지막 시기의 돌봄에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을 요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정부와 국회가 존엄한 죽음을 위해 가장 중점을 둬야 할 과제로는 △간병비 지원 또는 간병 유급 휴직제도의 도입 등 간병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지원체계 마련(28.6%) △ 말기 진단 후 의료비의 본인 부담 경감 등 의료비 절감 등을 포함한 경제적 지원(26.7%) △호스피스 완화의료 서비스의 확충 및 지원(25.4%) 순이었고, △의사조력자살 합법화는 13.6%에 불과했다.
특히 간병비 및 의료비 지원, 호스피스·완화의료 서비스 확충 및 지원을 정부와 국회의 정책 우선순위로 꼽은 응답의 합은 80.7%로 의사조력합법화(13.6%) 보다 6배 가량 많았다.
존엄한 죽음을 위해 안락사 또는 의사조력자살 보다 생애말기 돌봄을 위한 호스피스·완화의료 제도의 확대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견해에 대해서는 △찬성 58.3%(찬성하는 편 41.4%, 매우 찬성 16.9%) △반대 9.6%(매우 반대하는 편 2.7%, 반대하는 편 6.9%)로 찬성이 2배 가량 높았다.
회생 가능성이 없는 말기 환자와 가족들에 대한 우리나라의 사회적 지원체계에 대해서는 △부족하다가 61.1%(매우 부족 18.9%, 부족 42.2%), △보통 34.0%, △충분하다 4.9%(충분 3.8%, 매우 충분 1.1%) 순이었다.
현재 연명의료 결정법이 시행되고 있는 가운데 회생 가능성이 없더라도 생명 연장만을 위한 연명의료를 받을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 △받지 않겠다가 81.7%(절대 받지 않겠다 45.0%, 받지 않을 것 같다 36.7%)로 가장 많았다. 이어 △잘 모르겠다 11.3%, △받겠다 7.0%(받을 것 같다 4.9%, 반드시 받겠다 2.1%) 순이었다. 결국 응답자 10명 8명이 생명 연장만을 위한 연명의료에 대해 거부 의사를 밝힌 것이다.
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 이경희 이사장은 “우리 국민들이 질 높은 생애말기 돌봄을 통한 존엄한 임종을 맞기 위해서는 의사 조력자살 허용 등에 대한 섣부른 논의에 앞서 호스피스 완화의료 관련,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시설과 전문인력 등에 대한 기준을 개선하여 호스피스 완화의료 제도의 이용을 원하는 국민 모두가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선진적인 호스피스 완화의료 · 인프라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조사는 한국호스피스ㆍ완화의료학회 의뢰로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서치뷰가 7월 27일부터 8월 5일까지 10일간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1,007명(RDD 휴대전화 100%)을 대상으로 전화면접조사 방식으로 진행했다.
통계보정은 2022년 6월말 현재 국가 주민등록인구통계에 따라 성ㆍ연령ㆍ지역별 가중치를 부여했고,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 응답률은 9.5%다.
한국호스피스 완화의료학회는 우리나라 호스피스완화의료를 대표하는 학술단체로,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요법치료사, 영적돌봄상담가, 영양사, 자원봉사자 등 3750명의 다학제 전문가팀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앞서 안규백 민주당 의원은 ‘의사 조력 존엄사법’을 대표발의했다. 의사 도움 하에 자살 합법화가 핵심이다. 지난 2016년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연명의료결정법이 제정되며 의미 없는 연명의료를 중단 또는 보류할 수 있게 됐지만, 이는 임종기 환자에게만 적용된다.
말기 환자나 식물 상태 환자 등에겐 인공호흡기를 떼거나 심폐소생술을 거부할 수 있는 선택권이 없다. 말기 환자에게도 의사가 약물 등을 제공해 환자 스스로 삶을 마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법의 취지다.
그러나 이 법안을 두고 의료계와 전문가들은 우려를 표한다. 의사조력자살 논의 이전에 낙후한 호스피스(죽음을 앞둔 환자에 대한 돌봄 서비스) 인프라부터 개선돼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국내에서는 안락사와 조력 존엄사 모두 불법이다.
구본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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