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선(子仙 중의사)
[SOH] 어린 시절 우리 집에는 낡은 자전거가 한 대 있었다.
작은 오빠는 낡은 자전거 대신 오토바이가 타고 싶어 “엄마, 오토바이가 사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설거지하시던 어머니는 “좋아, 만약 네 다리가 부러지는 것이 두렵지 않다면 두 대라도 사주지”라고 하셨다. 작은 오빠는 당황하며 “두 대는 필요 없어요. 한 대면 돼요”라고 얼버무렸다. 어머니는 설거지를 중단했고 나는 곧장 그곳을 빠져 나왔다. 이후 우리는 오토바이 얘기를 더 이상 꺼내지 않았고 낡은 자전거를 계속 탔다.
세월이 흘러 나는 미국으로 건너와 지금의 남편과 결혼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어린 시절 어머니와 비슷한 상황을 만나게 됐는데 남편이 갑자기 오토바이가 사고 싶다는 것이다.
나는 “좋아요, 만약 다리가 부러지는 게 두렵지 않다면 두 대라도 사죠”라며 옛날 어머니가 오빠에게 했던 말을 했다. 그러나 서양 사람인 남편은 “좋아, 한 대면 충분해! 내일 당장 오토바이를 보러 가지”라며 들뜬 얼굴로 즐거워했다. 내 말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남편의 반응에 나는 “좋다는 말이 아니라 그 반대”라며 오토바이의 위험성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오토바이에 관한 또 하나의 추억이 있다. 환절기가 되면 감기와 비염으로 나를 찾는 루이스라는 환자가 있었다. 오랜만에 병원을 찾은 루이스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죽 옷과 장식을 걸치고 있었다. 꼭 폭주족 차림이었다. 루이스는 약간 흥분한 말투로 “오토바이를 타고 세상 견문을 넓히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어머니와 오빠 그리고 남편과 나눴던 오토바이에 대한 대화가 떠오르면서 약간 긴장이 됐다. 아무 말도 없는 내 표정을 살피던 루이스는 “준비를 단단히 했으니 걱정말라”고 했다.
컴퓨터 관련 일을 하는 루이스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여러 가지 운동을 권유받았으나 그의 흥미를 끈 것은 정작 오토바이 여행이었다. 초보자이니 사고가 걱정되기는 하지만, 심해봐야 뼈가 부러지는 정도일 것이라며 루이스는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나는 문을 나서는 루이스를 눈으로만 배웅했다.
20여일 쯤 지났을까. 루이스가 구급차에 실려 왔다.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오른팔 수십 군데가 부러져 팔이 쇠못에 박힌 채 깁스로 완전히 고정됐다. 2달 후에 깁스는 풀었으나 팔은 다른 방법으로 고정시켰다. 치료 받는 동안에도 루이스는 병원, 보험회사, 변호사를 찾아다니며 힘겨운 나날을 보내야 했다.
루이스에게 오토바이를 사라고 부추겼던 사람들은 위로의 말조차 건네지 못했고 슬며시 자신의 오토바이를 팔거나 다른 사람에게 줬다. 결국 루이스는 사고 후유증으로 다니던 직장도 그만뒀다. 자신감이 넘치던 한 청년이 오토바이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고통을 만난 것이다.
나는 어린 시절 작은 오빠와 어머니가 오토바이에 대해 나눴던 대화를 떠올리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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