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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한의사(洋中醫) (1)

편집부  |  2012-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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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선(子仙 중의사)
 
[SOH] 사람은 여러 단계를 거쳐 성장하는 것 같다.  뒤돌아보면 부끄러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젊은 시절엔 자존심을 세우려고, 아는 척하며 다른 사람의 충고도 귀담아듣지 않았다. 특히 한의학을 처음 배울 때 그랬다.


미국에 유학 온 나는 미국인에게서 한의학을 배웠다. 임상실습을 하려고 중국에 돌아갔을 때의 일이다. 내가 일제 침을 꺼내자, 평생 은침(銀鍼)만 사용하신 어머니가 미간을 찌푸리며 “그 침은 어떻게 놓는 거니?”라고 물으며 손을 내밀어 합곡혈에 침을 놓아보라고 하셨다.


나는 침관과 침을 꺼내 톡톡 쳤고 침은 가볍게 들어갔다. 침을 뽑으며 득의양양해하는 내게 어머니는 “왜 아무 느낌도 없지?”라며 당신이 쓰시던 중국 침을 꺼내셨다. 그것은 보통 사용하는 침보다 몇 배는 더 굵었고 침관을 사용하지도 않았다. 나는 중국 침은 굵어서 외국인에게 맞지 않는다는 핑계를 대며 일제 침을 고집했다.


어머니는 내게 침놓는 자세를 보자며 양릉천에 침을 놓아보라고 하셨다.  아마 내가 사용하는 침의 느낌을 확인해 보고 싶었나 보다.  나는 격자무늬가 그려진 예쁜 고무밴드를 작은 오빠의 다리에 대고 양릉천을 측정했다. 미국 한의대생들은 측정할 때 이런 고무밴드를 사용한다. 위치를 정하고 침을 놓으려 하자 어머니는  “뼈 위에 침을 놓을 작정이니?”라며 엄하게 꾸짖으셨다.
 

나는 당황스러웠지만, “이 자리가 맞아요. 책에 나오는 것과 조금도 차이가 없어요”라며 고집을 부렸다.


조심스럽게 혈자리에 침을 놓았지만 작은 오빠는 아프다며 펄쩍 뛰었다. 어머니는 웃으셨고 나는 부끄러웠다.


어머니는 “통증은 침의 굵기보다 침을 놓는 방법에 달렸다. 내가 시범을 보여주마”라고 하셨다. 나는 잽싸게 독일산 이침(耳針) 탐측기를 꺼내 들고는 또 득의양양하게 “이 기계는 귀에서 병이 있는 부위를 찾아낼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기계를 작은 오빠에게 시험했고 기계는 잠시 소리를 내다, 내지 않다를 반복했다. 그런데 소리가 나는 위치는 오빠의 몸 상태와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오빠는 “설마 내가 임신했는지 확인하려는 건 아니겠지? 이 기계가 설사 독일과 프랑스의 합작이라 할지라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은 분명해”라며 빈정거렸다.  


어머니는 또 내게 혈 자리는 모두 외울 수 있는지 물어보셨다. 나는 “외울 필요 없어요. 외국에서는 그냥 번호로 말해요. 가령 방광경에 67개의 혈 자리가 있지만 모두 번호로 표시한다고요”라고 대답했다.


어머니는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딸을 책망하지 않으려고 참으셨지만 내 대답에 당신의 인내력의 한계를 넘은 것 같았다. ‘서양에 유학 중인 한의사’라는 타이틀은 멋있었지만 막상 임상에서 내가 배운 것은 전혀 쓸모가 없었다.


어머니는 “너 내일 일찍 병원에 나와 실습해야겠다. 이런 서양물건은 내버려두고, 한 손으로 침을 놓고, 침감(鍼感)을 느끼고, 침으로 보(補)하고 사(瀉)하는 것을 배워라. 또 불 부항을 뜨고, 진맥하고 설상(舌象)을 보는 법을 배우되, 경험 많은 의사를 따라 처음부터 배워야 한다. 배울 때는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고 여겨야 한다. 사실 너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니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배워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지금까지 나는 십여 년간 의료업에 종사하면서 복잡하고 다양한 질병을 마주하게 되면 늘 자신이 아직 아무것도 모른다고 여기면서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배운다. 되돌아보면 그 당시 실습하던 때가 내가 의학을 배운 이후 가장 가치 있는 시간이었다.                               

 

[ⓒ SOH 희망지성 국제방송 soundofhope.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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